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하는 동안 일어난 교류들은 어느 때보다 기억에 남는다. 그건 우리가 홀로 쓰거나 함께 썼던 그 어떤 경험보다 관계적이었다. 글에 대한 반응과 그 반응을 따라 움직이며 우리가 읽은 글과 나눈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이 다시 전해지고 움직이고 쓰이는 동안 우리는 가끔 전에 없는 기쁨을 느꼈다.
---「프롤로그」중에서
요나스 메카스의 영화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나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As I was Moving Ahead Occasionally I Saw Brief Glimpses of Beauty〉의 오프닝은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내 인생이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나는 결코 알아낼 수 없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날 것인지 우리는 결코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
---「프롤로그」중에서
─레프 마노비치는 스크린의 계보에서 영화 스크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관람객이 자리를 뜨지 않고도 다른 공간을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움직이는 가상의 시선이죠. 하지만 이 가상적 운동성은 새롭게 제도화된 관객의 부동성을 대가로 얻어진 것입니다. 전 세계에 수백만 명의 수감자를 수용하기 위한 대규모 감방, 즉 영화관이 지어진 거죠. 수감자. 관객은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 수도 자리를 옮길 수도 없습니다. 바로 그게 제가 극장에서 영화 보는 걸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싫어하는 것치고 극장에 너무 자주 가는 거 아니에요?
─정연 씨,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사는 사람은 없어요.
--- p.26
시네마는 단순히 영화 한 편이 아니라 삶의 문제다. 시네마를 하는 것, 시네마를 하지 않는 것 모두 생활을 새롭게 조직한다.
─정연 씨가 〈나랏말싸미〉 대본을 쓴 것처럼요?
K정연의 표정이 잠깐 어두워졌다.
─지돈 씨, 지돈 씨는 그 영화 안 봤잖아요. 어떻게 안 볼 수가 있죠?
내가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은 건 사실이다. 정연 씨에게 여러 번 얘기했지만 마음이 아파 볼 수가 없었다. 왜 마음이 아프냐고? 그건 〈나랏말싸미〉 네이버 평점을 확인하면 알 수 있다…….
--- p.37
르네 도말은 아내에게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 주려고 하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된다고 썼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손에 무언가 넣으려고 한다, 손에 무언가 넣으려고 하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무언가가 되려고 욕망한다, 무언가가 되려고 욕망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살게 된다.
--- p.46
정말이지 영화만큼 우정을 사랑하고 의미화하는 예술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돈 씨와 제가 10년 동안 같이 본 영화가 한 편이라는 사실이 우리 관계를 증명해주는 것 같네요.
K정연이 말했다.
─뭘 증명하는데요?
─우리가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
--- p.63
─자, 들어보세요 지돈 씨. 혼톨로지 음악 경향의 창작 방식에는 작곡, 연주, 녹음 과정이 생략되어 있고 타인의 음반을 샘플링한 후 이를 편집하고 아날로그 음반의 노이즈를 증폭 혹은 삽입시키는 식으로 창작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창작 과정은 작곡은 쓰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빙의되게끔 허용하는 것의 문제라는 트리키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맥신퀘이Maxinquaye〉는 정해진 구조 없이 트리키 본인의 맘에 든 몇몇 단편적 소리들을 토대로 만들어졌고…… 생략…… 또 생략…… 이음매에서 어긋난 시간 속에 마구잡이로 뒤섞인다……. 어때요, 제가 여기서 어떤 아이디어를 차용했는지 알겠어요?
─빙의라도 하시려는 건가요? 홍상수에?
─아니요, 근데 좋은 아이디어이긴 하네요. 그건 일단 키핑해둘게요.
--- p.139
대부분의 경우 우연한 만남은 우연한 만남일 뿐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는 건 또 아닌데, 모든 만남은 크건 작건 우리 안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의 ‘위대한’ 영화가 우리의 인생을 바꾸지는 않는다. 하지만 수백 편의 ‘비천한 영화’는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 제법 높은 확률로…….
--- p.191
아내와 내가 스무 살이 될 무렵 멀티플렉스가 생겼다. 처음에는 강변으로, 다음에는 코엑스로. 우리는 각자의 친구들과 함께 새로 생긴 극장을 찾아다녔고, 그러는 동안 여기저기 지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가깝고 새로운 상영관을 찾았고, 다시 더 가깝고 새로운 상영관을 찾았다. 더 이상 가까운 곳에 새로운 상영관이 생겨나지 않을 때까지.
--- p.214
4중의 마감에 시달리다 정지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 전화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 영화 속 싸대기 액션, 혹은 액션으로서의 싸대기에 대해서. 혹시 그건 제 싸대기를 때리고 싶다는 뜻인가요? 나는 묻지 않았다. 마감에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크고 작은 피해망상에 빠진다는 것이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지돈은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싸대기는 할리우드에는 없는 한국의 고유한 액션입니다. 그것의 목적은 단순히 상대를 제압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계도 나아가 계몽의 수단인 거죠. 정연 씨, 모르시겠어요? 뺨을 맞으면 눈앞에 빛이 번쩍하는 빛이 바로 계몽의 빛이라는 걸! 라이트 오브 엔라이트먼트Light of Enlightenment!
--- p.237
〈스위밍 풀〉에서 샬럿 램플링이 했던 말 기억해요? 편집장이 20년 전에 자기를 세뇌시켰던 말이라면서 이렇게 말하잖아요. 상은 치질 같은 거라고, 모든 작가들이 언젠가는 받게 된다고요. 지돈 씨, 네 번째 치질을 축하합니다.
--- p.264
얼마 전에 만난 강보원은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요즘 심심해서 DBpia에서 금정연과 정지돈이 과거에 쓴 글을 보는데요, 아니 이 사람들이 자꾸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있더라고요. 거기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이미 다 지난 일이지만 저는 그 글을 읽으면서 이러는 거죠. 아니, 자꾸 그러지마, 그걸 왜 열어, 이 사람들아.”
글쎄, 그걸 왜 열까. 하지만 중요한 건 이 말을 하는 강보원이 웃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 p.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