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정확히 옮기기 어려운 직감에 이끌려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삼각대를 놓고 셔터를 누른다. 한 장소에서 길면 삼십 분 정도 머무른다. 담배를 피우고 카메라 뒤편을 서성이며 이번에는 내가 원하는 사진이 찍혀있길 바란다. 결과물을 확인하고 만족스러우면 발길을 옮긴다. 이것이 내가 원하던 사진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의 가장자리에선, 이걸로 밤에 사진 찍으러 나가기를 멈추진 않을 것임을 안다. 내가 찾던 게 아님을 안다.
--- p. 74
이 시리즈는 작업 노트가 없다. 그저 밤을 지새웠던 셀 수 없는 나날들과, 그 희미한 기억에 관한 어떤 기록일 뿐이다. 때로 그 나날들과 기억들이 실제였는지, 아니면 스스로 꾸며낸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 p. 93
그리고 알아차렸다. 그것이 나였다. 내가 잘 알고 있다고 믿는 ‘내’가 아니라, 누군가의, 그러니 어쩌면 실질적인 ‘나’였다. 지금 내게 결핍되어 있다고 믿었던, 암만 들여다보아도 내게는 없을 것만 같은 ‘어떤 것’이었다. 사진은 그것을 암시하고 대변하며 은유하고 있을 따름이지만, 그러므로 단서 없이는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는 정서이며, 공감의 영역 바깥으로 넘어간, 은밀하고 사적인 위대한 감정. 사랑. 둥글고 환한 그것이었다. 무상한 시간의 도드라진 한 점. 그러므로 돌아서 반추하게 만드는 바로 그 지점.
--- p. 97
나의 많은 책엔 열대의 빗방울이 묻어있다. 바다에 비가 쏟아지면 책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뛰어서다. 열대의 바닷가에서 책을 읽을 때, 바닷바람을 쐬며 걸을 때, 기다리던 동물을 발견했을 때,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봤을 때, 바다에 별이 쏟아지는 것을 봤을 때, 소금기 묻은 머리를 감을 때, 그럴 때 삶은 참을 수 없이 환했다. 내가 있던 곳에 생명력이 넘쳤고 내가 그것을 빨아들였기 때문이었다.
--- p. 105
오늘은 종일 자판으로 울기만 했다. 실제로는 울지 않았는데 자판으론 계속 울었다. 속에 할말이 있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듯이. 이전에는 어떤 말이든 할 수 있었고 아무와도 상관이 없었다. 죽을 수 있었고 살지 않을 거여서 신경쓰지 않았는데 이제 살고 싶어하고 계속 살아 있고 싶어해서 곤란해진다. 죽으면 해결된다. 죽음은 거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긴 하다. 어떤 행동을 안 하고 싶으면? 죽으면 된다. 그럼 더이상 행동 못하니까. 하지만 살려고 하면 문제가 된다.
--- p. 112
나는 종종보다는 더 자주 슬픔에 잠기는데 왜 슬픈지 모른다. 요즘 들어 화를 내는 주기가 짧아지는데 왜 갈수록 다혈질로 변하는지 알지 못한다. 입에도 대지 않던 버섯을 언제부터 먹고 싶어졌는지, 다사다난한 악몽에 잠식되는 이유가 뭔지, 도대체 나에게 어떤 딸랑이를 흔들어야 내 기분을 달랠 수 있는지 나는 아직도, 그 무엇도 알지 못한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정녕 내 자신이 맞는지 되묻는다. 물론 돌아오는 답은 없다. 나는 조금 혼란스럽다. 머리를 긁는다. 모르겠다는 말은 더 이상 안 쓰고 싶다. 알겠다는 간결한 대답도 싫다.
--- p. 116
어디에 정박할 것인가, 나는 아직도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뭔가를 이뤄버린 배들의 소식들. 듣고 있지만 애써 모른 척 한다. 담담하려고 애를 쓴다. 부러움의 감정이 배 전체를 넘실넘실 흔든다. 문득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느낌이 든다. 혼자 어리석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은 마음 속 비약이 일어난다. 그럴 때면 잠시 배를 멈춘다. 문득문득 침잠한다. 이러다가 영원히 잠기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는 찰나, 부력이 나를 튕기듯 수면 위로 밀어올린다. 어느새 달빛이 바다 한 가운데에서 길을 낸다. 저 달빛이 등대라도 되는 것처럼 따라가본다. 어쨌거나 각자의 항로가 있는 것이다. 그 항로 위에서 나는 멈출 줄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은 알지 못한다.
--- p. 120
사진 속의 나와 파트너는 어색하게 포옹하고 있다. 7개월 만에 그의 몸과 마주한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언제 어디서든 목소리를 듣고 얼굴을 보며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몸을 마주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공간과 장소는 몸과 마음의 속도를 변화시킨다. 바삐 출근하는 몸과 이제 막 일어나 느긋하게 커피를 내리는 마음은 다르다. 무수히 다른 시간과 공간을 넘어 만난 두 개의 몸과 그 낯설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의 몸이 어떤 속도로 걷고 어떻게 밥을 먹으며 언제 자고 일어나는지 관찰한다. 그의 말투와 행동에 익숙해졌다 생각하다가도 정말이지 크게 놀라곤 한다. 그렇게 다른 몸의 속도를 마주한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가늠한다. 그 몸과 같이 사는 법을 시도하고 실험한다. 함께 중심을 잡아보고 간격을 맞춰본다. 사진 속의 나는 어쩐지 아직도 어색한 표정이다.
--- p. 127
얼마전, 작업에 유독 꽃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써서 답한 적이 있습니다.“나는 부족하지만 꽃은 완벽하니까. 이렇게 말해놓고 다시 꽃을 보면 아까와는 다르게 완벽하니까. 꽃의 예쁨, 꽃의 징그러움, 깨끗함, 더러움, 찬란함, 이상함 등은 어떻게든 계속되고, 덩달아 계절을 대하는 기쁨이 있고, 행여 꼴도 보기 싫다면 철저히 버릴 수 있다는 쾌감도 한몫 한다.”지금 읽어도 딱히 달라진 생각은 없는 듯하네요. 하나, ‘완벽’을 ‘완전’으로 수정하렵니다. ‘완전’이라면 분명 ‘불완전’을 포함할 수 있을 거니까요. 꽃은 완전하다. 이 말이 저에겐 울림을 줍니다.
--- p. 146
그의 마음을 끄는 시간은 밤이었다. 그의 마음을 끄는 장소는 주변이었다. 그는 누구도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사진을 찍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 p.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