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자아가 강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꼭 무엇을 해야 하고, 내 뜻대로 무엇이 되어야 하고. 이런 사람들은 그만큼 자신에 대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그런 능력 때문에 그렇게 자아가 강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성공을 거듭하게 되면 이 사람은 결국 ‘이 모든 것을 내가 했다.’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물질계에서 어느 정도 자신의 힘이 자신의 뜻대로 운용되는 것을 보면서 스스로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 사람의 내면에서 그 ‘내가 했다.’의 ‘내’가 ‘내가 한 노력’의 양보다 더 강하게 굳어지면서 ‘나’라는 것이 모든 것들의 우위를 점령하게 된다.
그때 전체적인 다르마 또는 현상계는 이상한 기미를 알아챈다. ‘뭐? 네가 했다고? 이 사람이 위험하다. 제자리에 돌려놓아야겠다.’하는 자비를 일으키면서 이 사람의 잉여 포텐셜인 그 ‘나’를 부수기 시작한다. ‘내가 했다.’라고 믿었던 것들이 하나, 하나, 순식간에 부서져 나간다. 사업이 부도나고, 병이 나고, 가정이 파괴되고…. 이렇게 극단적인 일들이 아니더라도 인간관계가 점점 더 악화되고, 도움의 손길은 끊어지고, 믿었던 사람들은 등을 돌린다. 그럼, 이 사람은 순식간에 자신이 의지하고 있던 세계가 사라지는 공포를 겪는다. 마치 자기 발밑의 땅이 한 조각, 한 조각 아래로 꺼져 버리는 듯한. 그러면서 이 사람은 스스로 강하게 구축해 놓았던 그 ‘나’가 흔적도 없이 부서져버림을 경험한다. 바로 우주의 자비가 정확히 과녁을 맞힌 것이다.
--- p.43
내가 스리랑카에 처음 와서 공부하던 시절, 그때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기후와 음식이 맞지 않아 몸이 많이 아팠고, 마음먹은 대로, 계획한 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반면에 해야 할 일은 정말 엄청나게 많았다. 초창기에는 그 뜨거운 교실에서 학교 수업을 듣고 돌아오면 몸은 파김치가 되었다. 빠알리어와 영어로 듣는 수업은 한국에서 들었던 수업과 비교하면 10배 이상의 에너지가 소진되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복습하고 하다 보면 내 시간이 채 5분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학자가 아니라 수행자가 아닌가? 그러면 마지막 5분이라도 파김치가 된 몸을 벽에 기대고 호흡을 보며 내면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러다가 잠들기가 태반이다. 어느 날은 심장이 너무 아파 책상이 바로 1m 앞인데 책상 앞에 앉지도 못했다. 결국 21일간 학교도 못 가고 침대에만 누워 있어야 했다. 정말 생전 처음 학교를 빠져야 했다. 그래도 나는 그 시간이 아까워서 아픈 심장을 바라보며 관찰했다. 공부를 못하면 누워서 수행이라도 건지자. (...)
너무 아프고 너무 피곤해서 하루에 단어 하나 외울 기력도 없으면 하다못해 반이라도 외우자. 나의 철학은 ‘하루에 한 발자국 못 나가면 반 발자국이라도’였다. 그러면 이틀이면 한 발자국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으니까. 어쨌든 목표를 향함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
단지 멈추지만 말고, 하루에 단 반 발자국이라도 목표를 향하여 몸을 기울여놓아라. 동쪽으로 기울어진 나무는 언젠가는 동쪽으로 쓰러질 것이다.
--- p.97
한 젊은 남자가 갓난아기를 팔에 안은 채 물통의 스위치를 신경질적으로 눌러대고 있었다. 그 사람이 누르고 있는 스위치는 붉은색이었다. 그러나 물은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이 남자는 더욱더 신경질적으로 스위치를 눌러댔다. 거기에는 붉은색, 흰색, 파란색 스위치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영어로“Hot water is not available(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습니다).”라고 붉은 글씨로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정황으로 미루어 보니 이 남자는 아이에게 따뜻한 물을 먹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확실하지 않아 나는 조용히 다가가서 파란색 스위치를 눌렀다. 차가운 물이 주르륵 흘렀다. 남자가 말했다.
“I need hot water(나는 뜨거운 물이 필요해요).”
그랬다, 내 직감이 맞았다. 나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붉은색 스위치 밑에 쓰인 그 게시글을 가리켰다.
“Hot water is not available(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습니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그는 그 순간 모든 것(?)을 알았고, 그대로 아기를 안고 다른 곳으로 갔다.
현재의 진실인 그 글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은 그의 갈망이었다. 아이에 대한 집착에서 오는. 그래서 그는 나오지도 않는 더운물 버튼을 붙들고, 비록 몇 분이지만 승강이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진실이 가려진 환상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환상,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게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그리고 그는 나오지 않는 더운물이 원망스러워 순간적으로 고통스러웠고…. 잠시 후, 그 글을 읽은 후에는 상황에 대한 이해가 일어났고, 갈망도 환상도 고통도 모두 멈추었다. 진실을 확인한 후에는. 우리는 일생 내내 이러한 작은 에피소드들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진실의 사인을 놓친 채.
--- p.158
한 과학자가 양손을 실험도구에 올려놓고 뇌파를 검사한다. 오른쪽을 누르고 싶을 때는 오른쪽을, 왼쪽을 누르고 싶을 때는 왼쪽을 눌렀다. 다른 한 사람은 그때의 뇌파를 검사했다. 실험결과가 나왔고 실험에 직접 참여한 과학자는 허탈하게 실험결과를 수긍한다. 이 사람이 오른쪽을 누르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벌써 두뇌의 해당 부분에 뇌파가 작동했다는 것이다. 정확히 이 사람이 의지를 일으키기 6초 전에 두뇌는 먼저 상응하여 움직였다. 과학자는 당황한다. 그럼, 그것이 나의 의지가 아니란 말인가?
뇌파를 측정했던 과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마치 외부의 어떤 프로그램이 들어와 작동하는 것 같았다.”
두뇌 또한 어떤 파동을 받아들여 해석하는 홀로그램의 일부분이라는 증거가 되었다. 여기서 나는 언젠가 기록해두었던 붓다의 말씀을 떠올리며 미소를 흘린다.
‘생각 이전에 상카라가 작동한다.’
그 상카라는 업성의 축적이며 이 상카라들은 전 존재계에 함께 존재한다. 인드라망Indra’s net이다. 하나가 전체에 비추이고 전체가 하나에 투영되는. 전체를 이루는 각각의 개체들은, 전체에 저장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왜 우리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지, 왜 전체에 유익하도록 홍익인간의 정신을 새삼 떠올려야 하는지, 왜 끊임없이 크고 작은 공덕을 지어야 하는지 확인해준 우주의 사인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생존의 서바이벌에서 벗어나 평화롭게 존재Well-Being할 수 있는 비밀이기도 하다.
--- p.230
세상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았다. 학교도 다녔고 직장도 얻었고 결혼도 하고 자녀도 있다. 그런데도 행복하지 않다? 당신은 지금 이 지점에 있는가? 모르겠다. 부족한 것이 없는데도 만족스럽지 않다. 모든 것이. 온 세상을 다 돌아다녀도, 그대는 분명히 답을 얻지 못한다. 그것 하나만은 내가 장담한다.
길은 뜻밖에도 그대가 찾아다니는 그 바깥의 무엇이나 누가 아니다. 바로 그렇게 찾아다니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일어나는 그 내면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마음이 사라진 그 자리, 거기가 바로 길이다. 붓다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고통의 소멸은 바로 그 갈망을 놓은 그 자리라고.
그대 아는가? 그대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순간, 모든 길이 사라진다는 것을. 그러므로 결국 그대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삶의 목적이 아님을 알게 될 뿐이다.
아, 오늘도 눈뜨면서 부단히 삶이라는 환영 속에서 바쁜 그대에게 나의 이 필름을 던진다. 잠시 그대의 스크린 속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리라. 마치 어젯밤 뭔가에 쫓겨 진땀을 흘리고 비명을 지르다 죽음 앞에서 ‘악’ 소리와 함께 깨어난 것처럼.
--- p.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