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줄의 맨 뒤로 가서 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줄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오는 것을 뜻한다. 줄이란 질서이고 질서는 개인의 욕망 때문에 필요해진 것이다. 사로잡힌 경험의 기억은, 자신을 버리는 것과 닮아 있다. 그들은 한때, 아는 사람이 없는 방식으로 살기를 원했던 것이다. 방으로 들어가 은밀히 문을 닫고, 비밀을 가진다. 그들은 그럼으로써 발생되는 속도의 이탈이나 낙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모든 불이익에 대해서 무감각해지겠다는 것을 포함한다. 그것은 결코 이타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윤리적인 목적을 가진 행위는 어느 한 개인의 영혼을 붙잡아두지 못한다. 대상을 매혹시키는 것은 비밀 그 자체이다. 그들은 그것을 위해서 비싼 대가를 지불한다.
--- pp.164-165
우리가 이바나, 하고 말하는 것은 집시, 라고 불리는 한 마리 개와, 그리고 나머지 분석되지 않은 체험을 의미한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를 떠났고 아는 사람이 없는 방식으로 살기를 원했다. 그것은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저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사용하는 이방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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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계속하는 동안 우리 속으로 무엇인가 스며들었다. 우리는 우리가 느끼고 있던 그것을 지속적인 것으로 하고 싶었다. 그것은 일종의 영혼이었다. 대도시로 돌아가게 되면 그것은 우리를 찾아왔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떠나게 될지도 몰랐다. 아마 분명히 그럴 것이다. 우리는 대도시의 삶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도시를 떠나온 여행자로 길에 머무르기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일상적이고 근원적인 본질이 변화하거나 혹은 어떤 변이가 새로이 발현되기를 원했으며 또 실제로 그것이 이루어졌다. 대도시에서 우리는 거미줄 같은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같은 지역을 반복하는 여행을 했으며 보이지 않게 눈물을 흘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고 밤에는 잠들지 못하고 언제나 자살을 꿈꾸었다. 우리는 아무도 다시 대도시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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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란 단순히 자연이나 전원에 반대되는 그런 지역을 나타내는 개념이 아니라 지나치게 총체적인 개성이 되어 있었다. 터져나갈 듯이 과잉된 욕망과 자의식을 상징하기도 한다. 단지 많은 건물과 현대적인 설비만이 대도시를 특징짓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밀집된 사람, 포화상태를 넘어버린 개성,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 칼날 같은 에고이즘들이 응축된 시공간이다. 대도시는 조직이며 포식자이다. 보이지 않는 사슬은 한번 대도시로 들어온 이들을 잘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알고 지내던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과 동시에 적의와 경멸과 성가심을 느꼈다. 그들은 대다수가 가난을 경멸하는 가난한 탐미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 공허한 찬사를 던지고 좀더 세속적으로 유명해지기 위해서 최대한 덜 세속적으로 보이는 포즈를 취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머물렀던 곳은 시궁창이었다. 에고이즘이라는 고급 외투를 입고 독설이라는 값비싼 향수를 뿌리고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방충제 세일즈맨보다 더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한 무리의 신사와 숙녀들, 그들의 지적인 대화와 아방가르드인 체하는 연출과 감미로운 칭찬의 말과 싸늘한 경멸의 표정이 뒤범벅된 시궁창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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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살아 있었으나, 나의 어느 부분은 이미 종말을 고했다. 내 죽음을 그곳에 두고 왔다. 달 없이 흐린 밤, 살을 뜯어나갈 듯이 세찬 눈보라가 불어온다. 창들은 어둡고 촛불은 꺼졌다. 나는 걷고 또 걷는다. 경사진 구시가지의 알 수 없는 작은 골목들을 헤매이다가 푸른 광장의 모퉁이에 이르면, 높은 벽 위에 아는 사람의 데스마스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 p. 153
13 그들은 서로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니 그것을 처음으로 알아보고, 발견했다.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발음했다. 그들은 서로의 침묵을 깼다. 그들은 전율했다. 그들은 서로의 이름이, 그 목소리가 영혼을 건드리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서로의 발자국 아래에 가서 누웠다. 백조가 그들에게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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