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한밤중에 담을 넘어 도둑이 들어왔다. 도둑이 어리벙벙한 사람이었던지 "여보, 당신, 어디 사는 사람이야? 이 밤중에 남의 담을 왜 넘어?"하고 김수영이 물어댔으나 도둑은 대답하지 않고 허리만 굽신굽신했다. 참다 못한 김수영은 "이거 보세요...... "하고 존대말을 쓰기 시작했다. 누가 도둑이고 누가 주인인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는 도둑이 "오늘밤, 나 여기 잘 수 없나요?"했고, 김수영이 짜증난 목소리로 "그만 ... 가시오."했고, 이번에는 도둑이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하고 물었다.
--- pp. 370~371
어머니에게 병아리를 길러주고, 아들을 낳고, 상을 받고, 시집을 내는 측면에서 김수영을 보면 오랜만에 그가 '문제 인간'으로부터 벗어나 안정된 삶을 찾은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관찰에 불과하다. 여전히 그는 불평과 불만 속에서 살았다. 그의 불평 불만은 첫째로, 살기 어렵다는 데서 비롯된다.
--- p. 257
야전병원에서 김수영은 또 한 여자를 만났다. 해방 직후 이봉구, 최재덕, 양병식 등과 어울려 다니며 시를 쓴다고 하였던 서울의과 전문학생 김은실이었다. 그날도 김수영은 미스 노를 보려고 외과병동 쪽으로 가고 있는데 시야에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흰 가운을 입고 있었지만 옛날의 왈가닥 김은실에 분명했다. 김수영은 '닥터 리!'하며 기쁨을 가득 실은 목소리로 불렀다. 김은실은 부르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김수영의 큰 눈을 보았다. 그리고 포로 복장을 보았다. 그리고 복장에 붙어 있는 'prisoner of war(P.W.)'라는 영자를 보았다. 그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이 빨갱이 새끼!"하고 소리쳤다. 김수영은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뒷걸음쳐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사건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김수영은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은 듯했다. 그 병동 쪽으로 잘 가지 않았을 뿐이었다.
--- pp. 177~178
사랑은 호흡입니다.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에는 오늘과 같이 복잡한 사회에서는 여간 조심해서 보지 않으면 분간해 내기 어렵습니다.사랑이 순결 하면 할 수록 더 그렇습니다.기도가 눈에 보이지 않듯이 사랑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그러한 의미에서 자유의 방종여부를 판단을 세우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는 사랑을 갖지 않은 사람들의 자유가 사랑을 가진 사람들의 자유를 방종이라고 탓하고 있습니다.이러한 사회에서는 자유가 없습니다.
--- p.
김씨네 집안의 관심을 한데 모은 갓난아기는 가족들의 염려대로 건강한 아이는 못 되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화등잔만하더니 12월에 들어서자 폐렴에 걸려 기침을 콜록콜록 했고,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정월 초하루, 차례를 지낼 적에는 시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질까 봐 며느리는 아기를 치마폭에 감싸고 다녔다. 그런 모습이 가엾어 보였던지 이웃사람이 갓난아기의 폐렴에는 '오리 혓바닥이 그만'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녀는 남대문으로 달려가 오리를 세 마리 사다가 혓바닥을 먹였다. 놀랍게도 아기의 열은 떨어지고 기침이 멎었다. ......
--- p. 33
4.19 때에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통일을 느꼈소. 이 '느꼈다'는 것은 정말 느껴본 일이 없는 사람이면 그 위대성을 모를 것이오. 그때는 정말 '남'도 '북'도 '미국'도 '소련'도 아무 두려울 것이 없습디다. 하늘과 땅 사이에 온통 '자유독립' 그것뿐입디다.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그처럼 아름다워 보일 수가 있습디까! 나의 온몸에는 티끌만한 허위도 없습디다. 그러니까 나의 몸은 전부가 바로 '주장'입디다. '자유'입디다.
--- p.288
...... 그렇다면 김수영의 동경유학이 김수영에게 실패만을 안겨주었던가. 수확은 없었던가. 이에 대해 김수영은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 하지만 수확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김수영은 미즈시나 연극연구소에서 드라마를 배웠다. 드라마란 우리 문화의 속성에는 부재한 것으로, 그것은 갈등과 대립을 통해 화해와 정화라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김수영은 그런 드라마를 그의 시에 도입하여 새로운 시를 창조해냈다. 그것은 커다란 수확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었다.
--- pp. 62~63
...... 그렇다면 김수영의 동경유학이 김수영에게 실패만을 안겨주었던가. 수확은 없었던가. 이에 대해 김수영은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 하지만 수확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김수영은 미즈시나 연극연구소에서 드라마를 배웠다. 드라마란 우리 문화의 속성에는 부재한 것으로, 그것은 갈등과 대립을 통해 화해와 정화라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낸다. 김수영은 그런 드라마를 그의 시에 도입하여 새로운 시를 창조해냈다. 그것은 커다란 수확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었다.
--- pp. 6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