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 몸이 약해졌다’라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약해졌다는 표현은 겸손의 표현입니다. 나로부터 문제의 조절을 유추해보는 자기중심적이며 자기반성적인 관점입니다. 공생 관계에 있는 내 몸과 증상 중에 증상을 죽임으로써 몸이 사는 관계가 아닌, 증상으로 내 몸이 도움을 받고 건강하게 사는 이치를 터득해야 합니다. 몸이 노력하는 증상을 적폐(敵幣)로 지목하고 척결하는 태도가 아닌, 이해와 배려로 감화시키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병이 들었다, 병에 걸렸다’라는 생각에만 머물러 당장의 증상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 되면, 즉각적인 쾌차와 편리를 얻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자생적인 몸의 능력이 감퇴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에 반해 ‘약해졌다’라는 관점은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의욕을 가지게 하고, 단발적인 쾌감에 집착하지 않고 건강한 능력을 습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게 만듭니다. --- p.4
우리 몸의 세포가 활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소가 필요합니다. 산소를 폐로부터 여러 조직과 기관으로 수송하는 것이 혈액의 역할입니다. 호흡을 하면 산소는 폐의 폐포 벽을 투과하여 혈액에 흡수되고 새로 산소를 얻은 혈액은 폐순환을 따라 심장에 도달하며 체순환을 통해 전신으로 전달됩니다. 혈액이 다른 조직에 도달하면 혈액 속의 산소가 빠져나와 이산화탄소와 교환되고, 산소를 잃은 혈액은 심장으로 돌아온 후 폐로 보내져 이산화탄소는 배출, 산소는 흡수함으로써 완전히 순환하게 됩니다.
만약 이러한 산소 운반이 원활하지 않게 되면 우리 몸은 제 기능을 할 수 없어 여러 가지 증상을 낳게 되는데, 그 대표 질환이 심혈관계 질환입니다. 결국 심혈관계 질환의 치료와 예방에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것은 혈액 속에 산소 포화도가 정상적으로 회복되고, 이런 건강한 혈액이 막힘없이 모든 조직에 잘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서 언급한 한방 변증 방법에 따른 전신의 증상을 참고로 해서 혈액이 순환될 수 있는 조건을 개선시키기 위한 한약 치료를 기본으로 활용하고, 기와 혈의 순환 능력을 동시에 개선시킬 수 있는 ‘어혈삼릉침 정혈요법’을 사용하기를 적극 권장합니다. --- p.24
한의학에서는 우리 몸이 역동적 평형성을 잘 이루고 있는 상태를 ‘건강하다’라고 봅니다. 따라서 어떤 부분이 모자라면 채워주고 넘치면 덜어내는 것이 한의학 치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핵심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장 겉으로 드러나고 있는 질병 상태인 ‘병증’에 대한 개선 작업도 중요하겠지만, 평상시에 건강을 잘 유지하고, 나아가 건강 수준을 향상시키고자 도모하는 예방의학적 관점에서는 바탕이 되는 체질인 ‘소증(素證)’에 대한 적극적 개선 작업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허약아들에 대한 장기적인 체질 개선 치료를 한의학적으로 진행함에 있어서는 이러한 예방의학적 태도를 반드시 견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어린이 보약’이라고 하면 녹용이나 홍삼이 들어있는 탕약만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한의학에서의 보약은 크게 ‘보기약(補氣藥)’, ‘보혈약(補血藥)’, ‘보양약(補陽藥)’, ‘보음약(補陰藥)’의 네 가지로 나뉩니다. 아이들의 체질적 불균형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병증의 상태 및 심각도 등에 따라 최적의 한약재를 선택하고 적절한 비율로 조합해서, 안전성과 유효성 및 안정성이 모두 잘 충족될 수 있도록 처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막연하게 면역력을 키워주는 음식이나 약재를 찾아 아이에게 먹이기보다는 한방 소아과 전문가를 통해 우리 아이가 진짜로 약한 부분, 불안정한 부분, 혹은 지나치게 넘치는 부분이 어디인지 전문적으로 진찰한 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 p.124
일반 피부과에서는 첫 번째 원인인 과도한 피지를 없애는 피지 억제제를 처방합니다. 하지만 우리 몸의 피지는 불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약을 먹는 동안 눈이나 코의 점막 또는 입술이 함께 마르는 부작용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더불어 피지 억제제를 끊었을 때는 그동안 억제되었던 피지가 한 번에 폭발하는 리바운드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피지 억제제 중 하나인 로아큐탄은 구순염(90%), 안구 건조로 인한 결막염(약 40%), 기형아 유발 등의 매우 심한 부작용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피부과에서는 두 번째 원인인 P.Acne 세균의 번식을 줄이기 위해 항생제 및 소염제를 투약합니다. 다만 세균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닌 일시적으로 번식을 늦추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약을 끊게 되면 염증이 재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끝으로 각질 순환이 느린 경우에는 각질 제거제를 사용하거나 레이저 토닝 혹은 필링을 진행하여 각질층을 청소해줍니다. 하지만 보통 2개월 정도 지나면 다시 각질 순환이 느려지면서 염증이 생기게 됩니다.
이렇듯 피부과에서는 모든 여드름 환자를 위 세 가지 원인만으로 진단하여 치료하기 때문에 개인에 맞는 섬세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필자의 한의원에 내원하는 여드름 환자들을 보면 사실 위 세 가지 원인 외에도 몸의 내부나 피부 자체의 다양한 문제에서 여드름의 근본 원인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p.246
2009년 대전대학교 한의학연구소 논문집에 실린 「가미온담탕(加味溫膽湯)으로 호전된 자율신경실조증 환자 1례」에 따르면 경계, 정충, 불안, 상열감의 증상을 호소한 환자에게 임상증상과 병력에 근거하여 가미온담탕을 처방하여 증상의 호전을 보였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또한 2001년에 대한예방한의학회지에 실린 「가미온담탕이 스트레스성 뇌신경전달물질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뇌 내 각 부위에서 신경전달물질의 농도가 상승하는 것을 억제하였고, 따라서 가미온담탕은 실험적 스트레스로 인한 여러 가지 병적 상태를 개선시킬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는 결론도 있습니다.
위와 같이 다수의 논문에서 한약이 불면증에 효과적이라는 임상 근거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필자의 병원에서도 숙면탕이라고 불리는 처방을 자주 사용합니다. 숙면탕은 심신을 안정시켜주고 뇌의 활동을 편안하게 해주어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을 주며, 수면의 질을 높여주는 처방입니다. 천왕보심단, 귀비탕, 온담탕 등의 주요 약재에 복신, 산조인, 백자인, 목향, 인삼, 당귀, 원육, 황기, 원지, 천문동, 맥문동 등을 환자들의 증상에 맞춰 새롭게 구성하는 처방입니다. 이 외에도 산조인탕, 시호계지탕, 영계출감탕, 감맥대조탕, 가미소요산 등 불면증 치료에 효과적인 처방들이 많이 있습니다. --- p.302
화병 초기에 기가 막혀 순환이 안 되는 병리현상을 기체 또는 기울(氣鬱)이라고 하는데, 기체가 생겼다고 모두 화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가 막힌 것이 미약하거나 몸이 스스로 회복하는 경우에는 바로 정상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러나 만약 막힌 상태가 심하거나 몸의 회복력이 약하여 안 풀어지고 악화되다 보면 마침내 화병이 됩니다. 기가 막히면 체액의 순환도 방해를 받게 되므로 담이라고 하는 병리 물질이 만들어지는데 이 담이 다시 기의 순환을 막는 악순환이 일어나면서 발병하게 됩니다. 따라서 몸이 붓거나 무겁고, 목이 막힌 듯이 답답하거나 가래가 나오며, 변비가 생기거나 소변을 자주 보고 싶어 하고 손발이 저린 등의 증상이 발생합니다.
또한 맥진(脈診)을 하면 혈관이 가라앉은 형태인 침맥(沈脈)이나 혈관이 콩알처럼 볼록 올라오는 활맥(滑脈)이 나오는데, 맥진을 통해서 현재 몸의 병리 상태를 매우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럴 때의 치료는 당연히 막힌 기를 뚫어주고 담을 제거하여 기가 잘 순환하게 만드는 것이 주가 됩니다. 이기거담(理氣祛痰)하는 처방을 위주로 하고, 겸해서 나오는 다른 증상을 참고하여 이에 맞는 약재를 가미하여 치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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