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는 청년을 일으켜 세우고는 조용히 말했다. '사랑하는 드로셀마이어 씨! 당신은 온순하고 착한 분입니다. 게다가 또 아주 예쁘고 쾌활한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나라를 다스리신다니, 저는 당신을 신랑으로 맞이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리는 드로셀마이어의 신부가 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드로셀마이어는 일년 후 은으로 된 백마들이 끄는 황금마차에 마리를 태워 데려갔다고 한단다. 결혼식에서는 진주와 다이아몬드로 치장한 최고의 멋쟁이들 이만 이천 명이 춤을 추었고, 마리는 아직도 그 나라의 왕비라고 한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는 어디에서나 크리스마스 숲과 투명한 아몬드 설탕 과자 성들, 요컨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신기한 것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 pp.130-131
동화는 인간의 '환상에 대한 즐거움'과 '진리에 대한 사랑'이 얽혀 만들어 낸 독특한 장르입니다. 철학이 진리를 벌거벗겨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면, 문학, 그 중에서도 특히 동화는 진리에 아름다운 옷을 입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선 그 아름다움에 취해 아무런 부담 없이, 앞뒤 생각도 없이 은연중 이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따라서 동화는 단순히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를 펼쳐주는 데서만 그 의미를 찾지 않습니다. 그 속에는 언제나 인생에 대한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도 동화의 줄거리는 슈탈바움 가족을 둘러싼 '일상적인 낮의 현실'과 마리가 겪게 되는 '환상적인 밤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뒤에는 '충실과 배반'이라는 인간의 내면적 가치에 대한 질문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 p.옮긴이의 말 중에서
그러자 댕댕 하고 벽시계가 목쉰 소리로 아주 둔탁하게 열두 번 종을 울리는 것이었다! 마리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드로셀마이어 대부가 올빼미 대신 벽시계 위에 앉아 노란 상의의 양쪽 옷자락을 마치 날개처럼 내려뜨리고 있는 걸 보았을 때에는 너무 놀란 나머지 달아나 버릴 뻔 했다. 그러나 마리는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크게 울부짖듯이 외쳤다. "드로셀마이어 대부님, 드로셀마이어 대부님, 거기서 뭐 하세요? 저를 그렇게 놀라게 하지 말고, 이쪽으로 내려오세요, 나쁜 드로셀마이어 대부님!"
그러나 그 때 미친 듯이 킥킥대는 웃음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곧 이어서 마치 수천 개의 작은 발들이 벽 뒤에서 달리고 뛰는 듯 하더니, 수천 개의 작은 불빛들이 벽 틈 새로 새어 나왔다. 그러나 그것들은 불빛이 아니었다. 천만에! 바로 번뜩이는 작은 눈들이었다. 마리는 사방에서 생쥐들이 이쪽을 내다보며 기어나오려는 것을 보았다.
이어 거실 안 여기 저기서 휙휙 내달리고 뛰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차츰 번쩍거림이 심해졌다. 점점 더 많은 생쥐 무리들이 이리저리 내달렸고, 마침내 줄과 열을 지어 정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프리츠가 전투를 시작할 때 병정들을 세워놓은 모양 같았다.
--- p. 29
곧 양쪽으로 펼쳐진 신비로운 작은 숲에서 흘러 나오는 아주 달콤한 냄새가 호두까기 인형과 마리를 감쌌다. 어두운 나무 잎새에서는 밝은 빛들이 반짝거리며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금빛 은빛 열매들이 화려하게 채색된 줄기에 달려 있고, 그 줄기들과 나무 둥치가 리본과 꽃다발로 장식되어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즐거운 신랑, 신부와 흥겨운 결혼 축하객들 같았다. 그리고 솔솔 부는 미풍처럼 오렌지 향기가 살랑대는가 하면, 줄기와 잎사귀에서는 솨솨하는 바람 소리와 금장식들이 타닥타닥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마치 환호하며 연주하는 음악 소리처럼 울렸는데, 반짝이는 작은 불빛들은 그 음악 소리에 맞춰 튀어오르며 춤추지 않을 수 없는 듯 했다.
--- p.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