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난데없는 일이었으며 정신이 아찔해질 만큼 당황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기에, 필립은 브루클린 브리지 난간을 잡고 잠시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 p.9
아, 그래. 공포심을 없애기 위해서는, 그 공포심이 발생한 장소로 돌아가야 한다. 뭐 이런 조금은 덜 흔해 빠진 이야기였던 것 같아.
--- p.28
하지만 바닥에 다다를 무렵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필립이 발을 디뎌야 할 땅이 갈라져 버렸고, 그렇게 필립은 끝도 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 p.39
여기에 서점이 있었네. 필립은 생각했다. 3년째 이 길을 다니고 있는데 여기에 서점이 있는 줄은 몰랐어.
--- pp.43~44
혹시 괜찮으면 우리랑 같이 독서 모임 하지 않을래요? 올리비아가 물었다.
--- p.78
흔히 책에는 답이 있다, 삶의 길이 있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읽히는 책에는 답보다는 의문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러므로 독서라는 것은, 길을 찾는 행위라기보다는, 어쩌면 미로에 빠지는 행위에 가까울지도 모르죠, 특히 제가 좋아하는 문학 작품들은 그런 특성이 있는 것 같거든요, 서점 이름을 ?로 지은 것도 마찬가지 이유예요, 서점을 물음과 의문으로 가득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뚜벅뚜벅 미로 속으로 걸음을 내딛고, 그 속에서 길을 잃고 길을 찾아 헤매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어서.
--- p.85
그렇게 3주라는 시간을 보내며 필립은 『666, 페스트리카』를 다 읽을 수 있었고, 바로 이튿날, 늘 하던 산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우편함에서 낯선 나라의 우표가 붙어 있는 편지 봉투를 발견한다. 겉봉엔 낯선 지명이 적혀 있었지만 낯익은 이름 또한 적혀 있었다. 마리아 히토미. 마리아 히토미가 보낸 편지였다.
--- p.112
그리하여 필립은 며칠 전에 구입한 노트를 펼쳐, 책을 읽는 동안 떠오르는 문장을 하나하나 적어가기 시작한다.
--- p.119
그날 필립 로커웨이가 마지막으로 쓴 문장은 이렇다. 나는 에두아르 르베에 비하면 불명확한 사람이고, 단조롭고 심심한 삶을 살았으며, 나 자신에 대해 잘 모른 채 살아왔다.
--- p.125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끝내야 할지 아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내가 먼저 넘어서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이제 분명히 알 것 같아. 나는 곰이 있는 장소로 돌아가야 해. 내가 공포를 느끼는 곳으로, 자꾸 덮으려 하고 모른 척하려 하고 없었던 일처럼 생각하려 하는 곳으로 돌아가야 해.
--- p.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