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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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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그림

: 명화 속 눈먼 욕망과 연애 유희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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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8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502g | 148*225*20mm
ISBN13 9788983716248
ISBN10 89837162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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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빠져 드는(falling in love)’ 것 …… 느닷없이 닥쳐오는 것이기에 맘대로 되지 않고, 오로지 겪어 내야 하는 수동태의 ‘사건’이다.”--- p.7 「머리말」

“17~18세기의 유럽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공간과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 시기의 사랑이 우리 시대의 사랑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에 눈멀었다’ 혹은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 표현이 동서고금을 망라해 통용되듯 말이다. ‘눈멂’은 철학이 과학과 함께 얽혀 발달했던 당대 주요 화두 중 하나이며, ‘눈먼 사랑’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p.8 「머리말」

이 시대(17세기 네덜란드) 미술 창작이 대체로 시학에 기초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림 속 그림’들 또한 대단히 시적이다. 폭풍우 치는 바다나 지도처럼 그녀가 있는 공간과는 전혀 다른 낯선 차원의 공간이 틈입해 들어와 있거나, 창이나 빈 벽과 같은 사물 자체가 텅 빈 눈으로 편지 읽는 여인의 마음을 되돌려 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창이며 허공이며 빈 벽들이 편지의 증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p.20

그림의 모델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으며 화가가 그에 관해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히려 「진주 귀고리 소녀」의 매력을 더하는 요소이다. 그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 그림이 기이할 정도로 이미지의 본성 자체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떤 대상의 이미지를 갖거나 표상하는 것은 사실은 그 대상의 부재를 그리는 것이다. 이미지는 언제나 부재의 기억이며 잃고 마는 시선이다. 즉 상실을 경험한 후에야 이미 소유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는, 혹은 가진 적이 없기에 상실할 수도 없는 그러한 대상으로 다가온다. 이미지는 잡으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 휘발되어 버리는 슬픔의 이름이다.--- pp.63-64

화사한 매력과 부박(浮薄)함에 한순간 매혹당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무의미함을 곱씹는 허무주의적인 순간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어떤 대상에 열정적으로 미혹당하고 있을 때가 아닌가? 매혹과 경이를 잃게 된다면 삶은 곧바로 각화해 굳은 외피로 덮일 것이다. 「그네」에서 우리는 “가장 매혹적인 것은 다름 아닌 매혹당한 시선이다”라는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p.83

눈먼 정념만큼 개인의 정체성에 위협이 되는 것은 없다. 사랑의 우연성과 눈먼 선택에 대한 유비라는 점에서, 「까막잡기 놀이」는 한 발 잘못 내디딜 경우 운명적으로 좌초될 수도 있는 위험성……을 놀이의 형태로 보여 준다. 충동적, 정념적 사랑은 근본적으로 억제하기 어려운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렇듯 본능과 기회에 좌우되는 충동적 사랑을 게임을 통해 놀이의 규칙, 즉 이성과 선택의 통제하에 놓기를 원했던 것이다. 놀이에는 이러한 사고가 스며들어 있다.--- p.90

와토의 그림에는 18세기 지성과 예의를 상징하는 ‘대화의 이념’이 깃들어 있다. ……마치 파트너를 바꿔 가며 춤을 추듯 예의 바른 대화를 건네는 태도는 18세기의 문학과 수많은 계몽적 지성을 낳은 살롱의 정신을 반영한다.--- p.103

목동과 목녀를 그린 부셰의 목가적 회화는 영원히 상실된 자연에 대한 귀족사회의 향수와, 자연과의 화합을 꿈꾸며 이상향을 지향하던 당시 상류사회의 사교적 삶을 그대로 보여 준다.--- p.115

이들[마담 드 퐁파두르, 마담 드 맹트농, 마담 드 몽테스팡 등등]은 당대 최고로 손꼽히던 미인들이자 온갖 재능을 갖춘 지적인 여성들로서 예외 없이 인문학을 비롯해 예술과 건축의 훌륭한 메세나이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정부(후궁)였지만 그녀들의 지위는 확고했다. 초상화와 조건만 보고 결정했던 첫 번째 정식 결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군주가 진정으로 사랑에 빠져 선택한 여인들이었던 것이다.--- pp.128-129

왕비는 국가 영토의 상징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방인 출신이었다.(족외혼 전통에 따라 대개 이국의 공주를 왕비로 맞이했다.) 태어난 곳을 떠나 다른 나라 왕의 동반자이자 ‘상징적 영토’, 즉 국토 자체가 되어야 하는 이방인 출신의 왕비의 지위란 복잡한 것이었다.--- p.147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의 …… 비극적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운명적으로 어긋나거나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역설적으로 ‘끝나지 않는’ 영원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혹은 사랑의 성취가 그대로 참담한 비극이 되어 버리는, 성과 사랑이 곤궁에 빠져 교착되어 버리는 기이하고 알 수 없는 섹슈얼리티의 장소를 지시한다.--- p.189

큐피드의 활은 잘 알려진 것처럼 황금 화살촉과 납 화살촉에 의해 정념 혹은 미움을 불러일으키는 도구이다. 큐피드의 화살은 마치 다트처럼 마음을 관통하는 성애적인 시선의 일견(glance)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녁을 겨냥한 화살촉은 마음을 관통하는 동시에 상처를 낸다. 그러나 연인에게 그 아픔은 오히려 피할 수 없는 기쁨일 것이다.--- p.198

신화와 문학과 그림은 자유로운 해석을 열어 두는 마지막 공간--- p.203

그러나 이러한 감정의 교차는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비로소 보인다. 사물에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그 형체를 잃게 만든다.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야만 대상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분별할 수 있다.--- p.215

히아킨토스와 가니메데 그림에서 보이는 동성애는…… 육체로만 한정되지 않는 관계, 죽음을 넘어 영혼 자체, 영혼의 진동으로 맺어진 동성 관계의 표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히아킨토스와 가니메데 주제의 그림은 모두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필연적 죽음으로 끝나는 슬픈 사랑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러한 강렬한 사랑, 브로맨스의 진한 우애는 때때로 인간적 한계 너머의 삶을 보여 준다.--- p.217

모든 신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장난꾸러기 사춘기 소년. 그(큐피드)가 날리는 화살에는 이유가 없으며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는다. 그의 화살을 맞은 자는 자신도 모르게 불가항력적인 힘에 복종하게 되고 그 욕망의 힘 앞에서 이성과 판단력은 무력화된다.--- p.224

부샤르동이 조각한 큐피드의 눈은 대단히 독특하다. ‘눈먼 큐피드’ 도상에서처럼 눈을 가리지는 않았으나, 개별자를 초월해 영원을 응시하는 조각상의 관례에 따라 동공 없는 텅 빈 응시를 드러낸다.……미소 짓는 텅 빈 눈이 나타내는 ‘눈멂’은 다른 사람들의 느낌, 타자에 대한 무관심을 지시한다. 그는 아무렇게나 화살을 날리며 자신이 어떤 열망과 고통을 초래하는지에 대해서는 눈멀어 있다. ‘눈멂’은 또한 큐피드의 자기 충족성을 나타낸다. 그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시선을 돌리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내면으로 침잠해 있다.--- p.225

헤라클레스의 (선악을 가르고 적을 때려잡는) 곤봉과 사자 가죽은 그의 난폭함과 폭력성을 함축한다. 큐피드는 산적에게나 어울림직한 이 투박한 몽둥이를 날렵한 사랑의 활로 깎아 낸다. 이는 마치 육중하고 어두운 바로크로부터 천상의 나래로 가볍게 날아오르는 로코코적 에스프리 그 자체를 보여 주는 듯하다.--- p.233

17세기 네덜란드 장르화는 내외부 공간이 인물의 위치와 시선을 경유하여, 특히 창과 문을 경유하여 다른 공간으로 상호 이행되거나, 혹은 인물의 내면이 바깥 공간의 분위기를 통해 조명되는 경향이 있다. 즉 내부 공간은 외부로, 바깥 공간은 인물의 내면으로 침투하듯 열려 있는 것이다. …… 17세기 장르화의 공간은……겉보기로는 알 수 없는 인물의 내면을 외부 환경 묘사를 통해 짐작하도록 한다. 즉 관람자가 그림을 볼 때 그림 속 인물이 주변 공간에 마음을 내어 놓듯 관람자도 공간에 침윤하여 그 또는 그녀에게 동화되고 그의 내면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 pp.243-244

……사냥, 게임, 춤, 우아하고 애교 넘치는 문자 그대로 ‘갈랑트리(galanterie)’한 실내 연회와 실외의 대화 장면, 재치 있는 교태(coquettrie)와 뒤섞인 감미로운 연애를 그렸다. 이런 그림에는 17세기 바로크라든지 19세기 신고전주의의 그림에서 보이는 명백한 도덕적 훈계는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그들의 삶은 세련된 놀이와 사교로 소진되는 것처럼 보인다. …… 가벼우나 경박하지 않고 초연하면서도 정중한, 우아함이 깃든 당당한 모습은 엘리트 계층이 그들 자신을 보고자 하는 방식이었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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