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우리가 이 망상체의 진화과정을 들여다보며 그것이 의식의 진화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를 알아보려 한다면 그들간에는 어떤 상관도 없음을 발견할 것이다. 망상체는 신경계 중 가장 오래된 부분으로 판명되었다. 사실 망상체가 신경계의 가장 오래된 부분이고, 그 주변에서 더 질서정연하고 세부적이며 더 진화된 신경다발이나 신경핵이 발달했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우리가 지금 망상체의 진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적어도 의식과 그 기원의 문제는 이와 같은 연구로는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게다가 그런 추리는 일종의 환상이다. 이 환상은 심리현상을 신경해부학과 화학으로 번역하려는 우리의 성향에서 너무도 자주 발생하고 있어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는 행동으로 미리 알고 있었던 것만을 신경계에서 알 수 있다. 우리가 비록 신경계의 완벽한 회로도를 밝혀내더라도 우리의 원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수 있다. 우리가 비록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종의 개별 수상돌기나 축색돌기에서 나오는 감지 가능한 가닥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고, 그 신경전달 물질은 물론 그들이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뇌에 있는 수억 개의 신경원연접에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았다 하더라도, 뇌 지식만으로는 그 뇌가 우리와 같은 의식이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우리는 먼저 위에서, 의식이 무엇인지의 개념부터, 우리의 내성이 무엇인지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신경계를 다루거나 신경학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이 점을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의식이 무엇인지 서술하면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이것이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을 보았고 또 그 주제에 대한 역사는 은유와 지칭 간의 혼동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았다. 모든 것이 애매해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것이 아닌 것들을 밝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다음 장에서 하려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p.43
이러한 초기 문화가 양원적 왕국으로 발전해감에 따라 이들 중요 인사들의 무덤은 점차 무기, 가구, 장신구, 그리고 특히 음식 그릇 등으로 채워져 갔다. 이것은 기원전 7000년 후의 유럽과 아시아 전역의 모든 묘실들(chamber tombs)에도 해당되며, 이들은 양원적 왕국의 크기와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극도로 정교화되어갔다. 전체가 연속적으로 지어진 복잡다단한 피라미드 내부에 있는 이집트 파라오들의 웅장한 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다음 장을 참조하라). 그러나 다소 경외감은 떨어지지만, 유사한 설치물들이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기원전 3000년경 전반부까지만 해도 우르의 제왕들은 자신들 주변에서 허리를 굽신대며 시중들고 있던 그들의 모든 종자(從者)들과 함께, 그것도 때로는 그들이 산 채로 묻혔다. 이제까지 이런 무덤 18개가 발견되었는데, 이들 지하 묘실에는 음식, 음료수, 의복, 보석, 무기, 황소 머리 모양의 수금, 심지어 수레를 장식하기 위해 멍에를 멘 채로 제물이 된 수레 끄는 동물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보다 좀 나중의 것들이 키시(Kish)와 아슈르(Ashur)에서 발견되었다. 아나톨리아의 알라카 휘위크(Alaca Huu)에 있는 황실 묘들은 잠들어 있는 주인들의 음산한 식욕을 달래기 위해 구운 황소들의 시체로 지붕을 해주었다.--- p.220
나는 지금 이 시기에 이들 문명권의 무덤에는 음식과 음료가 담긴 항아리가 내내 보편적으로 존재했다는 인상을 심어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일반적이긴 했으나, 예외인 경우도 있었다. 한 예로, 레오나르드 울리 경(Sir Leonard Woolley)이 메소포타미아의 라르사(Larsa)에 있는 (기원전 1900년경으로 추정되는) 한 개인 무덤을 처음으로 발굴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그 내용물이 빈약한 데 놀라움과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심지어 가장 정교하게 건축된 묘실에서도 입구쯤에 놓여 있는 한두 개의 토기 항아리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고 다른 곳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것들은 없었다. 그는 이들 무덤은 언제나 특정 주택의 지하에 있었으며, 그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여전히 망자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인 까닭에, 라르사 시대의 망자들은 묘실용 가구나 많은 양의 음식이 필요치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이에 대한 설명을 얻게 되었다. 묘실 입구에 있던 음식과 음료는 아마도 비상용이어서, 망자가 가족과 ‘어울리기’ 위하여 (올라올 때) 즐거운 기분으로 나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던 듯하다.--- p.224
현대세계에서 우리는 엄격한 권위주의적 정부 하면 군국주의와 경찰의 억압을 연상한다. 이런 연상은 양원적 시대의 권위적 국가들에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군국주의, 경찰, 공포의 지배, 이 모든 것들은 희망과 증오 같은 다양한 사적 상태로 갈려 정체성 위기를 겪으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주관적·의식적 민중을 통제하기 위해서 사용된 필사적인 조치였다. 양원적 시대에는 공포도 억압도 심지어 법도 아닌 양원적 정신 자체가 사회적 통제였다. 그곳에는 사적인 야망이나 사적인 적의나 사적인 갈등이나 사적인 어떤 것도 없다. 왜냐하면 양원적 인간에게는 사적으로 될 어떤 내적 ‘공간’ 같은 것이 없었으며, 사적으로 존재할(to be private with) 유사 ‘나’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주도권은 신의 목소리에 있었다. 그리고 신들이 스스로 성스런 법률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생긴 것은 오직 기원전 2000년경의 후기 국가연합이 통합되면서였다.--- p.278
기원전 2000년경 문자쓰기가 성공하면서 신들의 이런 한계는 경감되기도 하고 악화되기도 했다. 문자쓰기는 한편으로는 함무라비의 경우와 같이 시민구조의 안정을 가져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양원적 정신의 청각적 권위를 점차 침식해 들어갔다. 특별히 정부의 메시지와 회계는 점점 더 설형문자 석판에 기록되어갔다. 이들의 전체적인 문서보관처가 아직도 발견된다. 관리들의 서신은 흔한 것이 되었다. 기원전 1500년 바위투성이인 시내산의 고지대 광부들조차 자신들의 이름과 자신들과 광산 신의 관계를 벽에 새겨넣었다. 양원정신의 신적 환각성에서 명령은 청각적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청각부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된 두뇌의 피질 영역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귀먹은 진흙덩이 위에 기록되고 무언의 돌에 각인하기 시작하자, 신이 침묵을 지켰고, 신의 명령이나 왕의 지시들은 기피하게 되었고, 청각적 환각으로는 불가능했던 인간 자신의 노력으로 바뀌게 되었다. 신의 말씀은 즉각적인 복종이 수반되는 편재적 힘을 갖는 게 아니라, 하나의 통제가능 영역(a controllable location)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p.282
제비뽑기의 심리학에 대하여 두 가지 점에 주의를 기울여주기 바란다. 첫째로, 이러한 관행은 양원정신의 붕괴 후 우반구의 기능이 더는 신의 목소리로 언어적으로 암호화되던 때처럼 들려오지 않게 되자, 이를 보충하기 위해 문화 안에서 아주 특별하게 발명된 것이다. 실험실 연구에서 우리는 공간적 정보와 모형에 관한 정보를 주도적으로 처리하는 곳이 우반구였던 것을 안다. 이 부위는, 고의 블록 테스트(Koh’s Block Test)에서처럼, 부분들을 어떤 패턴이 되게 맞추는 일이나, 점들의 위치와 점들의 양을 하나의 모형으로 지각해내거나 멜로디 같은 소리 패턴들의 위치와 양을 지각해내는 일에 탁월하다. 제비뽑기가 해결하려는 문제 또한 동일한 종류의 것이다. 즉 패턴의 부분들에게 질서를 부여하는 일, 누가 무엇을 하기로 되어 있는지를 선택하는 일, 또는 어떤 땅이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를 선택하는 일 등이다. 원래 단순한 사회일수록 그러한 결정은 신이라고 불리는 환각적 목소리, 즉 일차적으로 우반구에 관련되어 있는 목소리로 쉽게 결정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아마도 이런 결정들이 점차 복잡해졌기 때문에 신들이 더는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지 않게 되자, 제비뽑기가 이러한 우반구 기능의 대리자로 역사에 등장했던 것이다.--- p.322
종교적 환각은 일종의 각성 상태에서의 꿈인 이른바 황혼 상태(twilight states)에서 특히 자주 관찰된다. 이 상태는 많은 환자에게 몇 분에서 몇 년에 걸쳐 지속되지만 가장 흔하게는 6개월 정도 지속된다. 그런 상태는 종교적 환상, 자세, 의식(儀式), 예배 등으로 특징지어지며, 환자는 환각으로 이루어진 환경 속에 살고 있어서 병원 환경 역시 지워버리는 점을 제외하면, 양원 상태 같은 환각 속에 산다. 환자는 천국의 성인들과 접촉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의사나 간호사를 제대로 알아볼 수 있지만, 그들은 신이나 천사가 변장한 것이라고 믿고 있을 수 있다. 그런 환자들은 천국에 사는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하면서 기쁨으로 소리 칠 수도 있고, 신의 목소리와 대화하고 또는 밤에 별을 불러 별과 대화할 때는, 두 역할을 왔다갔다할 수도 있다. 편집증 환자는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환각 속에서 천사나 예수나 하나님이 환자에게 양원적 방식으로 이야기를 걸어오면서 어떤 새로운 방식을 알려주는 종교적 경험을 하는 따위의 정신분열적 증세를 보일 수 있다. 그는 우주의 권력자와 특별한 관계가 있음을 확신하게 되고,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자신을 병적으로 관련짓고, 환자는 더 따져볼 수도 없게 되어 몇 년 동안 그것에 사로잡히는 망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p.546
근대 과학도 이와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다. 이 시기의 지적 영역에서도 마찬가지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소 위장된 형태를 취하긴 했지만, 크게 보면 근대 과학도 종교적 형식을 갖고 있다. 내가 과학주의라 부르고 싶은 이 경향은 일군의 과학적 아이디어들의 집합체를 이루면서 급격히 신앙적 신조로 굳은, 우리 시대에 과학과 종교가 분리되면서 남긴 공허를 채우는, 과학적 신화다. 근대 과학이 고전적 과학이나 그때 진행되던 논쟁과 다른 점은 근대 과학이 대신하려 하는 종교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이들은 가장 두드러진 특징에서 종교와 공통점이 있다.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합리적 우수성, 카리스마가 있는 지도자와 두드러져 비판받지 않는 지도자의 계승, 과학적 비판의 외곽에 있는 경전 같은 일련의 텍스트들, 특정한 사고 방식과 해석 방식, 그리고 완전한 헌신 요구 등에서 말이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추종자들은 종교가 한때 주었던 것을 두루 받는다. 세계관, 중요성의 위계체계, 그가 무엇을 하고 생각할지를 알려줄 복점 치는 장소, 요컨대 인간에 대한 총체적 설명을 제공받는다. 이 총체성은 모든 것을 실제로 설명함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라, 설명되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도록 그 활동과 관심을 엄격하고 절대적으로 제한함으로써 얻어진다.--- p.579
의식과 함께 시간의 공간화가 점차 중요성을 확보해가고 크로노스(chronos) 같은 공간화에 대한 새로운 단어도 생겼다. 그러나 이것은 공간화를 너무 가볍게 표현한 것이다. 의식과 여타의 인지가 상호작용 하면서 새로운 능력을 창출하는 하나의 인지적 폭발이 일어났다. 양원적 인간은 모든 포유동물들이 그렇듯이 과거의 자신에 뒤따라 일어나는 현재의 모습에 대한 인지와 행동적 예상 능력과 감각적 재인 능력이 있었다. 이에 비해 의식적 인간은 공포, 기쁨, 희망, 야심 등이 존재할 수 있는 상상의 미래를 이미 실재하는 것처럼 들여다‘볼’ 수 있으며, 또한 기회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거나 잘했던 일을 음미하면서 과거를 ‘볼’ 수 있다. 이때 과거는 하나의 공간의 유체를 통해 나타나는데, 이것이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따라 우리는 기억 또는 회상이라 부르는 하나의 새롭고 신비로운 여정 속으로 이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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