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옛 여자 친구의 전화 한 통에 얼떨결에 카지노로 가게 된다. 비록 타의에 의해 끌려가는 것이지만, 주인공은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한다. 일상을 벗어난 화려함이 난무하는 공간을 상상하며 긴장하여 입성한 카지노는, 그러나 실망을 금치 못할 모습으로 나타난다. 화려한 드레스와 턱시도까지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깔끔하고 여유 있는 차림의 사람들이 화기애애하고 드라마틱하게 게임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카지노 안에는 며칠씩 머리도 감지 않고 두 눈은 벌겋게 충혈된 사람들이 줄담배를 피워 대며 슬롯머신 기계 앞과 게임 테이블 앞에 죽치고 있을 뿐이다. 예상 밖의 상황에 주인공과 수진은 당황하지만, 이내 10억을 써서 없애야 한다는 처음의 목적을 상기하며 게임에 참가한다. 그러고는 곧 그곳의 분위기에 동화되어 카지노라는 거대한 게임의 조작된 흐름 속으로 함께 휩쓸려 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런 흥분 상태도 잠시, 진정으로 게임에 몰입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의든 타의든 권태로운 일상에서 탈출하여 법적으로 허가된 일탈과 방종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선 이 순간 왜 눈앞의 게임에 몰두하지 못하고 분석하고 관찰하고 있는 걸까? 카지노에서 만난 윤미는 보장된 엘리트 코스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탈하여 삶보다 더욱 극명한 불확정성의 세계인 도박에 뛰어든 20대 초반의 아가씨이다. 윤미를 보며 느낀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도 주인공은 소심한 제스처를 잠시 취할 뿐이다. 결국 새로운 관계 속으로 뛰어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발을 빼지도 못하는, 흐름에 따라 부유하는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도 어쩌면 확률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관찰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도 예측대로 되는 법이 없다. 함께 여행을 온 수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도 없다.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 미련을 두는 것은 할 짓이 아니다. 인생을 쿨하게 즐기는 데 방해가 된다. 그래서 재빨리 뒷모습을 보이며 냉정하게 돌아서야 한다고 머리는 말하지만, 다음 카드가 보고 싶은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다. 삶은 원래 그로테스크하다는 식의 변명은 하고 싶지 않지만,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하고 싶은 욕망을 거스를 수는 없다. ‘우연히’ 만난 기훈 선배(수진의 전남편)는 말한다. 고양이가 죽었다면 새로 사면 그만이고, 질 것이 뻔한 게임은 시작할 이유가 없다고. 또 그는 묻는다. 도대체 승자는 누구냐고. 하지만 대답할 말은 없다. 어차피 삶뿐만이 아니라 자연계의 모든 것은 예측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지치지도 않고 사랑을 하고 도박을 하고 삶을 유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모든 것에는 나름의 이유와 고통이 있는 법이다. 어설픈 이해는 위로가 되지 못한다. 태연을 가장하고 내 길을 갈 뿐이다.
돈을 딸 확률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아는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주인공이 카지노에 간 것은 일확천금을 노릴 만큼 궁지에 몰려서도 왕창 잃어보고 싶게 돈이 넘쳐서도 아니다. 애써 모든 행동에 이유를 붙여야 한다면 권태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는 분석하고 관찰할 뿐 몰입하지 못한다. 권태는 열정이 아니니까. ― 박완서(소설가)
좀 과격하게 말해서, 자본주의적 삶이란 돈 놓고 돈 먹기의 카지노 판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궁극적으로 게임자 대부분이 잃은 자, 실패자일 수밖에 없도록 조정되어진 카지노의 생태를 치밀하게 형상화함으로써 늘 승리하는 소수 거대 자본의 음모를 드러내고 있다. ― 현기영(소설가)
모든 것이 불확실한 현대인의 내면세계를 차분히 그려 냈다. 정체성의 상실로 가파른 자본주의적 경쟁의 바다에서 부유하는 존재의 아릿한 슬픔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장점이다 ― 박범신(소설가)
슬롯의 주인공은 인생처럼 신비한 도박의 숲 속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가지만 그물에 갇히거나 독화살에 맞지 않고, 함정에 빠져 호랑이, 살모사와 얼굴을 맞대지 않은 채 빠져나온다. ― 성석제(소설가)
‘도박과 여자’라는 소재가 전면 배치되는 이 소설은 그 재미와 함께 자본주의 사회의 불확정성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우울함과 외로움이 절실하게 드러난다. 이 신인 작가의 탄생으로 한국 문학은 더욱 풍성해지리라. ― 하응백(문학평론가)
도박하는 인간이 아니라 도박을 권하는 사회에 메스를 대는 소설. 이런 소설을 읽고도 도박을 한다면 인생을 모욕하는 사람이고, 이 소설을 읽고도 도박을 해보지 않는다면 인생에 무관심한 사람이다. ― 김미현 (문학평론가)
도박과 여자. 그러나 빤한 우리의 기대가 깨지는 순간에야 이 소설의 울림은 시작된다. 그 무엇에도 열정과 욕망을 느끼지 못하는 쓸쓸한 존재. 우리는 한동안 이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댄디스트와는 또 다른 이 인물에 대해 이제 누군가 새로운 명명을 해야 할 때이다. ― 하성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