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 그거 떫은 거잖아. 그걸 왜 해?”
이런, 후배한테도 한방 먹었다. 홍차 일을 하다 보면 이런 반응과 질문은 비일비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홍차를 ‘떫다’고만 인식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 역시도 모를 땐 그랬으니까. 이럴 땐 그저 입 다물고 맛있는 홍차를 우려서 맛 보여주는 게 최고다. 나는 “잠자코 있어, 인마.” 하고는 홍차 선반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고른 차가 ‘잉글리시 애프터눈’. 그처럼 ‘홍차는 떫다’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처음 접하면 좋은 차다. (중략)
“와, 이게 홍차예요? 생각보다 괜찮네! 근데, 설탕을 언제 넣었어요? 난 못 봤는데.”
나는 잉글리시 애프터눈을 우릴 때는 설탕을 넣는 일이 없고, 따로 설탕을 내놓지도 않는다. 잉글리시 애프터눈을 제대로 우리면 홍차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달콤한 맛을 느낄 수가 있는데, 그 맛이 깊어지면 마치 설탕을 넣은 듯 감미로운 맛이 난다. 홍차 특유의 향기와 함께 달콤하고 깊은 맛이 나는 게 바로 이 홍차의 매력이다.--- pp.18~19

“왜 아침인데 홍차에 우유를 주지 않는 거야?”
나는 유독 불만인 무다스가 영국에서 온 걸 잠시 잊고 있었다. 그를 의아하게 쳐다보며 이곳 베두인들은 홍차에 그냥 설탕만 넣고 마시니 우리도 그렇게 따라 마시자고 했다. 그러자 바로 그의 대답이 돌아왔다.
“난 영국 사람이야. 아침에 우유가 든 홍차를 마셔야 한다고.”
역시 그는 영국 사람이었다. 홍차를 많이 마시는 영국에 가면 가장 두드러지는 두 가지 홍차 문화가 있다. 하나는 오후의 나른함을 이기게 해주는 애프터눈 티타임이고, 또 하나는 아침에 잠을 깨우는 ‘Wake-Up Tea’로 마시는 브랙퍼스트 티타임이다.
영국 사람들은 브랙퍼스트티에 우유를 첨가해 마시는데 이는 처음 영국에 홍차가 전래되고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생겨난 풍습으로 오래도록 그 습관이 유지되어 오고 있다. 영국 사람들은 밀크티를 크림티라고도 하는데, 홍차를 마실 때 찻잔에 우유를 먼저 넣느냐 홍차를 먼저 넣느냐를 두고 서로 장점을 거론하며 끊임없는 논쟁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그들에게 있어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는 일상의 가장 중요한 시간을 함께 하며 힘을 주는 하나의 모멘텀이 되기도 한다. (중략)
밀크티를 만들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홍차의 선택이다. 밀크티를 만들기 위한 홍차로는 잉글리시 브랙퍼스트가 좋다.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는 밀크티로 만들었을 때 우유와 가장 잘 어우러지는 특징이 있는 홍차다. 왜냐하면 밀크티로 만들려면 우유를 잘 이겨내고 어우러지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특성이 잉글리시 브랙퍼스트에 있기 때문이다.

홍차는 어떻게 마시는 것이 좋을까? 홍차는 따뜻하게 마시는 것이 보통이지만, 얼음을 넣어 차갑게 마셔도 좋다. 우유를 넣으면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 ‘애프터눈 티타임’이라는 소중한 시간에 작고 예쁜 티푸드와 함께 즐길 수도 있다. 유럽의 고급 사교문화와 함께 발전해온 홍차는 티파티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는 훌륭한 매개 역할을 수행한다. 많이 마셔도 몸이 건강하고 입이 즐겁다. 그러니 행복한 마음은 절로 따라온다. 홍차전문가 박정동은 사람향기 가득한 홍차이야기를 그렇게 들려준다. <br/><br/><B>전문가의 내공이 담겨 있는 이야기</B><br/><br/>홍차를 잘 모르는 사람은 커피전문점의 구색으로만 갖춰져 있는 다질링과 얼그레이가 홍차의 전부인 줄 알겠지만 홍차는 그 종류가 5천 개가 넘을 만큼 매우 다채롭다. 커피는 자판기로도 즐길 수 있지만 홍차는 종이컵에서 나오는 냄새가 홍차의 향미를 손상해서 종이컵에 나오는 자판기로는 제대로 된 홍차 맛을 즐기기 어렵다. 그만큼 홍차는 섬세하다. 그러하다보니 홍차를 즐기는 초심자와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본의 아니게 수정이 필요한 정보들이 오가고 아쉬움이 남는 홍차를 즐기게 된다. <br/><br/>이 책을 집필한 박정동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홍차연구가로 십여 년간 홍차 강의를 통해서 이러한 오류들을 수정해주고 애호가들로 하여금 홍차가 가진 고품격의 풍미를 바로 알고 더 잘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해왔다. 실제로 그에게서 홍차를 처음 대접받은 사람들은 ‘홍차 맛이 이런 것이냐, 그동안 몰랐다’는 말을 하게 된다. 홍차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그에게서 홍차를 배워가고 그에게 홍차를 배운 후에 홍차카페를 여는 이들도 많다. 국내에 이미 소개된 홍차관련 서적 중에 다수는 그에게서 홍차를 배운 이들이 저술하거나 번역한 책들이다. ‘국내의 홍차전문가는 거의 그를 거쳤다’는 표현이 나올 만큼 홍차 업계에 많은 영향을 준 그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이유는 그가 외국에서 습득한 홍차 지식과 레시피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한국 환경에 맞도록 끊임없이 연구하고 보완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왜 홍차에 열광하는가?』에는 그런 필자의 노력과 노하우가 그가 펼치는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br/><br/><b>시공을 넘나드는 생생한 이야기</B><br/><br/>기문, 다질링, 우바는 세계 3대 홍차이다. 『나는 왜 홍차에 열광하는가?』에서는 기문 홍차를 언급할 때는 중국으로, 다질링 홍자를 소개할 때는 인도로, 우바 홍차를 이야기할 때는 스리랑카로 공간 이동을 한다. 홍차를 탐구하면서 적지 않은 홍차여행을 다녔던 필자는 세계 각국의 홍차문화를 접한 현장감이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계티소믈리에대회, 자연 풍화작용으로 유명한 터키의 카파도키아, 이집트의 나일강, 아라비아 로렌스에 나오는 와디람 사막 등등 홍차향을 따라 펼쳐지는 세계 여러 곳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는 필자가 접하고 터득한 홍차에 대한 생생한 내용이 알기 쉽게 녹아들어있다. <br/><br/>예를 들어 ‘홍차의 탄생, 으악! 하고 놀라다’(30쪽)에서는 녹차를 실은 배가 적도를 지나 영국에 도착했더니 녹차가 홍차로 변했다는 잘못 알려진 홍차 탄생이야기의 오류를 밝혀주며 중국에서 홍차가 기원한 이야기와 그 지역을 방문한 필자의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홍차의 기원을 알게 된다. 실론 슈프림 홍차를 소개한 ‘샌드위치가 맛있어지는 방법’(168쪽)에서는 샌드위치 이야기를 들려주며 홍차와 샌드위치의 상관관계를 밝히고 두 음식이 상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면 왠지 샌드위치와 실론 슈프림 홍차를 마시고 싶어진다.<br/><br/><B>책의 구성과 특징</B><br/><br/>『나는 왜 홍차에 열광하는가?』에는 홍차, 사랑, 사람, 유혹, 건강, 추억, 여행, 명상, 낭만 등의 주제에 따라 필자의 경험과 홍차가 크로스오버된 이야기가 7장에 나뉘어 모두 35편 실려 있다. 각 장이 끝나는 부분에는 홍차 우리기의 기본, 티웨어의 종류와 선택, 홍차와 카페인, 홍차의 효능, 세계의 홍차 산지, 세계의 홍차 소비, 홍차 목욕하기 등 홍차와 관련한 솔깃한 정보들이 가득한 일곱 개의 팁이 있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전문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이 함께 소개되는데 이 중에서 고급 홍차의 상징인 포기크랙 현상홍차가 제대로 잘 우려졌을 때 안개가 낀 듯 홍차 표면이 갈라지는 형상과 골든 코로나홍차가 제대로 잘 우려졌을 때 금빛으로 테두리가 드러나는 형상 이미지는 웬만한 홍차 마니아들도 쉽게 접할 수 없는 보기 드문 것이다.<br/><br/><b>영양 만점 알뜰 레시피 수록</B><br/><br/>책을 읽고 이야기 속의 홍차를 직접 우려보고 싶을 때 홍차 우리기에 서툴거나 처음 홍차를 우리는 경우를 생각해서 각 이야기를 마칠 때마다 쉽게 만들 수 있는 홍차 레시피를 실었다. 필자의 비법인 2-4-3 법칙으로 만들 수 있는 레시피를 따라하면 초심자라도 일정 수준의 홍차 맛을 낼 수 있다.

선생님께 배우는 건 홍차뿐만이 아니라 홍차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황무지 같은 우리나라 홍차 환경에서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서도 내세울 만한 홍차 맛을 만들어내시는 모습은 열정이 있기에 가능했고 그 모습은 홍차의 길을 가는 우리들에게 등대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살아 있는 경험이 우러나는 이 책은 홍차를 막 접하는 사람이나 오류 속에 홍차를 접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김용목 (대한민국 공식 티마스터 1호)

박정동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마치 덜 우려진 홍차처럼 옅은 인상으로 조용히 미소만 짓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홍차를 배우는 동안 선생님은 정확한 시간으로 가장 섬세하게 우려진 홍차를 닮은 분이라는 걸 알았다. 선생님한테 처음 대접받은 홍차는 유학시절 경험한 홍차와는 완전히 달랐는데 느껴지는 맛과 향이 꼭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아주 놀라운 맛이었다. 이제 내가 홍차를 끓이기 시작하면 내 책상 위의 모래시계도 덩달아 움직인다. 그리고 홍차의 세계로 들어가는 시간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비법이 담긴 이 책을 읽고 새로운 홍차의 세계로 여행을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장윤현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