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이었던가. 은백양 나무가 아름답던 대학 시절의 어느 푸른 밤, 선배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찾아 거리를 헤맨 기억이 있다. 저렴하고 푸짐하기로 유명한 술집이 어디 있을까? 그 때 문득 이상한 나라의 마법처럼 들려오는 일렉트릭 기타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말았다.
저 노래 제목이 무엇인지 알아요? 마치 꿈결같군요. 임펠리테리의「Somewhere over the rainbow」. 『오즈의 마법사』의 주제가인 「Over the rainbow」를 리메이크한 곡이지.
그리고 또 몇 해가 흘렀는지. 얼마 전 모 핸드폰 광고에서 「Over the rainbow」의 또 다른 버전을 들을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당시의 일렉트릭 기타음은 잊었지만, 감미로운 남자의 목소리는 젊은 날, 문득 바라보던 저 안개에 젖은 거리 그리고 푸른 저녁의 바다를 연상케 한다.
그렇듯 『오즈의 마법사』는 마법과도 같은 책이다. 도로시와 토토,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은 우리 주위 어디에도 없고, 또 어디에나 있다. 보석과도 같은 반짝임으로 다가오는 에머랄드시는 은유와 상징의 코드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선명하고, 겁쟁이 사자에 대한 연민, 착한 마녀와 나쁜 마녀, 그리고 도로시가 신고 있던 은구두까지. 낯익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들.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고 부른다.
이 아름다운 책이 다시 『위대한 마법사 오즈』라는 새 이름으로 출간됐다. 최근의 해리 포터 열풍에 편승하려는 것은 아니었는지, 어쩐지 이 책의 기획 방향에 대해 약간의 혐의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심한 삽화와 술술 읽혀지는 역자의 멋진 번역을 생각하면, 기획 출판이라 해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모두들 알고 계시겠지만 『위대한 마법사 오즈』의 줄거리를 따라가 보자.
토토라는 강아지가 유일한 친구인 귀여운 소녀 도로시는 거대한 회오리바람에 실려 오즈의 나라에 떨어진다. 오즈의 나라는 빨강, 노랑, 파랑, 보라, 초록의 다섯 개의 나라로 이루어진 신기한 왕국. 그러나 도로시는 집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유일한 방법은 위대한 마법사 오즈를 찾아가 부탁하는 것. 이제 도로시는 오즈를 찾아 흥미진진한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의 도중 도로시는 함께 길을 떠날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데 이들이 바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이다. 허수아비는 '생각할 수 있는 뇌'를 얻기 위해, 양철 나무꾼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심장'을 얻기 위해, 그리고 사자는 '용기'를 얻기 위해 길고도 먼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다시 읽어도 정말 멋진 이야기가 아닌가? 한편으로는 또한 굉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허수아비는 탄력 있는 근육, 건실한 뼈가 아니라 단지 뇌를 원할 뿐이며, 투박한 양철 나무꾼이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사랑의 감정을 위한 심장이라니. 쉬운 이야기를 괜히 어렵게 끌고 가는 것 같지만,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로 대표되는 '지'와 '사랑', 니체가 말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게네스적인 것', 그리고 합리주의와 낭만주의. 어쩐지 이런 단어들이 머리 속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뇌를 통해 사물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는 허수아비의 마음과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에 정서적으로 반응하고 싶어하는 나무꾼의 열정. 이것이 바로 인간의 문화 행위가 비롯되는 두 원동력이 아니었던가. 또한 인간의 두 가지 모습이 아니었던가.
지와 사랑을 얻기를 바라는 이들은 소원을 이루어줄 절대자 오즈를 찾아간다. 사실 오즈는 사기꾼 혹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 허깨비이자 커다란 가면 뒤에 숨어 지낸 겁쟁이일 뿐이다. 그렇다면 도로시 일행은 허상에 속았을 뿐일까? 그러나 단지 속았다고 말하기에는 그들은 내재된 자신들의 힘을 찾았고, 또한 그만큼 성장한 것이다.
『위대한 마법사 오즈』시리즈는 L. 프랭크 바움의 원작을 국내 최초로 완역했고 원작의 삽화를 최대한 살려 표현했다. 현재 2권 『환상의 나라 오즈』까지 출간됐고, 14권 『오즈의 착한 마녀 글린다』까지 일련의 오즈시리즈가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Over the rainbow」의 영롱한 선율과 함께 봄날의 화사한 하루, 새롭게 태어난 오즈의 나라를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