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 호주의 야생 앵무새가 처음으로 유럽에 들어왔다. 그때는 녹색과 노란색 깃털을 지닌 앵무새가 전부였다. 1850년대부터 대량 번식을 통해 돌연변이가 발생하면서 흰색과 빨간색, 파란색 등 다채로운 컬러의 앵무새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 앵무새들은 대개 애완동물이 되어 거실에 마련된 새장 속에 갇혀 홀로 지냈다. 그들이 원래 자연 속에서 무리를 지어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아무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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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토마스 로어)는 자신이 새에게 가장 시각적으로 끌리는 부분이 무엇인지 탐색하면서 깃털의 색깔과 형태, 질감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 결과 미세한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깃털의 패턴, 빛과 그림자의 기울기에 따라 도드라지는 깃털의 색깔 등이 섬세하게 사진에 담기게 되었다. 이는 시간을 두고 찬찬히 바라보고, 또 대상에 집중하면서 관찰해야 캐치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 장면이 아름다운 이유는 단순히 피사체인 새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라, 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해 대상을 바라보고 또 바라본 작가의 시선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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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농업에 이로운 보호종이었던 찌르레기가 도시에서는 성가신 존재로 전하고 말았다. 찌르레기의 지저귐은 도시 속에서 소음 문제가 되었고, 찌르레기의 배설물 또한 위생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지자체에서는 찌르레기가 둥지를 틀 만한 큰 나무들을 베어내거나 다른 방법들을 동원해 찌르레기를 몰아내려고 했지만, 아직 그다지 효과를 보진 못했다. 찌르레기들이 도시에 적응하면서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했지만, 이 모습 또한 찌르레기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를 바라보며 나는 도시 속에서 인간과 새가 조화롭게 함께 살 수 있는 날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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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에서 제가 한 행동은 그림책에 붙잡힌 새를 풀어주고, 그들을 다시 숲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놓아준 것입니다.” 키치라쿠는 책 속에서 새 그림을 잘라내고, 그들이 살았을 법한 숲으로 갔다. 그리고 꽃과 잎사귀, 나뭇가지 사이에 새 그림을 살며시 놓고 사진을 찍었다.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 그렇게 한 마리 또 한 마리 새들은 숲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p.89
1993년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다양한 접근법을 취해왔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인간은 자연의 작은 부분일 뿐이며, 인간과 자연은 서로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나의 믿음이다. 작품을 통해 ‘평화로운 마음의 상태’를 전달하려고 노력했고, 그 가운데 새를 소재로 한 이미지를 자주 만들었다. 우리는 과연 새를 통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왜 그토록 새에게 끌리는 것일까. 나는 또 다른 여행을 떠나면서 계속 답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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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스 한의 사진 작업 〈Cares I Knew Not〉에 등장하는 ‘작고 귀여운’ 새들은 그물에 걸리고, 자루에 담기고, 사람의 손에 붙잡혀 인식표를 달고, 크기와 무게를 측정 당하고, 깃털 상태를 검사받는다. 사람들이 애완용으로, 관상용으로 마주하는 ‘작고 귀여운’ 새는 이처럼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받고 처리된다. 그 새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던 자연에서 새장으로 강제 이주된다. 그 ‘작고 가여운’ 새가 지저귀는 아름다운 소리는 슬픈가, 아니면 지쳤나, 화가 났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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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보젠(Novogen)’은 백신이나 의약품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계란을 낳도록 유전공학적으로 설계된 닭의 품종이다. (…) 인류의 건강과 질병 치료를 위해 동물을 희생시키는 일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러한 과정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처럼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살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을 품은 작업은 궁극적으로 과연 인간에게 다른 동물을 도구화할 자격이 있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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