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를 공부하면서 많은 인물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과의 대화는 너무나 다양했다. 어떤 분은 '철다구니 없는 놈, 뭘 안다고 설쳐'라고 나무라기도 하고, 어떤 분은 '부질 없네. 자네가 어찌 붕새의 뜻을 알겠는가? 치우게'하고 타일러주기도 한다. 맨 끝자락에 거론한 분들이 바로 신돈, 정여립, 정인홍, 허균, 전봉준 같은 이들이다.
이들은 방외인이었고, 이단이었고 시대의 저항인이었다. 이들은 참된 가치가 전도되고 잘못 돌아가는 세상을 그대로 참고 볼 수가 없었다. 허위와 가식을 벗기고 새 세상을 만들고자 애쓰다가 역적이라는 굴레를 쓰고 죽었고, 그런 뒤에 역사의 길가에 내팽겨쳐졌다. 나는 역사의 길가에 있는 덤불을 뒤져 이분들의 형해를 찾아 헤맸다. 역사는 정여립의 흔적을 철저히 지워버렸으나 무형의 형해 몇 조각을 주워 모았다.
--- p.발문에 부쳐-왜 '정여립'을 재조명해아 하는가?- 이이화
기록에 의하면 그 무렵 정여립은 승려였던 의연, 도잠, 설청 등과 함께 황해도 지역을 포함한 나라 곳곳을 돌아다녔다고 전해진다. 구월산은 일명 아사달산이라고 해서 국조 단군이 말년을 보냈다는 전설이 있고 그에 따른 사당이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닌 곳으로서 큰일을 도모하기에 알맞은 고장이었다. 특히 산세가 깊숙했기 때문에 30여 년 전에는 임꺽정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곳이기도 하다.
구월산을 거쳐 지나온 정여립은 계룡산 자락을 지나다가 허물어져가는 옛 절을 발견한다. 그 절이 바로 개태사였다. 후백제의 진훤이 죽은 후 왕건이 그 추종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창건했다는 설도 있고, 후백제로부터 항복받은 지점에 세웠다는 설도 있는 개태사는 그후 <정감록>에 장차 정씨가 도읍할 길지라는 말이 떠돌았던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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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산은 일명 아사달산이라고 해서 국조 단군이 말년을 보냈다는 전설이 있고 그에 따른 사당이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지닌 곳으로서 큰일을 도모하기에 알맞은 고장이었다. 특히 산세가 깊숙했기 때문에 30여 년 전에는 임꺽정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했던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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