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뉴잉글랜드 의학저널(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NEJM)》에 있었던 20년 동안 의학 연구에 미치는 제약산업의 영향력을 직접 봐왔다. 어떤 병의 원인과 치료에 관한 연구는 NEJM에 항상 실리는 논문 주제다. 점점 더 많은 연구가 제약회사의 후원을 받아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제약회사들이, 내가 NEJM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들어보지도 못한 방식으로 연구를 배후 조종하는 것을 보았다. 그 목적은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의 약이 환상적인 것으로 보이도록 꾸미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제약회사는 연구자에게 새로운 약을 기존의 약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위약(설탕으로 만든 알약)과 비교하라고 요구한다. 이런 방식이라면 신약의 효과가 실제로는 기존의 약보다 떨어지더라도 대단한 효과를 가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렇게 연구를 편향시키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전문가라고 해도 항상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가 알아차린 경우 그 논문은 게재가 거부되었지만 금방 다른 의학전문잡지에 실리곤 했다. 약의 효과가 정말로 불리하게 나온 경우 회사들은 결과를 아예 발표조차 못하게 막기도 한다. 제약산업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져 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많은 연구논문들이 의사들로 하여금 새로운 약이 대체로 기존의 약보다 더 안전하고 더 효과적이라고 믿도록 심각하게 조작되었을 가능성에 점점 더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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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전형적인 것은 제약회사가 실제로 한 일에 비해 훨씬 더 큰 역할을 한 것처럼 우겨댄 것이다. 틀림없이, 연간 1만 달러에 이르렀던 터무니없는 약값을 정당화시킬 명분을 얻기 위해서였으리라. NCI의 브로더와 듀크 대학의 연구진 4명은 버로우즈 웰컴의 CEO가 뉴욕 타임즈에 게재한 자축 서한을 읽고 화를 내며 회사 측이 주장하는 소위 ‘중요한 기여’에 대해 설명했다.
“그들은 AZT와 같은 약물이 인간 세포에서 살아 있는AIDS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는지 가려내는 (데 적용된) 기술을 개발하지도, 알려주지도 않았고, 억제 효과를 일으키는 약물 농도를 알아내는 기술을 개발한 것도 아닙니다. AZT를 처음으로 AIDS 환자에게 투여한 것도 아니고, 첫 번째 임상약리학적 연구를 수행한 것도 아닙니다. 약물 작용 기전을 알아내는 데 필요한 면역학적, 세균학적 연구 역시 수행한 바 없습니다. 그러니 ‘향후 더 많은 연구’ 역시 할 게 없겠지요. 모든 것은 NCI와 듀크 대학 연구진들이 이루어 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덧붙였다. “솔직히 말해서 AZT 개발을 위한 연구에서 최대 걸림돌은 버로우즈 웰컴 측에서 살아있는 AIDS 바이러스를 다루려고 하질 않는데다 심지어 AIDS 환자로부터 채취한 검체를 수령하기조차 꺼려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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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께서는 훌륭한 분이셨지만 요리에서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매끼 식탁에는 먹다 남은 것들이 올라왔다. 남은 것 한두 가지란 말이 아니다. 온톤 먹다 남은 것들밖에 없는 것 같았다. 오빠와 나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놀라곤 했다. 결국 우리는 ‘엄마 요리의 빅뱅 이론’이라 명명한 결론에 도달했다. 먼 옛날,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니께서 딱 한 번 엄청 근사한 식탁을 차리셨는데, 이후로 우리 가족은 계속 그걸 먹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안타까워라, 최초의 그 식사를 놓치다니!
빅 파마가 바로 이와 같다. 때때로 진정 혁신적인 약을 선보이는 일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지치지도 않고 재등장하는 남은 것들, 먼 옛날에 나온 약들의 재탕인 ‘나두요’ 약들을 내놓는다. 그러나 어머니의 전설적인 첫 번째 식사와 달리, 제약회사들이 약을 스스로 만드는 일은 좀처럼 없다. 보통 NIH의 지원을 받는 연구진들이 초기 작업을 해 준다. 그러면 이를 넘겨받아 상업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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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스트라제네카의 술책을 자세히 보자. 추정되는 동등한 용량(프릴로섹의 권장 용량 20mg에 대해, 넥시움은 20mg까지는 아닐 것이고 어쩌면 10mg 정도일 것이다)끼리 비교하는 대신 훨씬 높은 용량의 넥시움을 사용했다. 넥시움 20mg, 40mg과 프릴로섹 20mg을 비교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조작한다면 넥시움이 더 우수한 약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개의 시험 가운데 2개에서만, 그것도 아주 작은 차이로 더 낫다는 결과가 나왔다. 사실 진짜 놀랄 일은 고용량에서 넥시움의 약효가 기대 이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니 논리적인 결론은 프릴로섹의 권장 용량을 두 배로 올리고, 제너릭의 경쟁을 허용하며, 넥시움에 대해서는 잊어버리는 것일 터였다. 그러나 이건 약 한 알에 4달러씩이나 내야 하는(이 자체가 속 쓰린 일이다) 속쓰림 환자들에게라면 모를까, 아스트라제네카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 아니었다.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서비스 센터장을 지냈던 탐 스컬리 (Tom Scully)는 의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넥시움을 처방하고 있다면 당신들, 창피한 줄 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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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영업사원 혹은 디테일러들은 의료계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대개는 젊고, 매력적이며, 무지하게 싹싹한 그들은, 의사들과 얘기를 나누며 부담 없이 선물(책, 골프공, 운동경기 티켓 등)을 건넬 수 있는 길을 터놓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병원이라면 전국 어디든 돌아다닌다. 많은 수련병원에서, 영업사원들은 정기적으로 인턴, 레지던트들에게 점심을 사며, 이 자리에서 약에 관해 얘기를 나눈다. 이러한 소위 ‘음식, 아첨 그리고 우정’ 전략은 앞으로 평생 약을 처방하게 될 젊은 의사들에게 세상은 서로 돕고 사는 것이란 생각을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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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 온 정신과 의사 이본 무네즈 벨라스케즈(Ivonne Munez Velazquez)는 할로윈 데이의 어린 아이들처럼 선물 가방들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 APA의 연례 학술대회 참가 기념품으로 그녀는 항우울제 프로작 제조사로부터 작은 계란 모양의 시계를, 역시 항우울제인 팍실로부터 세련된 보온병을, 항경련제인 데파코트(Depakote; 다양한 정신 질환에 종종 설명서 외 용도로 처방된다)로부터는 은세공된 명함지갑을 받았다. 또 항정신병약 리스페리돌로부터 작고 멋진 CD지갑을, 역시 항정신병약(사실은 항우울제이다)인 셀렉사로부터 여권 지갑을, 항우울제 레메론으로부터는 산뜻한 녹색 문진(文鎭)을,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회사로부터 봉투용 칼을 받았다. 그러나 그 주말 동안 그녀의 충성심은 멕시코시티로부터의 항공료(30명에 이르는 동료와 그녀의 18살 난 조카까지 포함해서)는 물론 일행 모두가 APA 학회장 근처의 호텔에서 묵는 비용까지 부담한 화이자로 향했다. 그날 밤, 역시 화이자의 배려로 그녀는 필라델피아 미술대학에서 열리는 근사한 연회에 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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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신약을 처방할 때는 이렇게 물어보라.
이 약이 다른 약이나 다른 치료보다 낫다는 증거는 무엇인가요? 그 증거는 전문가 상호심사 학술지에 실린 것인가요? 아니면 제약회사 담당자들로부터 입수한 정보인가요? 정확한 답변과, 필요하다면 논문 원본 혹은 교과서를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
이 약은 고용량을 투여하기 때문에 더 효과가 있는 것 아닌가요? 값싼 약도 해당 용량을 투여한다면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때로는 기존의 약 용량만을 올려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새로운 약이 기존의 것보다 더 낫다고 믿을 근거는 대개 없으며, 약이 오래된 것일수록 안전성에 대한 자료가 많이 확보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이 약으로 바꿔서 얻는 이득이 부작용과 비용과 현재 복용하고 있는 약들과의 상호 작용을 일으킬 위험성을 상회한다고 보시나요? 모든 약은 부작용이 있으며, 저절로 좋아지는 병이나 사소한 병은 아무 치료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이것은 무료 샘플인가요? 그렇다면 다 복용한 후에 쓸 수 있는 값싼 제너릭이나 같은 종류의 약이 있나요? 공짜 샘플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우리와 의사들을 최신의 가장 비싼 약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이다.
선생님은 이 약의 제조사와 금전적 연관이 있으신지요? 예를 들어 회사에 자문을 해 주시나요? 무료 샘플 외에 제약회사에서 주는 선물을 받으시나요? 제가 이 약을 복용하거나, 제약회사의 임상시험에 포함되는 대가로 돈을 받으시나요? 시간을 내서 제약회사 담당자들을 만나시나요? 이 중 하나라도 그렇다는 대답을 한다면, 의사를 바꿀 것을 고려하라. 의사가 오로지 최선의 처방이라는 기준에 의해서만 판단하는지 알아야 한다. 의사들 또한 제약회사의 선심을 기대하는 상태로부터 서서히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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