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새도록 나는 라일라를 집적거렸지만, 그녀가 섹스를 원하자 정중히 거절했다. 우리 둘 다 술기운에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겐 그때 이미 섹스에 관한 규칙이 있었다. 마약이나 술로 형편없이 취했을 때는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것. 게다가 나는 라일라를 섹스 상대로 여기지도 않았고, 지금도 그러려고 노력 중이다. 물론 몇 번 ‘접촉 금지 규칙’을 어기고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가능한 한 늘 무심한 척 행동하고 있다. 스스로 세운, 누구와도 연인 관계로 얽히지 않겠다는 원칙을 염두에 두면서. 엄마와 아빠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다. 언제나 엄마를 향해 고함을 내지르는 아빠. 나는 아빠처럼 될까 봐 항상 두렵다. 감정적으로 엮인 두 사람은 비참한 관계가 되기 쉽고, 그러면 서로 다 망가지고 만다. --- p.58
게임을 하겠다면 받아주지. 나는 그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윗옷 안에 있는 빨간색 레이스 브래지어의 걸쇠를 풀고는 어깨 아래로 브래지어 끈을 미끄러뜨렸다. 그런 뒤 브래지어를 벗어 그의 얼굴에 던지며 외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다른 남자들 같았으면 씩 웃거나 음란한 말을 했을 테지만, 에단은 브래지어에 달린 빨간색 리본을 가볍게 툭 건드리더니 브래지어를 의자 팔걸이에 걸쳐놓고는 말했다.
“이것보다 더 섹시한 것도 있던데.”
어이가 없어 입이 떡 벌어진 나는 싱글거리는 에단을 향해 캔디 케인을 던졌다. 머리에 캔디 케인을 맞은 에단은 씩 웃더니 바닥에 떨어진 사탕을 집어 들고 껍질을 벗겨 입에 넣었다.
“젠장, 너무 맛있잖아.”
에단이 혀로 캔디 케인을 빨며 미소 지었다. 그날, 내가 에단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달았다. 그가 나한테 짓궂은 장난을 쳐서도 아니었고, 캔디 케인을 줘서도 아니었다. 내 허벅지에 키스하다가 거기서 멈췄기 때문이다. --- p.162
“라일라, 뭘 먹은 거야? 이름을 기억할 수 있어?”
“항상 먹는 거야.”
라일라가 눈을 깜빡이며 불분명하게 말한다.
“내 서랍에 들어 있는 것.”
젠장, 젠장, 젠장.
“그래서 그게 뭔데?”
“그게…… 너도 알 거야. 항상 깨어 있게 만들어주는 약인데…… 맙소사, 에단, 기억이 안 나. 약 이름을 기억할 수가 없어. 이름이…… 아주아주…… 긴데…….”
나는 주변의 땅과 덤불을 흘긋 본다.
“토했어?”
“아니……. 하지만 해야 할 것 같아. 속이 정말, 정말 아파.” --- p.177-178
“에단, 농담하지 마. 너는 지금도 너무 친절한데 난 완전히 엉망진창이잖아.”
나는 손을 뻗어 라일라의 뺨 위로 흘러내린 눈물을 손끝으로 부드럽게 닦아준다.
“누구나 실수를 해. 다만 대개는 그런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고 다시 변화하려고 애를 써. 그러다가 죽을 쑤기도 하지만.”
나는 한 걸음 더 다가가 라일라의 팔에 손을 올린다.
“너는 지금 그 두 가지 일을, 실수와 변화를 다 겪은 거야. 그러니까 엄청나게 강해질 거야, 라일라. 네가 그 사실을 알면 좋겠어. 너는 강하고 근사하고 아름다워. 이런 불쾌한 바의 화장실 바닥에 앉아 있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이야. 라일라, 너는 근사한 삶을 살 자격이 있어.” --- p.342-343p
“왜 그래?”
라일라가 내 시선을 의식하며 묻는다. 그녀는 여전히 두 다리로 내 몸을 단단히 감싸고, 두 팔로 내 목을 안고 있다.
“뭐가…… 잘못됐어?”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다. 너에게 너무 많은 감정을 느끼고 있어, 라일라. 도저히 안 되겠어. 너한테 완전히 사로잡혀서 이대로 계속 가다간 언젠가 서로를 미워하게 될 거야. 내가 너를 망가뜨리겠지. 내가 너를, 우리를 파멸시키겠지. 모든 걸 망쳐버리겠지.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대신 라일라에게 키스한다. 둘 다 숨이 막힐 정도로 열렬하고 강렬하게. 우리는 서로의 느낌에 압도당한다. 나는 처음 만났던 날부터 쌓아왔던 그 모든 기운을 담아 라일라에게 키스하며 그녀의 몸을 꼭 끌어안는다. 나는 모든 통제력을 놓아버린다.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가 녹아들면서 오로지 이 순간만 존재한다.
--- p.3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