그럼 신은 존재하는가? 고금의 무신론적 논증들은 어떠한가? 현대 과학은 이 문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 낡은 실증주의가 다시 유행하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 플루가 이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 사상의 전장으로 돌아왔다. 반세기 전 실증주의의 지배를 끝내는 데 일조했던 그가 지금과 같은 순간에 지성계로 돌아온 것은 대단히 놀라운 우연의 일치다.---「서문 “합리적 유신론의 재탄생”」중에서
킹스우드 스쿨에 들어갈 때 나는 열정적이지는 않아도 헌신적이고 성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하지만 왜 예배를 드리는지 알 수 없었고, 음악에 소질이 없어서 찬송가를 감상하기는커녕 제대로 부르지도 못했다. 정치, 역사, 과학 등 어떤 주제를 다룬 책이건 정말 열심히 읽었지만, 종교 서적은 흥미롭게 읽은 적이 없다. 국교나 감리교의 예배당에 가는 일이나 기도하는 일, 그 외 모든 종교 행위가 내게는 지루한 의무 사항일 뿐이었다. 나는 신과 교제하고 싶은 갈망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1장 “어느 무신론자의 탄생”」중에서
내가 열다섯에 무신론을 받아들이게 된 근거들은 분명 부적절했다. 그 근거들은 훗날 내가 ‘젊은 날의 고집’이라 이름 붙인 다음의 두 가지 주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첫째, 악의 문제는 전능하고 완전히 선한 신의 존재에 대한 결정적인 반증이다. 둘째, ‘자유의지 변론’은 세상의 명백한 불행에 대한 창조주의 책임을 면제해 주지 않는다. 어쨌거나 나는 킹스우드 스쿨 시절부터 무신론적 결론에 찬성하거나 반대할 이유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그렇게 탐구해서 나온 첫 번째 결과물이 '신학과 위증성'이었다.---「2장 “증거가 이끄는 곳으로 가다”」중에서
그 토론회에서 내가 했던 몇 가지 단정적인 진술은 당시 내 무신론적 확신의 열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였다.
“나는 신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신에 대한 믿음의 체계’는 ‘미혼의 남편이나 둥근 사각형’과 같은 종류의 ‘모순’을 담고 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주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내가 아는 한, 이 믿음을 반박할 충분한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생명체가 무생물에서 헤아릴 수 없이 긴 기간에 걸쳐 진화했다고 믿습니다.”---「3장 “차분히 검토해 본 무신론”」중에서
이제 나는 우주가 무한한 지성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다고 믿는다. 나는 이 우주의 정교한 법칙들이, 과학자들이 ‘신의 마음(Mind of God)’이라 부른 것을 드러낸다고 믿는다. 나는 생명과 생식이 신적 근원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반세기가 넘도록 무신론을 옹호했던 내가 어떻게 신을 믿게 되었을까? 간단하게 대답하면, 그것이 현대 과학으로 드러난 세계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 그러나 나를 이끌어준 것이 과학만은 아니었다. 고전적인 철학 논증들을 새롭게 연구한 것 역시 도움이 되었다.
내가 무신론을 떠나게 된 것은 어떤 새로운 현상이나 논증 때문이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내 사고 체계 전체는 서서히 움직였고, 그것은 내가 자연의 증거를 계속해서 평가한 결과였다. 내가 마침내 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 것은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 아니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소개한 소크라테스의 원리, 즉 “논증이 이끄는 대로 어디건 따라가야 한다”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나의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4장 “이성의 순례”」중에서
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과학자들은 단지 일련의 논증만 펼치거나 삼단논법적 추론만 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실재관은 현대 과학의 핵심에서 나온 것이고, 합리적인 신의 마음을 그 중심에 두고 있다. 내가 볼 때 그 실재관은 강력하고 반박의 여지가 없다.---「5장 “자연법칙은 누가 만들었을까?”」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연법칙들이 대폭발 이후 우주가 식어간 방식에서 생겨난 우연적인 결과라고 말한다. 그러나 리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우연적인 사건들 역시 우주들의 앙상블을 지휘하는 더 깊은 법칙들의 2차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자연과 변화의 법칙들이 상수로 진화하는 것조차 특정 법칙들을 따를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더 깊은’ 법칙들이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질문이 남아 있다. 우주의 특성을 ‘창발적’인 것으로 아무리 멀리까지 밀어 올려도, 그 창발성 자체는 더 앞선 어떤 법칙들을 따라야 한다.”
다중우주건 아니건 우리는 여전히 자연법칙의 기원을 해명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받아들일 만한 유일한 대안은 그것이 신의 마음에서 나왔다는 설명이다.---「6장 “우주는 우리가 올 줄 알았을까?”」중에서
생명의 기원을 어떻게 설명할까? 노벨상을 수상한 생리학자 조지 월드(George Wald)는 …… 후에 그는 선재하는 지성을 물리적 실재의 매트릭스로 가정하고, 그것이 생명을 낳는 물리적 우주를 만들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른 가능성이 그토록 많은 상황에서, 생명을 낳는 그 독특한 특성들의 묶음을 보유한 이 우주에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최근에 나는 두 가지가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 생각을 했을 때 나의 과학적 감수성이 모종의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인정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은 정신이 생명 진화의 부산물로 나중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물리적 실재의 매트릭스와 근원, 조건으로 늘 존재했으며, 물리적 실재를 구성하는 재료는 정신 재료라는 가정과 더불어 찾아왔다. 생명을 낳고, 과학과 예술과 기술을 만드는 창조물을 진화시킨 물리적 우주를 구성한 것은 정신이다.”
이것은 나의 결론이기도 하다. 지구에서 볼 수 있는 ‘목표지향적이고 자기복제하는’ 생명의 기원을 설명해 내는 만족스러운 대안은 무한한 지성을 갖춘 정신 하나뿐이다.---「7장 “생명체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중에서
대폭발 이론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우주에 시작이 있다면, 무엇이 이 시작을 낳았는지 묻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은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동시에 나는 무신론자들이 대폭발 우주론을 물리적 설명이 필요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영원히 확보할 수 없는 설명일 수도 있었다. 나는 신자들이 대폭발 우주론을 태초에 신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그들의 오랜 믿음에 대한 확증으로 여기고 환영하는 것은 합리적인 일임을 시인했다.---「8장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을까?”」중에서
과학으로서의 과학은 신의 존재를 지지하는 논증을 제공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이 책에서 살펴본 세 가지 증거, 즉 자연법칙, 목적론적 구조를 가진 생명, 그리고 우주의 존재는 그 자체의 존재뿐만 아니라 세계의 존재까지 설명하는 초월적 지성의 빛 아래서만 설명될 수 있다. 신에 대한 이런 발견은 실험과 방정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험과 방정식이 보여주는 구조를 이해함으로써 찾아온다.
이 모든 이야기가 추상적이고 비인간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궁극적 실재가 무소부재하고 전지한 영이라는 발견에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반응하느냐고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신을 발견하기까지 내 여행은 줄곧 이성의 순례였다는 이야기를 다시 해야겠다. 나는 논증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왔다. 논증을 따라오다 보니, 자존하고 불변하고 비물질적이고 무소부재하고 전능한 존재의 실존을 받아들이게 되었다.---「10장 “전능한 존재에 마음을 열다”」중에서
초물리적인 것의 기원에 대한 답은 분명해 보인다. 초물리적인 것은 초물리적인 근원에서만 나올 수 있다. 생명과 의식, 지성과 자아는 살아있고 의식이 있고 생각하는 근원에서만 나올 수 있다. 우리 자신이 알고 사랑하고 의도하고 실행할 수 있는 의식과 사고의 중추라면, 그 모든 활동을 할 수 없는 존재에서 그런 중추가 어떻게 생겨날 수 있겠는가. …… 그러므로 우리는 이성과 일상 경험을 통해 살아있고 의식이 있고 생각하는 존재들의 세계는 살아있는 근원, 즉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부록 1 “새로운 무신론: 도킨스, 데넷, 월퍼트, 해리스, 스텡거에 대한 비판적 평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