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서 가장 훌륭한 아리스토텔레스 해설자 중 한 사람인 테미스티우스Themistius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다른 사상가들보다 ‘대중에게 더욱 유익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1986년 철학자 로버트 앤더슨Robert J. Anderson은 이렇게 썼다. ‘현대의 관심사와 걱정거리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만큼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는 고대 사상가는 없다.
또한 어떤 현대 사상가도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철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용적인 접근 방식은, 우리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
---p.30~31,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행복을 사색하는 산책」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에서 개인은 책임의 주체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먹은 것만큼 행복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은 우리가 자동항법장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윤리학 체계는 도덕적 주체로서 개인의 책임, 또는 타인에 대한 책임을 크게 강조하지 않는다.
---p.36, 「도덕적 주체로서의 행복을 찾아서」중에서
어떤 다른 생명체도 ‘이성에 따른 능동적인 삶’은 공유하지 못한다. 인간은 행동 전후에, 그리고 행동하는 동안 생각한다. 생각은 인간의 존재 근거다. 인간으로서 이성적인 능력을 발휘하면서 행동하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면, 개인의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잘 살기 위해’ 이성을 활용한다는 것은 덕을 개발하고 악을 멀리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훌륭한 사람이 됨으로써 더욱 행복해질 수 있다.
---p.43, 「선한 의지가 없다면 행복이 아니다」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즐거움을 모든 형태의 과학, 사회, 심리학적 분석을 위한 최고의 도구로 보았다. 자연은 즐거움을 활용하여, 감각을 지닌 모든 동물이 필요한 것을 발견하고 실행에 옮기도록 도움을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즐거움을 느끼는 방식은 동물마다 서로 다르다. 당나귀는 여물을 좋아하지만 개는 작 은 포유류나 새를 사냥하기를 좋아한다. 특히 인간은 개인마다 놀랍게도 다양한 취향을 드러낸다. ‘한사람에게는 꿀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독이 될 수 있다.’ 누군가는 생선을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소시지를 더 좋아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폭넓은 다양성은 음식 이외에 더 많은 영역으로 확장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주는 직업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p.69, 「자신에게 즐거운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정의와 용기, 그리고 자기 통제력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이러한 유형의 ‘덕’은 철학자들이 그의 전반적인 도덕 철학을 ‘덕 윤리’라고 부르게끔 했다. 그가 사용했던 ‘훌륭한 자질’(aretai)과 ‘나쁜 자질’(kakiai)에 해당하는 명사는 고대 그리스에서는 도덕와 특별히 관련이 없는 기본적인 일상 단어였다. 이에 해당하는 전통적인 용어인 ‘덕’과 ‘악’은 다소 부정적인 의미를 함축한다. ‘덕’은 고상한 척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악’은 잔인함과 약물 카르텔, 매춘과 관련 있으며, 그리스어 카키아kakia보다 더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p.137, 「정의, 용기, 자기 통제력을 통한 행복」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복수심에 불타는 ‘감정’뿐 아니라 그러한 ‘행동’이 적절하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있다고 생각했다. 필리포스가 통치했던 마케도니아의 정치 상황 속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인물에게 기대할 수 있듯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복수에 대한 통찰력은 솔직하고 근본적이고 유용하다.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4권에서 복수의 감정이 미덕이자 이성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p.149, 「질투, 시기, 화는 독인가 약인가?」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완전한 잠재력이 실현 되는 것은 오로지 여가 시간을 통해서라고 믿었다. 노동의 목적은 일반적으로 생물학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가 다른 동물들과 공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가의 목표는 우리를 고유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삶의 다른 측면, 즉 영혼과 마음, 개인적,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목적의식을 갖고 여가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낭비될 수밖에 없다.
---pp.246~247, 「여가를 통해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다」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의 교육적 기능을 주장한 최초의 철학자였다.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연극과 음악을 만드는 이들은 공식 임명을 받은 존재이며, 제사장 다음으로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공식 임명된 대사나 전령사보다 더 우선하는 존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또한 윤리학을 포함하여 다양한 주제를 다룬 저작에서 신화, 유명 연극 작품, 서사시에 등장했던 사례를 종종 활용했다. 인간의 성격에서 과도함과 부족함에 대한 논의는 그가 당대 희극에서 봤던 전형적인 사례로부터 상당 부분 비롯됐다. 그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아마도 TV 프로그램, 소설, 영화의 열정적인 소비자였을 것이며, 또한 그러한 작품들을 활용하여 도덕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했을 것이다.
---p.253, 「예술은 교육으로 기능한다」중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적 세계관에서 한 가지 미덕은 편견 없이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어떤 성격 특질과 행동이 다른 사람의 삶에서 행복이나 불행으로 이어졌는지, 그들이 어떻게 힘든 결정을 내렸는지, 또는 어떻게 우연한 불행에 대처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봄으로써 우리는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또 한 따라하거나 피해야 할 모형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삶은 관찰과 분석 을 위한 윤리적 사례 연구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그리고 실제 역사는 또 한 윤리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가장 흥미롭다.
---p.258, 「비극과 허구에 담긴 힘」중에서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마도 파스칼의 이러한 생각에 강하게 반발했을 것이다. 우리는 사슬에 매어 있지 않으며, 또한 항상 동료가 죽는 것을 지켜보면서 지내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자유의지와 선택권, 그리고 올바른 방식과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커다란 행복의 잠재성이 있다. 우리는 즐거운 가정에서 살고,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건설적인 노동과 여가를 경험하고, 즐거운 감각을 즐기고, 자연 세상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깨어 있는 시간 가운데 더 많은 시간을 죽음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p.275, 「그러나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말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