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분들께 먼저 말하고 싶다. 이 싸움은 나와 ‘위안부’ 할머니들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조차 생각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우리는 그동안 ‘위안부’의 목소리를 오로지 하나로만 인식해오지 않았을까. (…) 그런데 2000년대 들어 그런 차이는 가려지기 시작했고, 결국 중심화된 발화/(정형적 피해자)스토리와 같지만은 않은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묻혀버리고 말았다. 우리 앞에 놓인 건 극도로 정형화된 ‘위안부’ 이야기이고, 거기서 벗어나는 이야기들은 거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들어가면서’)
이 책은 2014년 6월 중순부터 시작해 2017년 1월에 형사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같은해 10월에 2심에서 유죄라는 판결을 받게 되기까지의 네 개의 재판에서의 공방, 그리고 고발 직전과 이후의 상황을 정리해본 책이다. 이 3년 반 동안, 나는 법정은 물론 법정 바깥을 향해서도 끊임없이 쓰고 항의하고 정정을 요청해야 했다. 국가와 국민, 때로 해외로부터의 집단공격에 맞서는 일이기도 했던 그 작업은 내게는 두더지 때리기 게임과도 같았고, 그래서 나는 자주 도로감에 시달렸다. (…) 언론 기사뿐 아니라 학술지에 실린 글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런 글들이 양쪽 다 자주 ‘범죄 증거자료’로 법정에 제출되었기 때문에, 나는 반론의 의미가 없는 글에조차 반론을 해야 했다.(‘들어가면서’)
『제국의 위안부』는 원래 일본을 향해 쓴 책이다. 즉 일본의 책임을 묻기 위해 쓴 글이다. 다만 나의 시도는 기존 연구와 지식인, 그리고 지원단체와는 다른 논지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동안 전쟁범죄로만 다루어져왔던 위안부 문제를 제국주의의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 따라서 조선인 위안부에 한정해서 보았을 때는 식민지지배가 야기한 문제라는 점, 그러나 그동안 일본이 그것을 명확히 인식한 적은 없었다는 점, 그러니 그에 기반한 사죄와 보상이 새롭게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중심 취지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을 위해서는 사태 자체를 정확히 알아야 했고, 20여 년에 걸친 운동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해야 했다.--- p.24
“하지만, 이 이야기가 들어가면… 그야말로 적은 100만, 나는 혼자, 그렇게 된다고.” 예상치 않았던 말에 나는 많이 놀랐다. 배 할머니가 ‘적’으로 지칭한 이들은 누구였을까. 그건 아마도, 누군가를 특정했다기보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 모든 사람이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처음 만난 나에게 곧바로 한국의 운동방식을 비판했다. (…) 할머니들의 생각과 태도의 차이는, 할머니들이 그저 투명한, 획일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제국의 위안부』에서 할머니들이 오로지 (무구하고 맑은) ‘소녀’나 ‘투사’로만 표상되는 현상을 비판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 p.3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