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데?
“실은,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어.”
그 말에 구니마사가 모기장 너머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또냐.”
“아냐, 이번엔 달라. 진짜로 반했다고.”
“매번 진짜라고 하잖아.”
겐지로는 천성이 ‘반하기 쉬운’ 기질로, 사귀는 여자라며 구니마사에게 소개한 적도 몇 번 있었다. 몇 달 뒤에는 어느새 다른 여자를 데리고 다녔지만. 헤어지네 못 헤어지네 하며 여자가 칼을 들고 달려들어, 거품을 물고 도망쳐온 겐지로를 집에 숨겨준일도 있었다.
“그래서? 어떤 여잔데?”
“호리키리에 살아. 우리랑 동갑이고, 이제 막 초등학교 선생이 된 참이야.”
호리키리라면 아라카와 건너에 있는 동네이다. 너 배 있답시고 동네 밖까지 원정을 다니는 거냐. 구니마사는 어이가 없었다.
“넌 여자 덕에 밥 먹고 살 작정이냐? 나가우타(가부키 무용의 반주 음악으로 발전한 샤미센三味線 음악) 사범부터 공무원까지, 화류계 쪽이나 직장 있는 여자만 골라 손을 대더니. 이번엔 선생이라고?”
“아직 손은 대지 않았어. 아니, 대고 싶었지만 어쩌다 보니…….”
이건 좀 드문 패턴이다. 겐지로의 연애사건으로 말하자면 열이면 열 ‘정사情事’로부터 시작되는데, 손도 대지 않은 여자한테 ‘반했다’고 단언하다니 지금껏 없던 일이다. 겐지로가 누구인가!
야생동물급의 본능과 생명력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손을 댐으로써 비로소 ‘반했다’고 뇌가 인식하는 사내였다. 그런데도 여자들이 모여드니 야생동물의 위력이란 참 대단한 것이다. --- pp.147-148
구니마사가 딸네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털어놓았다. 겐지로는 “흐음, 이렇게 되면 다시 합치기는 어렵겠구먼” 하고 팔짱을 질렀고, 뎃페는 “뭐, 이걸로 됐잖아요. 자, 그럼 혼자 사시는 걸로!” 하면서 명랑하게 말하고, 마미는 “전 아리타 씨 같은 아버지, 좋은데요” 하고 북돋아주었다.
“빈말은 안 해도 돼.”
구니마사가 힘없이 고개를 가로젓자 마미가 펄쩍 뛴다.
“빈말 아니래도요! 저희 아버진 도편수인데요, 완전 흉포하거든요. 그렇지, 뎃페 씨?”
“응. 열흘쯤 쫄쫄 굶은 호랑이처럼 흉포해.”
“거기다 엄청 변덕. 그렇지, 뎃페 씨?”
“응. 열흘 만에 소 한 마리 잡았는데, 한 입 깨물고는 ‘역시 돼지 먹고 싶어!’ 하는 호랑이처럼 변덕이야.”
뎃페의 비유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상당한 인물인 모양이다. 구니마사의 속을 읽은 것처럼 마미가 또 한 번 “그러니까 아리타 씨 같은 온화하고 지적인 아버지, 동경한다고요!” 하고 말하자 구니마사의 기분도 제법 괜찮아졌다. 하지만 “지적이면 뭘 해, 자기 마누라 하나 꼬드기지도 못하는데” 하고 겐지로가 말허리를 꺾는 바람에 곧바로 김이 샜다.
“그래도 아리타 씨는 몇 십 년이나 질리도록 부부 생활을 했으니까, 됐잖아요.”
뎃페가 제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같은 말도 뎃페 군 입에서 흘러나오면 어째 이리 풍기 문란하게 들릴까. 내심 한숨을 내쉬며 구니마사도 술을 한 잔 더 받았다.
--- pp.22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