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살아 숨쉬고 있는 소중한 시간들은 얼마 후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최대한 인간답게 살아야 합니다. 타인을 위협하거나 공포를 느끼게 해서는 안 됩니다. 엄청난 손해를 입거나 부당한 일을 겪더라도, 경멸을 당하고 비웃음을 듣더라도 덧없는 인생사를 초월해 인내해야 합니다. 세상사에 휘둘려 살다 보면 어느새 우리 앞에 죽음이 다가와 있을 테니까요.
--- p.45
오랜 세월이 지나도 파괴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지혜를 바탕으로 이룩한 것들은 세월의 힘을 비껴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지혜로움은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대를 거듭해 나가며 더욱 존경심을 얻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손에 닿는 것은 질투의 대상이 되기 쉽지만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은 오로지 경탄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바탕으로 이룩한 것들은 세월의 힘을 비껴가기에 철학자의 삶은 광활한 수준으로 연장되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다른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법칙에서 자유롭습니다.
--- p.90-91
엄청난 힘을 가진 권력자들조차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힘의 기초도 견고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힘의 속성 자체가 별다른 이유 없이 갑자기 생겼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엄청난 힘을 가지고 인간의 경지를 넘어서는 순간에도 순수하게 즐겁지 못한데, 정작 본인 입으로 불행을 말하는 순간에는 어떠할 것인가요? 그렇기 때문에 남들은 꿈도 꾸지 못할 엄청난 축복을 받았어도 불행할 테고, 행복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도 쉽사리 현실을 믿지 못합니다. 자신의 손에 쥔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하나가 필요하고, 하나의 소원을 이루고 나면 또 다른 기도를 시작합니다.
--- p.93
철학은 만물의 실체와 의지, 성질과 형태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줍니다. 앞으로 우리들의 영혼이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육신에서 해방되고 나면 자연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도 알려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도대체 어떤 거대한 힘이 한가운데서 우주를 지탱하고 있으며 가벼운 성분들을 공중에 떠다니게 하는지, 또 어떤 힘이 뜨거운 것은 머리 위에서 타오르게 만들고 별자리들이 위치를 바꿀 수 있도록 하는지 등 온갖 경이로운 이치를 가르쳐줄 것입니다.
--- p.96
우리는 운명의 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느슨한 금 사슬에 묶여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팽팽한 철 사슬에 묶여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또한 무슨 소용인가요? 인간은 모두 똑같은 포로이며, 다른 사람을 사슬로 묶은 자 스스로도 사슬에 얽매여 있기 마련입니다. 그저 한 손이 조금 더 가벼운 상태일 뿐입니다. 누구는 높은 관직에 매여 살고, 또 누구는 부유함에 매여 살고, 또 어떤 사람은 고귀한 태생의 무게에 눌려 살고, 또 누구는 출신 성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상처를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엄청난 권력을 가진 자의 기세에 눌려 살고, 어떤 사람은 스스로를 지배하며 삽니다. 누구는 저 멀리 귀향을 가서 살고, 또는 사제가 되어 속세를 등지고 살아갑니다. 이처럼 인간은 모두 어딘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 p.98-99
어딘가 부족함이 있거나 어떤 가혹한 일 때문에 고통을 겪었다는 이유로, 아니면 질병이나 죽음, 육체적인 불구 혹은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어떤 장애물을 만났다는 이유로, 우리가 지나치게 흥분하고 후회한다면 그 또한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이 아닐까요? 우주의 법칙이 흘러가는 결과로 인해서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마땅히 참고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가혹한 운명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참고 견디는 것은 우리가 신에게 엄숙히 선서했던 바가 아닌가요. 우리는 신의 지배 아래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신에게 복종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입니다.
--- p.107-108
어떤 이유로 미덕을 추구하느냐고 질문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건 최고의 선 너머에 무엇이 있느냐고 묻는 셈이니까요. 미덕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느냐고 묻는 것인가요? 미덕은 그 자체를 바랍니다. 미덕보다 나은 것은 없고, 그 자체로 충분한 보상입니다. 미덕만으로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이 질문에 제가 이렇게 대답한다면 어떤가요? “최고의 선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 견고한 영혼의 본성이며, 그 자체로 선견지명과 숭고함, 건전함, 자유, 조화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 p.149-150
진실은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르게 욕정만을 좇으며 사는 자들이 ‘행복’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 아래 본인의 사악한 행동을 감추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쾌락이 아니라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쾌락이라고 믿고 싶은 것에 불과합니다.
--- p.160
제가 말하려는 것은 미덕에 대한 것이지 저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악덕을 비난하려고 할 때는 제일 먼저 저 자신의 악덕을 곱씹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가능한 올바른 방식으로 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아무리 강력한 독설이 악의를 가득 보인다고 해도 최상의 것을 위해 살려는 저를 끌어내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그 독으로 스스로를 죽이고 또한 다른 사람들까지 죽이려고 하지만, 최상의 것을 위해 살고자 나아가려는 저의 마음과 미덕을 찬양하며 저 멀리서부터 차근차근 가고자 하는 저를 결코 방해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 p.179
현인들의 삶과 죽음은 악의에 찬 무리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마련입니다. 그뿐인가요, 탁월한 업적을 세워 위대한 명성을 얻은 자들을 두고 이방인을 마주한 개처럼 짖어대기 바쁩니다. 그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요? 누군가의 미덕은 악의에 가득 찬 사람들이 저지르는 온갖 사악한 행동에 대한 비난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나쁘게 끌어내려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질투에 눈이 멀어서 고귀한 것들과 자신의 오명을 비교해보지만, 그 행위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해악을 불러올지는 미처 알지 못합니다. 만약 미덕을 찬양하는 자들이 그토록 탐욕스럽고 욕심이 많으며 야망에 눈이 멀었다면 미덕이라는 이름 자체도 싫어하는 자들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요?
--- p.182-183
하루하루가 내 뜻대로 흘러가고 연이어 축하연회를 벌인다고 해도 그러한 이유로 자기애가 깊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융성한 날들이 뒤바뀌어서 매달 손실이 이어지고 슬픔과 갖가지 불운으로 마음이 황폐해진다고 해도, 아무리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저 스스로를 비참하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며, 어떤 날이 와도 저를 저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불운한 날이 닥치지 않도록 오랜 시간 충분히 대비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통을 억누르며 살기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즐기며 살고 싶습니다.
--- p.203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연을 보며 화를 내지 않을 것입니다. 무성하게 우거진 숲에 과일나무가 자라지 않는다고 해서, 잡초와 가시덤불로 가득한 곳에서는 맛있는 열매가 열리지 않는다고 해서 화를 내는 것은 얼마나 우매한 짓인가요? 타고난 자연의 결함을 탓하는 자는 없습니다. 진정한 현자는 언제나 평온한 태도로 실수를 저지르는 자들을 감싸 안습니다. 죄를 지었다고 해서 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전할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애로운 마음가짐으로 세상에 나섭니다. ‘나는 수없이 많은 죄인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술에 취한 자들,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 탐욕스러운 자들 그리고 광기에 사로잡힌 자들까지!’ 현자는 병에 걸린 환자를 다루는 의사처럼 온화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 것입니다.
--- p.240
우리는 악덕의 근본적인 원인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화는 ‘내가 상처를 입었다’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잘못된 믿음에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받은 상처가 너무 확연해 눈에 띄더라도 절대 분노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는 잘못된 믿음이 진실인 양 위장하고 있기도 하니까요. 진실을 알 때까지 적당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모략을 일삼는 목소리에 쉽게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타고난 결함에 맞서며 진실을 알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인간은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쉽게 믿는 경향이 있으며,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분노에 휩싸이곤 합니다. 중상모략과 미심쩍은 행동에 마음이 흔들려서 악의 없이 미소를 지어보이는 사람을 오해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요? 눈앞에 없는 사람이라도 가급적 감싸주고, 화내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어두는 편이 그의 죄를 캐묻고 처벌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되지만 한 번 처벌을 하고 나면 결코 되돌릴 수 없습니다.
--- p.244-245
온갖 세상사를 자로 잰 듯이 공정하게 재판한다면 그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분노는 ‘나는 죄가 없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다’라는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그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믿고 싶은 것 뿐입니다. 그래서 처벌을 받거나 질책을 받았을 때는 곧바로 반감부터 품습니다. 본래 저지른 잘못에 고집과 오만함까지 더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누가 자신은 어떤 위법 행위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요? 만약 그런 자가 있다고 해도 그저 법이라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이 지켜야 할 적법한 행동의 범위는 지극히 제한적인 법의 범주를 한참 넘어서는 것입니다. 효심, 친절함, 자애로움, 정의로움, 명예로움 같은 감정들은 한낱 법령 속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장 제한적인 법의 범주 안에서조차 완벽히 무죄라고 주장하기 힘듭니다. 정말 법을 어겼을 수도 있고, 법을 어기려고 생각만 했거나 혹은 이를 바랐을 수도 있으며, 타의에 의해 충동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의도했던 일이 성공하지 못해 결백한 상태로 남았을 수도 있습니다.
--- p.247-248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상대가 했던 것처럼 똑같은 행동으로 되갚아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를 화나게 만들고 자극하는 사람을 못 본 척 넘어가는 사람은 언제라도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꿋꿋한 태도로 버텨낼 수 있습니다. 엄청난 타격을 받아도 미동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위대함입니다. 이는 몸집이 거대한 야생동물이 개가 왈왈거리며 짖는 소리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혹은 바다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바위가 높은 파도에도 꿈쩍하지 않고 맞서는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쉽게 화에 휩쓸리는 사람은, 되도록 화를 내지 않고 해악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보면서 배워야 합니다. 그 어떠한 해악에도 꿈쩍하지 않는 사람은 한쪽 팔에 고결한 선을 품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을 시험하는 운명을 향해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 p.264-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