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OECD 가입 기준에 인터넷 사용 편의성이라는 항목이 있다면 독일은 당장 퇴출이 된다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벌써 그런 항목이 있다면, 어쩔 수 없고). 혹시 메르켈 총리의 우스꽝스런 사진이 급속도로 퍼지는 걸 막기 위해 와이파이 보급률을 낮추는 게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들 만큼, 정부 차원의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무관심과 소극적인 개척정신의 결과물인 듯 보였지만, 실은 인터넷이 안 되니 생각이 깊어졌을 뿐이다.--- p.16
나는 항상 당장 죽어도 후회가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기에, 지인들의 편의를 위해 유서를 미리 써 두었다. 그건 졸저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에 장엄하게 적혀 있다. 매년 유서를 개정하기로 했으나, 올해 판은 아직 고치지 못했으므로 개정판을 작성할 때까지는 일단 굉장히 열심히 살기로 했다. 혹시나 개정판을 작성하지 못했는데도 내가 사고를 당한다면, SNS에 나를 추모하는 아름다운 글로 도배하는 그런 비자본주의적인 행동은 삼가고, 그저 『풍의 역사』를 사 주길 바란다.--- p.75
밤은 일찍 오고, 그 밤은 길다. 이곳에서의 나의 일상 대부분은 어둠이 차지한다. 그렇다 서 이 일상을 거절할 순 없다.
때로 일상은 살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살아 내야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때로 그 일상이 다시 살고 싶은 대상이 되기도 하기에, 살아 내야 하는 오늘을 무시하지 않으려 한다. 소중한 날로 이어지는 다리는 필시 평범한 날이라는 돌로 이뤄져 있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돌 하나를 쌓은 밤이다.
필요한 날이었다.
열네 번째 날이다.--- p.76
“사람들은 모두 변해. 그렇다고 남을 탓할 수도, 나를 탓할 수도 없어. 단지 우리는 그때마다 자신의 best version으로 변하면 되는 거야.”
worst version이 되고 난 다음 날, 숙취와 수치 속에 이 말이 떠올랐다.--- p.108
그나저나, 지난번 대홍기획 사보에 쓴 글의 주제는 ‘혼자 밥 먹기’였는데, 나는 “아니. 왜, 이런 주제를 나한테 청탁한 건가!” 하며 격분했는데, 곰곰이 따져 보니 그날도, 그 전날도, 그 전전날도 혼자서 밥을 먹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아니. 이렇게 맞춤 양복처럼 딱 맞는 주제가 있나!’ 하며 감탄했다. 하여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쓸까 하다가 어차피 원고료는 A4 한 장 값만 줄 것이기에, 그 마음을 꾹꾹 눌러 한 장만 썼다. 그나저나 나는 그 원고에 불란서의 사상가 보드리야르의 말을 인용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근보다 더 슬프고, 거지보다 더 불쌍하게 보이는 것은 많은 사람 앞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광경이다.”
혼자 밥을 먹은 국가만 해도 38개국에 달하는 나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만약 내가 보드리야르가 대학원 다니던 시절, 그의 학과장이었다면, 석사학위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학부도 낙제시켰을 것이다. 단,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은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은 고독 속에서 혼자 서는 인간이다.”
만약 내가 스웨덴 한림원장이었다면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줬을 것이다.
불이 꺼진 텅 빈 연구실에서 혼자 있는 이 밤, 입센만이 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p.144
일기를 쓰는 건 자신의 마음이 가고 있는 지도를 스스로 그려 가는 일이다.
지난 한 달간 나는 生에서 人間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아직 생의 종착역까지는 많이 남았다. 내 열차가 너무 많은 승객들로 대화조차 불가능한 것은 곤란하지만, 아무 승객도 없이 그저 운행 일정을 지키기 위해 달리는 열차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종착역은 같지 않더라도,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한 명의 승객이 있었으면 좋겠다.
젠장, 이곳도 가을이다.--- p.162
백림에 와서 무얼 했나 뒤돌아 보니, 일기만 쓴 것 같다. 대충 살자고 해 놓고, 일기를 너무 열심히 쓴 것이다. 일기를 쓴다고 해서 누가 ‘아이고. 최 작가님 고생하십니다’ 하며 계좌 이체를 해 주는 것도 아니고, 국가에서 ‘최 작가. 적성에도 안 맞는 군 복무 하느라 힘들었네. 다음 생에 한국에서 또 태어나면 면제로 해 주지’ 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열심히 쓴 것 같다.--- p.262
‘노 앵글리쉬’ 아줌마의 설명으로 간신히 찾아낸 식당(역시 ‘아니,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자연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있었던 식당)에 당도하니, 역시 모두가 ‘노 앵글리쉬’였다. 모두가 ‘노 앵글리쉬’이다 보니, 드레스덴이 미 공군과 영국 공군의 폭격을 차례로 받아 영어를 싫어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덕분에 나는 독일어 실력이 느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물보다 싸다는 지역 맥주로 목을 축이고 정신을 차려 보니, 옆방에선 역시 ‘아니 이게 가능하단 말이야’라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회갑연 같은 걸 벌이고 있었다. 밴드는 맥주를 마시며 연주를 했는데, 간간이 ‘법흥리 김 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같은 유산 상속자들이 싫어할 법한 덕담도 늘어놓(는 것 같)았다.--- p.267
나는 지금 전철 옆자리에서 과도하게 진한 키스를 하며 내 자리로까지 진격해 오는 커플 옆에서 몸을 쪼그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 밤 뜨거운 잠자리가 예상되는 이들의 격렬한 키스로 미루어 보건대, 확실히 베를리너들은 모두 외롭다는 인상을 준다. 방금 여자가 남자의 목에 손을 두르면서 너무 흥분했는지 그 손가락이 내 얼굴에 닿아, 잠시 둘 다 하던 일을 (여자는 키스를, 나는 일기를) 멈추고 서로 정색한 채 “앤슐디궁(미안합니다)” 하고 외쳤다.
말하고 나니, 내가 왜 미안하다고 했는지는 헷갈렸으나,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격렬한 키스를 하고 있는데도 ‘누우세요’라며 자리를 떠나지 않은 것 자체가 청춘에 대한 실례였던 것 같다.--- p.290
돌이켜 보니, 일기를 쓰는 시간이 큰 힘이 됐던 것 같다.
돌아갈 날까지 일기를 계속 쓸 것이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실수하면 인정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사과하고, 좋은 것이 있으면 감사하고, 남은 시간을 소중히 쓰기로 했다.--- p.319
이 글은 잘츠부르크를 떠나는 기차의 역방향 좌석에 앉아 쓰고 있다.
역방향 좌석에 앉으니 자꾸만 뒤로 가, 비단 구두 사 오겠다고 약속하며 여동생을 두고 뒷걸음질 치는 오빠 심정이 된다.
서울 간 오빠만이 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태어나서 역방향은 처음인데, 어떤 도시를 떠나기 아쉬울 때는 역방향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반대로, 정방향은 어딘가로 향한다는 느낌이 온전히 들어 항상 목적지를 생각하게 된다. 즉, 역방향은 과거지향적이고, 정방향은 미래지향적이다.)--- p.323
지구가 매일 무수한 탄생과 죽음을 배경으로 움직이듯, 삶이라는 여정 또한 정착과 떠남이라는 상반되는 두 단어들이 바통을 전해 주며 이어진다.--- p.336
가는 곳마다 ATM기가 작동하지 않아, 미화 200불을 환전하는 데 수수료만 4만원을 냈다.
그러고 나서 발견한 ATM기는 건강하게 작동했다. 프랑크푸트 행 비행기에서부터 시작한 멍청한 짓을 베를린과 프라하를 거쳐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도 계속하고 있다(프라하에서도 수수료 4만 원을 내고 환전하고 나니, 바로 앞에 ATM기가 있었다).
나는 이토록 일관성 있는 사내인 것이다(멍청함마저도 지속하는 사내라면, 그가 품은 연정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이 건강한 질문을 뭇 여성들은 가슴에 품기 바란다).--- p.403
많은 사람을 만났고, 해일처럼 그 만남들이 모두 지나가니, 결국 비수기의 해변처럼 쓸쓸하고 차가운 일상만이 남았다. 다시 할 일은 없어졌고, 어쩌면 1년 내내 이런 날들이 이어질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인가’ 하는 상대성이지만, 크게 보자면 지금 맞은 한 해가 여생과 별 차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어쩌면 다시 원고지를 펼치고 스스로 펜을 잡을지도 모르겠다고 여겼다. 당연한 말이지만, 작가에게 고독은 실로 떨쳐 내고 싶은 지긋지긋한 존재이지만, 떨쳐 내 버리면 자기 자신이 생존 불가능해지는 필요악 같은 존재다. 어불성설 같지만, 작가가 완전히 혼자가 아닌 것은 언제나 고독이 함께하기 때문이다(백림에 다녀온 후, 관념 철학에 오염된 것 같다. 아울러, 유머도 독일식에 감염된 것 같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p.491
결국 인생에서 필요한 건 상대에게 웃음을 짓는 것, 상대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 그리고 스스로를 존중하며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그 실천인 것 같다.
어디에 있건, 남은 시간들은 소중히 쓰기로 했다.
서울에서의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백림의 여운은 이제 모두 정리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서울에서의 날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 날이었다.
--- p.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