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의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us)는 “사람은 사물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생각’ 때문에 괴로워한다”라고 하였다. 똑같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나눠진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두고 “한 생각에 따라서 어리석은 중생도 되지만, 지혜로운 부처도 된다(成佛成魔一念之間)”라고 말한다. 어떤 상황(또는 사건, 물건, 사람)을 고통으로 보느냐, 행복으로 보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스스로 문제 삼지 않으면 고뇌는 없다. 행복이란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늘 그 자리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8만 4천 번뇌를 넘어서라」중에서
부처님께서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수행자 가운데 만동자가 홀로 조용한 곳에서 좌선하고 있다가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와 여쭈었다.
“부처님, 좌선을 하고 있어도 망상이 떠나지 않습니다. 제가 질문이 있는데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중략)
“만동자야, 만약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아 고통을 받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친구들은 바삐 의사를 부르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친구들을 만류하며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되오! 나는 먼저 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야겠소. 그 사람의 성이 무엇이고,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신분인지를 알아야겠소. 그리고 그 활이 어떤 나무로 만들어졌는지 알아야겠고, 또 화살에 어떤 독이 묻어 있는지를 알아야겠소. 이 모든 것들을 알고 난 뒤에 나는 이 독화살을 뽑겠소’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느냐? 아마도 이 사람은 그것들을 다 알기도 전에 온몸에 독이 퍼져 죽고 말 것이다. 만동자야, 세계가 영원한 것인지 무상한 것인지, 육체와 영혼이 하나인지 개별적인 것인지, 사후에도 존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안다고 해서 삶의 고통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의 현재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통을 극복하고 해결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고통의 근원에서 벗어나려면」중에서
“부처님께서 소개해 주신 레와따 스님은 너무 성의 없이 침묵만 지켰고, 사리불 존자는 지나치게 진리를 많이 설해서 우리를 질리게 했으며, 아난 존자는 요점만 간단히 말해서 도저히 불법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들은 그들의 설법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그들의 말을 경청한 뒤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남을 비방하고 불평하는 일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구나.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이든지 남의 비방을 듣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설령 한 나라의 황제나 부처일지라도 비방을 듣는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아라. 설령 그대들이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듣는 다면 어떻겠느냐? 혹 그런 일을 겪으면, 어떤 말이든 무시해 버려라. 하지만 상대방이 그대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그 비판을 참고삼아 자신을 고쳐야 하느니라.”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다고 상대를 비난하고 비방했다는 이야기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현시대에도 근거가 없는 악플을 달고 비방을 일삼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고대에도 저런 경우가 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내가 상대를 비난하거나 비방하면, 언젠가는 그 화살이 부메랑되어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 두어야 한다.
---「비난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중에서
서두 게송의 ‘속이지 말라’라는 문장이 마음에 꽂힌다. 해인사 성철(性徹, 1912∼1993) 스님께서는 살아생전 “불기자심(不欺自心)”이라고 하셨다.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말라’는 뜻이다. 인간은 타인을 속이고, 신도 속일 수 있다. 또 인간의 뇌는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해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다. 이에 ‘속이지 말라’는 뇌가 아닌 마음에서 ‘진실한 자신과 마주하라’는 뜻이라고 본다. 당나라 때 서암언(瑞巖彦, 850∼910) 선사는 매일 바위 위에 올라가 큰소리로 자문자답하였다.
“주인공아!”
“네.”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가?”
“네.”
“속이지 말라.”
“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함이다」중에서
법정 스님은 살아생전 잠시 출타를 할 때 늘 죽어 가는 그 순간을 맞이하는 것처럼 짐을 꾸렸다고 한다. ‘섣달 그믐날(죽음)이 찾아오면 모두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가니, 이를 미리 연습하자’라는 뜻에서 비롯한 행동이었다. 스님은 혼자서 이삿짐을 주섬주섬 싸고 있을 때 문득 드는 시장기 같은 것을 허허로운 존재의 본질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스님은 유서를 죽기 전에 남기는 글이 아닌 ‘생의 백서’라 묘사하며 입적하기 몇 해 전 미리 유서를 써두었다고 한다.
(중략) 법정 스님 말씀대로 죽음에 대한 염두는 생의 백서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이다. 불안에 떨며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해 열심히 살자.
---「걱정할 시간에 집중하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