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걸 모르십니까? 온 자연 가운데 떡갈나무는 하나의 떡갈나무일 뿐이고, 바람은 바람, 불은 불일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만은 모든 것이 다르지요. 모든게 의미심장하고, 모든게 암시적이라니까요! 인간에게는 모든게 신성하고, 모든게 상징이 됩니다. 살인이 영웅적인 행위이고, 전염병이 신의 손가락이며, 전쟁은 진화(進化)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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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신기한 동양의 이야기 외에도 옛날, 혹은 최근에 실제로 있었던 모험과 사건들, 예컨대 아이네아스 왕의 항해와 고난, 키프로스 왕국, 요하네스 왕, 마술사 비르길리우스,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대담한 여행에 관해 이야기했지. 게다가 그는 놀랍기 짝이 없는 이야기들을 스스로 지어낼 수도 있었던 거야.
여주인은 어느 날 졸고 있는 앵무새를 가리키면서 물었네.
"만물박사님, 지금 내 앵무새가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그러자 난쟁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즉시 마치 자신이 앵무새라도 되는 양 긴 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지. 이야기가 끝나자 바로 앵무새가 깨어나 염소 울음소리를 내면서 날개를 파닥이는 거야. 또 한번은 여주인이 조그만 돌을 주워 테라스 난간 너머로 집어 던졌어. 돌이 수로에 떨어져 퐁당 소리를 내자, 이렇게 묻는 거야.
"자, 필리포, 지금 내가 던지 돌멩이가 어디로 가고 있을까?"
그러자 곧 난쟁이는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야. 그 돌이 물 속에서 해파리, 물고기, 게, 굴, 침몰한 배, 물의 정령과 요정, 그리고 인어들과 만나는 이야기를 말일세. 그것들의 삶과 일어난 사건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자세하고 꼼꼼히 묘사할 수 있었던 거지.
부유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대개 그렇듯이 마르게리타 양도 오만하고 냉정했지만 자신의 난쟁이에게만은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네. 모든 사람들이 난쟁이에게 호감과 존경을 갖고 대한다는 사실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거든. 그녀가 이따금 장난질을 쳐 그를 좀 괴롭히긴 했지만, 어쩌겠나, 그녀의 소유물인걸. 그의 책을 몽땅 빼앗거나, 그를 앵무새 새장에 가두거나, 때로는 방바닥에 나동그라지게 했지. 물론 모두 나쁜 의도에서 한 장난은 아니었고, 필리포 역시 한번도 불평해 본 적이 없었네. 그러나 이따금 우화나 동화를 들려줄 때, 이 일에 대해 약간의 풍자와 암시를 곁들이곤 했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여주인도 조용히 감수할 수밖에 없었네. 그녀는 그를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으려고 조심했지. 모두들 난쟁이가 은밀한 지식과 금지된 약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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