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보기에 예술 및 그와 관련된 미적 태도들이 사회마다 크게 다르다는 사실은 그것이 생물학적이거나 ‘자연적(나는 이 점을 증명할 것이다)’이라기보다는, 전적으로 학습되거나 ‘문화적’ 기원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언어에서 유추할 수 있다. 아이들의 언어 학습에서 비록 각 아이들은 양육 환경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특정 언어를 배우지만, 말을 배우는 것은 모든 아이가 가진 보편적이고 선천적인 능력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술은 자연적, 보편적 성향이고, 이 성향이 단지 춤, 노래, 연기, 시각적 표현, 시적 화법 같은, 문화적으로 학습되는 특성으로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 p.12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인간 본성을 신, 사회, 문화의 산물로 생각하지만, 종중심적 입장은 정반대의 관점에서, 신, 사회, 문화가 이미 존재하는 인간 본성의 생물학적 필요와 잠재력에서 나온 산물, 해답, 구현물이라 주장한다. 먼저 이 사실을 인식한 후에야 우리는 원한다면, 문화적 차이를 고찰하고 이해할 수 있다. --- p.36
만일 우리가, 예술을 장대하고, 희귀하고, 위압적인 것으로 보거나 예술을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교묘하고, 도발적인 것으로 보는 서양의 협소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패러다임에서 한 걸음 벗어난다면, 더 크고 더 포괄적인 실체인 특별화하기(예술, 제의, 유희를 포함한다)를 하나의 보편적 행동으로 인정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개념을 ‘예술’이나 심지어 ‘특별화하기로서의 예술’에서, ‘특별함을 만들고 표현하는 마음 기능’으로 확대한다면, 우리는 ‘예술들(특별화하기의 사례들)’이 최초에 어떻게 생겨났고 예술들이 왜 ‘미적 인간’인 우리의 개인적 삶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생물종으로서의 진화에 필수적이었는지를 인간에 기초한, 인간과 유관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 p.124
인간의 뇌는 감정으로 채색된, 비언어적인, 지각-운동신경 기억 체계들의 창고이고, 그 체계의 요소들은 연상망으로 긴밀히 통합되어 있다. 새로운 자극은 다른 매개변수가 아무리 많더라도 비슷한 면을 가진 다른 자극들과의 관련성을 통해 지각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루카스 크라나’와 ‘로비스 코린트’는 둘 다 이름이고, 소리와 음절 길이가 비슷하고, 둘 다 ‘독일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예술과 관련이 있다. 우리는 도리스식 원주 앞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수천 개의 다른 물건들과 그 원주가 공유하는 지각/감각/운동신경/감정적 특징들과 연관지어 그 원주를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직성, 상승하거나 곡선을 그리거나 도약하는 행위, 강함, 흰색, 오래됨, 일렬 배치, 자음 소리로부터의 연상(‘데릭derrick’, ‘도어릭door-ic’), 도리스란 이름의 어떤 사람 등이 그것이다. 꿈, 신화, 시각 예술의 상징성은 변화하는 감각적 상들의 이 호환성을 이용하는데, 그 상들에는 합리적으로 여겨지긴 해도 설명하기 어렵거나 미약한 ‘기시감旣視感’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적 색채가 첨부되어 있다. --- p.288
물론 고도로 전문화된 우리 사회에서 예술은 독립된 전문 분야가 되었고, 제의를 비롯한 ‘이면의’ 목적과 떨어져서 존재한다. 근대화된 사회 또는 ‘선진’ 사회에만 존재하는 이 분리는 예술을 대문자 P의 문제(Problem)로 만들었다. 예술의 전문화가 남긴 유산과 예술 스스로가 최근에 삶과의 무관계성을 선언한 탓에 예술은 정부의 예산 편성 담당자에게 ‘불필요한 허식’으로 취급당한다. 예술의 전통적인 신성한 후광 그리고 예술과 특권층의 결합으로 인해 예술은 사회의 일부 계층에게 대단히 탐나는 일용품이 된 동시에 나머지 사람들에겐 신랄한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이렇게 예술은 신성한 취급과 쓰레기 취급을 동시에 받고, 복잡한 해설이 필요한 대상인 동시에 완전한 무시의 대상이 되었으며, 경매장에서는 수백만 달러를 호가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삶과는 무관해졌다. 예술이 무엇인가 또는 무엇으로 회복될 수 있는가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인류 역사의 9분의 1(혹은 르네상스 이후로만 본다면, 80분의 1)이라는 짧은 기간 너머로 눈을 돌려 읽기와 쓰기를 배우기 이전에 ‘미적 인간’이 발휘했던 미적 성향의 증거를 찾아야 한다.
--- p.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