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방울이 차츰 거세지더니, 이내 후드득후드득 세찬 빗줄기가 창문을 때린다. 조금씩 움이 트기 시작하는 뜨락의 목련, 그 여린 꽃봉오리들이게도 비는 그저 무심히 쏟아지고 있다. 누가 알려, 저 무심히 쏟아지는 빗방울들의 이야기들을. 모를 것이다, 아무도. 스쳐 지나가는 행인들의 뒷모습처럼,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칠 뿐이다.
32쪽 -‘섬진강 시인의 편지’ 중.
부처님 곁으로 가서 부처님을 닮아 보려는 그이들의 마음은 아무런 보답도 대답도 바라지 않는, 하나의 티끌도 없는 기원일 따름이다. 무구한, 때 묻지 않은 그이들의 눈빛을 지켜보면서 나는 오랜만에 깊은 감회에 젖었다. 부처님을 향한 아득한 그리움으로, 그리하여 부처님을 닮아 보려고 하는, 닮아 보고자 하는 그이들의 모습이 어떤 애틋한 향수 같은 느낌을 내게 주었기 때문이다.
98쪽 -‘우리가 물이 되어’ 중
이른 새벽,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향로에 향을 피우고 차를 한 잔 끓여 앞에 두고, 밝아 오는 새날을 맞는다. 산사의 하루를 조촐하게 시작한다. 나만이 이렇게 이른 새벽을, 새날을 맞는 게 아니라 이 산중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다 깨어나 수런거린다. 새들은 저들끼리의 언어로 무엇인가를 주고받으며 바쁘게 그들 나름의 일상을 꾸린다. 나보다 이들이 더 바쁘고 분주하다.
124쪽-‘방생의 날’ 중
여백의 미 또한 산수화 속이나 풍류적인 삶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 안쪽에 자리잡은, 서두르지 않고 넘치지 않는 여유로움에도 있다.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욕망, 높은 자리에 올라 권세를 탐하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하다면 끝내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마음 한쪽을 비워 놓고 스쳐 가는 바람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156쪽-‘여백의 미’ 중
초심이란 처음으로 마음을 낸, 처음으로 배우는 사람을 일컬을 때 쓰는 표현이다. 처음, 깨끗하고 파아랗게 삭발을 하고 깊고 깊은 산사의 경내를 다소곳이 오고 가는 행자들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얼마나 겸손해 보이는가. 그 모습은 또한 얼마나 송구스럽고 안타깝고 메아리처럼 그리운 것인가.
217쪽-‘초심’ 중
망월동 묘역. 즐비한 묘비들의 행렬. 우리는 오늘 모두가 죄인이다. 흰옷 입고 국화 한 송이 갖다 놓고 흐느껴 우는 어머니들의 한을 누가 달래랴. 오늘같이 비 오는 밤에, 망월동 묘역은 쓸쓸하리라. 역사가 무엇이든 화해가 무엇이든, 문을 열고 내다보는 우리네 어머니들을 누가 달래랴.
241쪽 - ‘우리네 어머니를 누가 달래랴’ 중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옆길로 빠질 수 있고 나쁜 일에 몸담을 수도 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빨리 자각하여 손을 떼고 몸을 빼낼 수 있는가가 관건일 따름이다. 병을 제대로 알고 약을 써야 효험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진맥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엉뚱한 약을 쓰면 그야말로 백약이 무효다. 좋은 스승과 좋은 벗은 현명한 의사요, 훌륭한 약이라 하겠다.
267쪽- ‘개차법’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