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는 이순신의 개인일기임에 틀림없지만, 전형적인 전쟁일기답게 국가의 위기 상황과 백성들의 고통스런 삶의 편린들이 퍼즐 조각처럼 널려 있다. 또한 탁월한 전술가, 장수, 영웅의 면모와 함께 꿈과 점괘, 기후에 좌우되는 인간적인 감성과 태도가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관료의 한 사람으로서 민족과 국가의 장래를 근심하는 충의정신이 뚜렷하게 확인되는 한편,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와 감정까지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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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촛불처럼,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의 태도는 군인의 기본자세이다. 무엇보다 강한 군대와 군기가 확립된 군사를 이루는 필수요소이다. 진정한 군인 이순신은 7년간의 전쟁 동안 단 한 번도 위국헌신의 ‘참 군인’ 자세를 흩트리거나 망각한 적 없이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마음에 다져진 ‘충’이, 솔선수범의 ‘충’으로 발현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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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를 앞두고 오래 머물 수 없어 돌아올 때, “잘 가거라, 나라의 치욕을 크게 씻어라. 두세 번 타이르면서도 헤어지는 슬픔을 말하지 않으셨다”라고 기록한 내용은 우리의 가슴을 깊게 두드린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식이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럼에도 이미 아들 둘을 먼저 보낸 어머니가 남아 있는 셋째 아들에게 ‘나라의 치욕을 씻으라’고 했으니, 어머니의 강한 성정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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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못한 건강, 빈약한 정치적 배경, 야전 사령관으로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 그로 인한 내적 갈등, 고뇌 등…. 그는 이 모든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기 위해서 자신의 군대를 강력하게 만들고자 했다.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두려움은, 나쁜 꿈과 점괘조차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여 맞서고자 했다. 그리고 ‘하늘’이 자신을 돕는다는 천명론을 굳건하게 견지하여 한순간도 버리지 않았다.
--- p.97
이순신은 공동체 유대관계가 전쟁의 승리에 미치는 영향을 중요시하여 봉제사와 접빈객에 성심을 아끼지 않았으며 주변인들에게 예를 다하였다.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술자리를 가지면서도 대화의 내용은 늘 전략과 전술 구상이었다. 바둑과 장기, 때로는 씨름과 악기를 즐기면서 스스로와 병사들의 심리적 부담을 덜고 치유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술이든 놀이든 모든 행동이 전쟁의 승리를 위한 수단이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 p.105
화살을 쏘는 병사인 사부(射夫)와 격군들이 거의 다 굶어 죽게 되었다는 보고를 받자 너무 참혹해서 듣기 거북하다고 하고, 헐벗은 사람들이 추워서 떨고 있다고 하자 차마 듣기 어렵다며 안타까워했다. 불법을 용서하지 않는 호랑이 장수였지만, 고통받는 병사들을 보면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는 정 많은 장수이기도 했다. ‘불멸의 이순신’과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 p.113
유성룡이 보낸 편지에 답신과 함께 전복을 정표로 보내기도 했으며, 편지를 받고는 “위에서 밤낮으로 염려하고 애쓰는 일을 들으니, 그 강직한 마음과 그리움이 끝이 없다”라고 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이분보다 더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극찬을 보면, 원균과는 달리 유성룡을 어느 정도 신뢰했는지 잘 볼 수 있다.
--- p.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