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그러지고 어딘가 망가져 있다. 가난한 자들이 착취를 당하는 모습은 세상의 일부가 정상이 아님을 보여 준다. 약한 자들이 억압을 받는 현실은 마땅히 지켜져야 할 도리가 무시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스스로를 돌아보더라도, 각자에게 요구되는 바른 모습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관용보다 탐욕을, 타인의 필요보다 자신의 편의를 쉽사리 선택하며 산다. 결국 어디를 둘러보아도,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정의, 긍휼, 공평, 선의를 향한 내면의 깊은 갈망을 느낀다. 그리고 그 갈망의 일부분이 충족되면, 세상이 마치 정상적인 궤도를 다시 찾은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이를테면 거꾸로 뒤집힌 세상에서 정의를 통해 잠시나마 정상적인 모습을 보는 듯하다. 간혹 망가지고 타락한 세상의 실체를 대하며 사람들이 맞서 싸우려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런데 정의를 향한 우리의 갈망은 단지 21세기에만 존재하는 마음이 아니다. 그 갈망은 인간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마음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언제나 공평, 긍휼, 선의와 같은 가치들이 실현되기를 갈망해 왔다. “어떤 모습으로 그러한 가치들이 실현되어야 할까?” “어떻게 그 가치들이 실현된 현실을 경험할 수 있을까?” “과연 무엇이 그와 같은 현실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할까?”
미가는 주전 8세기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냄을 받은 구약의 선지자이다. 그는 까다로운 물음들을 다루고 있다. 그의 물음은 당시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메시지이다. 그 메시지에서 가장 유명한 말씀은 6장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우리는 이 구절을 어느 포스터나 자동차 스티커에서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처럼 잘 알려진 이 구절은 미가서의 핵심을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선한 것’을 오늘도 주변에서 보기 원하는 우리의 갈망을 대변해 준다. 그런데 만일 시간을 들여 미가서 전체를 주의 깊게 읽는다면, 우리는 이 선지서에서 단지 정의를 배우는 일만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게 된다. 우리를 향한 미가서의 메시지는 그저 선을 행하라는 요청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광과 창조 세계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선을 행해야 할 이유와 필요를 먼저 깨닫게 되기를 원하신다.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하기를 원하신다. 이런 차원에서 미가서는 우리에게 불의의 악이 실재하며, 그에 따른 심판이 불가피하지만, 그와 동시에 회복의 소망이 찾아오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처럼 미가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핵심 주제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중략)
죄, 심판, 소망이라는 주제들은 미가서를 읽을 때 도움이 되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미가서의 각 장을 읽을 때 혹시 한 가지 주제만 부각되더라도 그 모든 주제들이 숨겨져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주제들은 단지 미가서를 읽을 때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평가할 때도 유용한 가이드라인이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여전히 죄가 만연하고, 그에 따른 심판이 불가피하지만, 소망이 분명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우리 죄에 대한 심판을 감당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 소망이 이미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차 다가올 예수 그리스도를 전제한 관점에서 미가서를 읽을 때 감동과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바로 그럴 때 우리는 늘 정의롭고 인자가 넘치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마음 깊이 갈망하는 그 삶, 즉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 「프롤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