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기사의 힘쓰는 소리가 잦아들고 손아귀의 힘도 서서히 빠졌습니다. 기사의 뺨에 닿은 털 감촉이 부드럽고 따뜻했습니다. 괴물의 깊은 숨소리가 가슴을 가득 채웠습니다. 기사는 고개를 들어, 괴물이 그 사나운 이를 드러내 놓고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따스하고 짜디짠 눈물이 기사의 눈에서 소리 없이 흘러나와 뺨을 지나 땅바닥으로 똑 떨어져 내렸습니다. 깜짝 놀라 잠깐 주춤했지만, 이윽고 한 방울, 또 한 방울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괴물」중에서
화가는 먼지 쌓인 이젤을 살며시 꺼내 산산조각 내버렸습니다. 물감과 붓을 꺼내 자신이 본 것을 주위의 벽, 바닥, 천장 그리고 문에 그렸습니다.
화가는 구름과 태양이 있는 하늘, 눈과 비, 뾰족 바위와 반짝거리는 샘물이 있는 언덕을 그렸습니다. 파릇파릇 여린 나무, 늙어 헐벗은 나무와 풀을 그렸지요. 크고 작은 짐승들, 허공 속, 땅 위 그리고 물속, 쫓고 쫓기는 것들…. 남자와 여자, 갓난아기, 어린아이, 노인과 죽어 가는 사람들을 그렸습니다. 화가는 이들이 일하고 쉬며, 기쁨과 슬픔에 빠진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 한장의 캔버스 위에 자신이 아는 세상과 세상의 아름다움을 그렸지요.
---「거장 화가」중에서
그런데 폴리는 자신이 저들과 같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늘 마음이 변했으니까요. 자신이 누구인지 달처럼 하나도 알지 못했지요. 달은 어둠에서 나와 은빛 조각이 되었다가 이윽고 크고 둥글게 빛나는 원을 이루고 다시 천천히 사라지죠. 그래서 폴리는 한순간 커졌다가 한순간 작아지고, 한순간 그 중간에 있다가 한순간 자신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했어요. 어느 날은 바다에서 튀어나온 파도처럼 기운 넘치고 열정적인 생각이 가득해서 자신 앞에 놓인 것을 다 헤치고 나갈 수 있을 것 같았지요. 어느 날은 고요하고, 차분하고, 평온하고, 평화로웠지요. 어느 날은 엉큼하고 수수께끼 같았어요. 마치 가라앉은 보물과 낯선 왕국이 폴리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표면 아래 살고 있는 것처럼요. 다음 날에는 마음이 가볍고 밝았어요. 마치 거품이 오후 산들바람에 휙 날아가는 것처럼요.
---「늘 마음이 변하는 소녀, 폴리」중에서
몇 주, 몇 달 동안 오스왈드는 다른 박쥐들과 함께 동굴을 떠났다가 숲 가장자리 버블 나뭇가지에 앉아 기다리면서 조금 늦게, 조금 더 늦게 돌아왔습니다. 어둠 이외의 다양한 무늬, 깜빡거리는 불빛과 그림자, 낯선 소리, 메아리와 밤의 끝에 일어나는 휘파람 소리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오스왈드는 점점 더 늦게 돌아와 친구 수 옆에 거꾸로 매달렸습니다. 오스왈드는 이제 숨이 차지도, 서두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차분하고도 고요하게 생각에 잠겼지요.
---「박쥐 오스왈드 이야기」중에서
많은 이들이 무지개다리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멀리서 봤다고 했어요. 몇 사람이나 무지개다리를 실제 찾았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소문에 의할 것 같으면 바다 어딘가에 무지개다리가 있는데, 그걸 찾아내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간다고 했으니까요. 어떤 사람은 그 다리가 천국으로, 또 어떤 사람은 마음이 바라는 곳으로 이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멀고 먼 바다 아래 숨어 있는 땅으로 이끈다고 믿었지요. 해적과 모험가들에게 그것은 다이아몬드로 빛나는 나무와 황금 나뭇잎이 달린 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는 마법의 세계로 가는 관문이었습니다.
---「바다에서 만나는 무지개다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