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 때문에 내가 이 꼴이 되었더라?’
카셀은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편히 누워 있어 본 지가 얼마만인지 새삼스럽게 떠올려보았다. 아마도 고향을 떠난 후 처음인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최근 한 달간은 낫으로 풀을 베거나 군량을 짊어지고 이동한 기억밖에 없었다.
사흘 전에 창술 훈련 끝난 다음에 누웠던가? 아니, 그다음 바로 이동 시간이 됐다고 해서 군장을 챙겼다.
이틀 치 이동 거리를 하루 만에 강행했으니 수고했다고 휴식 시간을 줄 때 잤던가? 아니, 바로 야식 만들라고 불려 나갔다.
대기조에 껴서 선잠을 잔 건 제외했다. 그건 누운 게 아니니까.
마침내 카셀은 나흘 전에 밀 포대 옆에서 쭈그리고 잤던 순간을 기억해냈다. 그것 때문에 뒈지게 얻어터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누워서 자긴 했다. 즉, 나흘 만에 누운 셈이었다.
오늘 아침,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게 전투가 벌어졌다. 카셀은 그게 적의 기습인지, 아니면 아군의 계획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지휘관이 전진하라고 할 때 전진하고 후퇴하라고 할 때 후퇴한 게 전부였다. 창을 들고 우우 소리를 내며 휩쓸려 다니긴 했는데, 적이 누군지도 몰랐다.
카셀은 창 한 번 찔러보지 못하고 적병에게 떠밀려 쓰러졌다. 카셀보다 어린 소년 병사였는데, 목에서 피를 콸콸 쏟으며 숨을 헐떡이다가 카셀의 몸 위에서 죽었다.
‘그게 나였을 수도 있었어.’
카셀은 그렇게 시체에 깔린 채로 누워 있었다. 바로 옆에서 비명과 고함 소리가 요란한 와중에도 꼼짝하지 않았다. 반나절 후 전투의 소음이 사라진 후에야 눈을 뜨긴 했지만, 그렇다고 일어나진 않았다.
어디선가 수십 마리의 말들이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셀은 얼른 눈을 감고, 말발굽 소리가 멀어지길 기다리며 생각했다.
‘애초에 이런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말아야 했어. 고향에서 얌전히 아버지 따라 밀농사나 짓는 거였는데.’ --- p.14
칼을 먼저 찔러놓고 대화를 시작하려 했던 도적들 중 첫 번째 녀석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뭐? 두목?”
“이 녀석은 나한테 자기 친구들이 있는 곳을 안내해주고 있었어. 차라리 나를 죽이지, 이놈들아. 그럼 최소한 난 두목한테 뒈지게 얻어터질 걱정은 안 하고 조용히 죽을 수 있었을 텐데.”
카셀은 혀를 쯧쯧 차며 라우레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친절을 베풀어준 음유시인의 시체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라우레.’
활을 든 도적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너…… 어디 소속이야?”
“그건 내가 먼저 물었잖아! 니들 두목 이름 뭐냐니까!”
카셀이 대담하게 나오자, 그들은 도리어 당황했다.
“타이거다.”
카셀은 잽싸게 용병들에게 들은 도적단 두목 이름을 하나 떠올렸다.
“나는 팔콘님의 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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