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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은의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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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124*188mm
ISBN13 9788932042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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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장사를 왜 하려고 그래?”
“엄마도 하잖아.”
“먹고살 게 없으니까 하는 거야.”
“나도 그래. 나도 먹고살 게 없어.”
지화 씨는 말문이 막힌 듯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내 딸은 어쩌다 먹고살 게 없는 사람이 되었을까.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 「프롤로그: 먹고살 게 없는 서른일곱이 되어」중에서

이력서 양식은 압축된 인생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틀이었다. 그 틀 안에선 어떤 인생이든 쉽게 분류되기 마련이고, 회사의 인재 선발 기준에 맞춰 무엇이 부족하고 넘치는지 한눈에 드러났다. 서류 양식부터 인간을 가르는 잣대가 적용되었다. 왼편 상단의 사진(외모), 대학명과 학점(계급), 자격증 및 경력 사항(스펙), 자소서(열의). 이러한 형식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중요도에 따라 하향식으로 전개된다.
--- 「보영│가성비 높은 삶」중에서

겉으로 보면 마은의 가게도 오롯이 자리 잡고 있는 가게인데, 왜 하필 내 가게 앞을 기웃거리며 거슬리게 행동하는 걸까. 여자 혼자 운영하는 가게라서 그런 걸까. 다른 일을 할 땐 이렇게까지 성별을 의식하며 신경이 곤두서지 않았다. 불편하거나 두려우면 언제든 떠나면 그만이었지만 가게는 내가 끝까지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나의 발이 마은의 가게에 묶여 있었다.
--- 「마은│어서 오세요 마은의 가게입니다」중에서

“마은아, 너는 지금 행복해?”
나는 언니의 질문에 잠시 침묵했다. 나는 행복한가. 열심히 장사를 하고 있지만 밤마다 두려움을 느끼며 잠을 설치는 나는 행복한가. 그럴 리가 없지. 손님들 앞에선 밝게 웃지만 적자를 예상하고 저녁밥을 컵라면으로 때우는 나는 행복한가. 그럴 리가 없지.
--- 「마은│구전설화처럼」중에서

“나도 연대가 좋아. 근데 진정한 연대가 뭔지 모르겠어.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에만 있는 거 같아. 목소리 내는 게 크게 두렵지 않고, SNS로 자기 홍보를 잘하는 사람들이나 실천할 수 있는 거 같아. 계층이 있어, 여기에도. 그런 자원에 접근하고 싶지 않거나 접근하고 싶더라도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거든. 마음의 벽이라는 것도 있고. 소용없을 거 같아서 지레짐작으로 하는 포기도 있고. 의지를 가질 수가 없는 거지. 예전엔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닌 것 같아. 일과 이 사회 때문에 지쳐서인 것 같아.”
--- 「보영│촉발」중에서

우리는 남은 막걸리를 나눠 마셨고 두부를 베어 먹었다. 눈송이가 점점 굵어졌고, 우리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이모가 가끔 우울해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때마다 이모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그런 게 있어. 폭력적인 면이.”
“화를 좀 참아봐, 이모.”
“그게 쉽지가 않아. 세상이 나를 때리는 것 같을 때가 있어. 내 뺨을 때리고 등짝을 때리고 종아리를 때리는 것 같을 때가 있어. 맞다 보면 화가 나는 거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종종거리고 다닌 것밖에 없는데.”
--- 「마은│일어난 일과 일어나지 않은 일」중에서

“보영 씨, 이 일 때문에 누군가를 믿지 못하게 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미리 의심하지 말고, 겁먹지도 말고요.”
“의심하지 않는 건 어려워요.”
이미 상처가 되었으니까. 이 일로 민감해진 어떤 감각이 있으니까.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만 마요. 이런 일을 당할 것이다, 그런 한계요.”
“여자라서.”
“맞아요. 여자라서 당할 것이다, 그런 마음이요.”
--- 「보영│한계를 긋고 지우는 일」중에서

가게가 지속되더라도 대단한 성공을 이룬 가게는 될 수 없을 것이다. 크게 성공하지 못해도 자리를 지키며 성실하게 장사하는 것에 만족해야 할까. 사실 대부분의 가게가 그럴지도 모른다. 손님과 함께 나이 드는 사장, 손님과 함께 나이 드는 가게. 그것을 목표로 마은의 가게가 마은 할머니의 가게가 될 때까지. 자영업 평균 수명이 이렇게나 짧은 나라에서 불가능한 그것을 목표로.
--- 「마은│그리하여 오래오래」중에서

그는 자유롭게 이 거리를 걷고 싶을 뿐이다. 그 누구의 손에도 붙잡히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기대를 심어주지 않고서. 그저 자유롭게 걷고 내달리고 잠들고 싶을 뿐이다. 저 공마은처럼. 바로 당신처럼.
--- 「에필로그: 삼색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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