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미국 대학에 경영학 분야가 자리를 잡으면서 학문의 정체성을 두고 논쟁이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다. 경영학은 과연 science인가? 아니면 art인가? 사실 당시 경영학 전공이 대학 사회에 뿌리를 잘 내리기 위해서는 경제학이나 심리학 같은 여타 사회과학 분야처럼 과학적인 성격이 강조될 필요가 있었다. 반면에 경영학이 지나치게 학문적 엄밀성을 강조하다보니, 우수한 경영자를 육성한다는 본래의 설립 취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특히 물리학, 철학 등 일반 학문과 달리, 경영학은 법학, 의학, 공학과 유사하게 대학에서 전문가professionals 집단을 양성한다는 측면에서 일리 있는 문제제기였다.
그렇다면 지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경영학이 ‘science냐, art냐’라는 논쟁은 무의미해졌다. scientific art라고 부르던, artistic science라고 부르던 간에, 현실 경영에서 science와 art는 둘 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대 기업에서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를 설계할 때, 소비자를 조사하지 않는 기업이 있을까? 혹은 대규모 설비 투자를 집행할 때, 투자안에 대한 수익률을 분석하지 않는 기업이 있을까? 이미 기업 현장에서는 지난 100년 동안 개발된 다양한 과학적 지식들을 실제 경영에 접목해서 활용하고 있다.
물론 경영자들이 교과서나 이론만 맹신하면서 기업을 운영한다는 의미도 결코 아니다. 현명한 경영자들은 교과서나 수업 시간을 통해 배운 이론과, 실제 경영이 차이가 난다는 점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례 수업이나 시뮬레이션은 당장 결과를 알 수 있지만, 현실에서의 결정은 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모의실험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을 통제할 수 있지만 현실 경영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가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결과적으로 science와 art에 모두 능한 현명한 경영자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기업 경영의 다양한 활동 중에서 유일하게 science와 art의 균형이 무너진 분야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영업sales이다. 아무리 마케팅, 광고가 발달했어도, 실제 고객 접점에서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영업 활동이 중요한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영업은 그 중요성에 비해 대학과 현장에서 모두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다. 당장 세계적으로 유명한 MBA 과정 중에서 영업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영업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인재도 부족하다. 대부분 영업 대신 마케팅을 전공한다.
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마케팅 부서에서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다양한 과학적 조사결과와 도구를 제안해도, 영업부서는 이를 활용하기보다는 마이웨이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동기부여와 미래학자로 유명한 다니엘 핑크Daniel Pink는 ‘대부분의 경우 세일즈란 지적인 활동이 그다지 필요치 않은, 똑똑한 사람이 할 일이 못 되는 고된 일이라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더 나아가 영업은 사기와 기만이 가득하고, 부정직한 사람들이 약삭빠르게 행동하는 분야라는 부정적인 인식마저 사회에 퍼져있다.
이 책의 저자는 현장과 대학에서 오랜 기간 영업을 연구한 전문가로서, 영업에 관한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영업이 충분히 가능하고, 성과 역시 더 크게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조차 만연한 영업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부분에 우선 놀랐고, 해결책으로 제시한 6가지 키워드가 지금까지 영업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바꾸는데 충분해서 다음으로 더 놀랐다. 특히 저자는 본인의 현장 경험이나 연구뿐만 아니라, 국내외 석학들의 영업에 관한 연구결과까지 포함한 사례와 근거들을 제시하면서 영업에 대한 과학적 접근법을 역설하였다.
돌이켜보면 영업에 관한 도서들이 심심찮게 출간되지만, 대부분 자신의 세일즈 비법이나 정신 무장 등 art적인 측면을 강조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CEO 영업교과서’라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최초의 영업교과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다. 특히 영업은 실무진에 맡기면 된다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고, CEO부터 영업에 관한 올바른 관점을 정립해야 하고, 위로부터 변화를 통해 영업 조직을 바꿔야 한다는 함의를 강조하고 있다. 영업,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1순위 혁신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코로나 펜데믹 이후를 대비하는 기업이 있다면, 영업혁신이야말로 성과 창출을 위한 지름길이 될 것이다.
- 이동현 (가톨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