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상학을 ‘해체하는’ 일에 몰두하는 가운데 그보다는 삶이 젊은 철학자의 사유 속에 본질적인 주제로 자리 잡았다. 먼저는 단순히 생존 자체(simply life itself)였다: 아렌트는 살아남기 위해 1933년 독일을 떠나야 했고, 이어서 홀로코스트(the Shoah)를 피해 망명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황폐해진 유럽을 거쳐 도망쳐 나왔고, 처음에는 파리에 머물다가 마침내 1941년 훗날 그녀가 10년이나 지나서 시민권을 얻었던 미국 뉴욕을 향해 떠났다. 그녀는 정치 평론가가 되어 반유대주의 역사와 전체주의의 기원에 관한 주요 연구를 했으며, 나중에 그녀의 근본적인 성찰인 정신의 삶에 대한 주제로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 pp.10~11
아렌트는 하이데거식의 형이상학 해체(Abbau)의 기법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스탐바우흐(Stambauch)의 번역에 따르면 그의 폭로(Erschlossenheit), 드러남(Unverborgenheit), 그리고 개방성(Offenheit)과 그의 유한성에 대한 강조, 우연성, 그리고 인간 자유의 내적 구조들로서의 무세계성 등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들을 그 실존적 맥락으로부터 분리시켜서 정치적 배경으로 이식시킨다. 하지만 이것은 정확히 그녀가 니체와 하이데거를 깊이 이해한 이후에 이룬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의 재독해로써 아렌트를 이러한 전유와 변경에로 이끈 관점이다.
--- p.27
한나 아렌트는 아마도 그녀 자신의 방식으로, 특별히 정치철학으로서의 생의 철학을 실현하고 행한 20세기의 유일한 철학자인 것 같다. ‘아름답게 성숙한’ 여성과 유대인으로서 말이다. 정치가로서의 그녀의 작업이 그 증거인데, 마치 상세히 구술된 삶이나 또는 삶에서 필수 불가결한 이야기, 그리고 또한 그 필요한 조건과 그 양쪽에 대한 그녀의 성찰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왜냐하면 (아렌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확신하기를) 정치적 삶이 없이는 어떤 삶(bios)도 없기 때문이며, 또한 (아렌트는 성 어거스틴과 더불어 확신했는데) 구술적인 재탄생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하지 않고는 어떤 삶도 없기 때문이다.
--- pp.90~91
‘인격’에 대한 반대로써, 몸(the body)은 아렌트에 의해 두 가지 방식으로 생명 과정의 작인(作人)으로 이해된다. 다산성(생식력)과 노동이 그것이다. 자연의 물질대사를 보장하면서 몸은 종(種)의 재생산과 필요의 만족을 실현시킨다. 여성들과 노예들이 노동에서 그 몸을 체현하는데, 이것은 인간적인 것의 제로 수준이며, 생물학적 삶, 또는 생명(z??)의 첫 번째 표현이다. 몸은 결코 자연을 초월하지 않고, 사적인 영역에서만 활동하기 위해서 세계로부터 물러난다. 종(種)과 그것의 유지에 갇혀서 이 몸은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나눌 수 없는 유일한 것’으로 나타나고, 사적 재산(private property)의 범주가 된다.
--- p.107
아렌트는 니체를 세심하게 읽는 독자로서 ‘양심’뿐 아니라 ‘계약’을 공격하는 니체의 폭력과는 반대로 시간에 대한 관계가 변하는 한에서 가능한 것으로 인격(who)의 갱생 가능성을 조용히 보증한다. 그래서 그녀는 힘에 대한 의지의 고통 속에서 씨름하면서 계약상으로 부채를 진 양심의 어두운 그림을 피하고, 오직 니체가 그것을 ‘구상하는 힘’이라고 불렀을 것만을 간직한다.
--- p.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