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이 책을 낸 저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낸 친족 성폭력 피해자이자 생존자 ‘은수연’으로 살았습니다. 이제는 그 꼬리표 없이 ‘김영서’로 살겠습니다.
김영서라는 이름으로 개척자의 삶을 살려 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이런 방식의 미투를 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저처럼 작고 평범한 사람도 자기만의 색깔을 내면서 ‘상처 입은 치유자’로 담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 p.8
‘은수연’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낸 뒤 지금까지 ‘은수연’으로 지내면서 저를 보호했습니다. 이번에 ‘김영서’가 된 뒤에도 일상에서 잘 보호받기를 바라면 욕심일까요? …… 동네 단골 카페나 슈퍼마켓에 편하게 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버스나 지하철을 마음놓고 탈 수 있을까 싶어 살짝 걱정도 됩니다. 그래도 아주 멀리, 아주 높이 가보고 싶고, 언덕도 넘고, 숲길도 헤치고,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 보고 싶습니다. 그러다 멍도 때리고 싶고, 길을 잃게 되더라도, 이 길의 끝에서 깨닫고 느끼게 될 새로운 삶의 느낌을 기대하며, ‘김영서’로 새롭게 출발하고 싶습니다.
--- p.9
“아빠, 제발 이제는 하지 말아줘.”
이런 부탁도 끝이다. 아빠의 그 짓은 부탁해서 멈추게 할 일이 아니라 원래 하면 안 되는 짓이었고, 감옥에 갇혀야 할 정도의 큰 죄였다.
아니, 이 택시가 이상하다. 아까 그 사람이 일보러 간다던 우체국 앞으로 가는 택시. 나도 모르게 뒷좌석에서 몸을 낮게 숨기며 말했다.
“아저씨 빨리 좀 가요.”
--- p.24
엄마라는 사람은 워낙 결혼 초부터 계속된 매질에 익숙해지고 무기력해져 있었다. 왜 경찰을 부르지 않나 싶었지만, 그때는 부부싸움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면 ‘집안 문제’로 여기고 경찰이 집에 오지도 않았다. 엄마는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신고는 아예 생각조차 못 하게 되고, 내게 일어나는 일도 어디에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전혀 모른 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도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협을 계속 느끼며 살아서 딸을 돕는 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가족 전체의 목숨을 위협하는 아빠라는 사람하고 살면서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떨어진 것 같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잃어버린 듯했다.
--- p.39
아침에 눈을 뜨니 이제까지 살던 세상하고는 완전 다른 세상이었다. 아빠는 없어졌다. 내게 아빠라는 존재는 없다. 아빠라는 사람이 내 팬티 속에 손을 넣은 첫날. 나는 이제 그 사람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웃고 떠들며 친할머니의 생일잔치를 준비했다. 평소처럼 대하는 그 사람의 쓰다듬기, 칭찬, 웃음소리가 이제는 모두 달라졌다.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아빠였지만 그나마 아빠라 여기던 마음까지 사라졌다.
--- p.71
아침이 됐다. 미역국이 나왔다. 나는 산모인 거다. 누가 뭐래도 내 몸은 산모다.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메뉴는 정확히 생각난다. 의사는 병실에 와서 이제 좀 어떠냐고 묻더니 자기 운전기사에게 말해뒀으니 퇴원해서 집까지 자기 차를 타고 가라고 했다. 의사의 친절함을 확인한 순간 어떤 생각이 스쳤다. ‘도와달라고 얘기할까?’ 집에 가면 그 짓을 또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없던 일로 될까 봐 걱정도 됐고, 도움을 청하면 어떻게든 도와주지 않을까 싶었다. 다른 한편 겁도 났다. 친아빠가 친딸한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6학년인 지금까지 거의 매일 강제로 그 짓을 한다는 게,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이야기라 나도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랐다.
--- pp.95-96
조용히 반항하지 않고 당한다고 해서 그게 꺾인 것도 아니고, 포기한 것도 아니다. 그놈한테 동조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그때 그 상황 속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내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누구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저지른 더러운 짓을 완전히 무시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그때도 학교에서 웃을 일이 있을 때는 웃고, 좋은 것이 있을 때는 좋아했고, 공부해야 할 때는 열심히 공부했다.
--- pp.110-111
내가 겪은 일은 역사적으로 누구나 기억해줄 수 있는 사건은 아니다. 아빠라는 사람 탓에 겪은 고통은 그 사람과 나 두 사람만 안다. 우리 둘 중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고 살다 죽으면 그 일은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 그 사람은 절대로 그 일들을 말하지 않을 테고, 글로 쓰는 일은 더더욱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이 입을 다물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살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내가 입을 열어야 하는 이유를 더 확실히 알게 됐다. 그 사람이 내게 저지른 더러운 짓거리는 분명히 사실이다. 그 사람은 그때도 그런 것처럼 지금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목사 행세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이 한 짓들은 내 영혼을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기도하고, 울부짖으며, 숨쉬고, 결국은 탈출하고, 살아남았다.
--- pp.140-141
“야, 이년아, 거울에 네 얼굴 봤어, 얼굴을 찡그려? 네가 뭐 성모 마리아라도 되냐?”
머리 가죽이 벗겨진 것처럼 화끈거렸다. 거실까지 머리카락이 당겨지는 힘으로 끌려나왔다. 그 사람은 내 온몸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아니, 밟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나는 성모 마리아가 아니라 네놈 딸이거든. 그래서 네가 성모 마리아랑 뭔 짓을 하든 나한테 상관없는데, 나한테는 이러면 안 되거든. 개썅, 미친 새끼야, 차라리 성모 마리아랑 그 짓을 해라.’
--- p.149
나는 쉽사리 용서를 말하고 싶지 않다. 욕할 만큼 하고, 미워할 만큼 미워하고, 죽이고 싶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죽이고 또 죽이면서 속이 풀릴 때까지 원 없이 욕하라고 말하고 싶다. 어설프게 미워하고, 대충 욕하지 말고, 완벽하게, 철저하게 온 마음을 다 실어서 더는 미워할 힘이 남지 않을 때까지 미워하라. 욕하고 욕하다 더는 어떻게 욕해야 할지 모를 때까지, 세상에 있는 나쁜 표현은 다 써버려서 더는 할 말이 없을 때까지 욕하라.
--- p.205
아빠가 성폭력 한 것을 용서합니다. 어린 나이에 성폭력으로 임신하게 하고, 낙태까지 경험하게 한 것을 용서합니다. 수능 전날 밤 호텔에서 성폭력 하려다 말을 안 듣는다고 밤새 때린 것을 용서합니다. 강제로 행한 온갖 더러운 짓거리들, 그 짓들로 나를 상처 입힌 것을 용서합니다. 하루는 기절할 때까지 나를 때리고,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다니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때린 뒤 다음 날 주민등록증 사진을 찍게 한 것을 용서합니다. 밤에 으슥한 산길에 차를 대놓고, 그곳에서 성폭력 한 것을 용서합니다. 내가 기침감기가 심하게 걸려 계속해서 기침이 나오는데 그 짓거리 하겠다며 내 위에 올라타서는 계속 기침한다고 주먹으로 내 얼굴과 가슴을 내리치던 것을 용서합니다.
--- p.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