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 5년 차. 한 권의 책을 출간한 이후 작가라는 명함을 얻기 전까지 나는 ‘가정주부’ 또는 ‘누구의 부인’ 이외에 어떤 역할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내 존재가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자존감의 하락은 코로나 상황과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치다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랬다더라, 하더라 하는 타인의 말에 휘둘리기 일쑤였고, 코로나 시대에도 예외 없이 나가야 하는 월세 백만 원은 매달 숨통을 조여왔다.
--- p.25, 「프롤로그」 중에서
성지 순례를 떠나기로 마음먹으면서 2015년의 내가 떠올라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팔자에도 없던 유럽에서의 삶을 선택하고 당장 다음 달에 출발하는 프랑스행 비행기 표를 예매했던 날것의 나. 20킬로그램 캐리어 하나가 내 짐의 전부였고, 그길로 3년간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유럽행도, 성지 순례길도 삶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 나는 일단 후회하더라도 저지르고 보는 쪽을 선택했다. 우물쭈물 고민하는 사이에 표를 사고 짐을 쌌다.
--- p.31, 「day1 성지 순례의 시작점, 루카로 향하다」 중에서
내가 제시한 해결책은 옷을 벗어 던질 수는 없으니 팬티를 벗어 던지라는 것이었다. 고백하건대, 우리는 순례의 셋째 날부터 끝날 때까지 팬티를 입지 않고 순례길을 걸었다. 속옷에서 자유로워지자 짐 무게가 1킬로그램 이상 줄어든 것 같은 홀가분함과 더불어 진정한 자유인이 된 것만 같았다.
--- p.45, 「day2 과유불급의 진리」 중에서
걷는 행위는, 아니 몸은 이토록 정직했다. 아픈데 건강한 척, 슬픈데 기쁜 척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연습을 통해서 깨닫고, 단련되고, 결국 성실함의 열매를 맺는다. 마음을 보살피는 것만큼 몸을 보살피는 일도 중요했다. 길어지는 코로나 상황으로 잔뜩 웅크려 있던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우기에, 걷기는 가장 어려우면서도 간단했고, 탁월한 선택이었다.
--- p.59, 「day3 오르막길의 끝엔 결국 내리막길이 있다」 중에서
“스베아, 앞으로 나아갈 길에 필요한 정보를 미리 전해줄게. 행운을 빌어.”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즐기는 편이야. 그게 내가 이 길을 떠나온 이유지. 고맙지만 길에 대해서는 미리 알려주지 않아도 돼.”
--- p.83, 「day4 물에서 해방」 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에서 ‘좋은 술은 여행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술은 여행하지 않으니 그것을 상징하는 장소로 우리가 떠나왔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햇살, 바람 그리고 풍경이 있었다. 토스카나의 태양이 탑의 도시를 붉게 물들일 무렵이야말로 순례자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호사스러운 시간이 아닐까. 물론 옆에 있는 좋은 사람과 좋은 와인을 마시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시간이었다.
--- p.102, 「day5 800년 된 탑 앞에서 빨래를 널고 」 중에서
매일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순리를 온몸으로 느꼈다. 그 아름다움을 늘 경탄했다. 곁에 있는 존재를 향해 매 순간 감사하면서 어쩌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내 곁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후로 종종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해가 사라졌다가 매일 다시 얼굴을 내미는 것처럼 내 엄마도 다시 해사한 얼굴로 나타나 줬으면 좋겠다고. 정말 단 한 번만이라도.
--- p.119, 「day7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어준 당신들에게
지금까지의 여행은 대부분 내가 기록한 사진 프레임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았다. 걷는 여행은 달랐다. 반짝이는 순간을 지독하게 포착하려고 시도하지 않아도 그 자체가 강렬한 기록이자 기억이 되었다. 걸으면서 맡았던 비 릿한 흙냄새, 구름이 걸린 나무 한 그루, 안개 속에서 느꼈던 남편에 대한 고마운 감정들이 아직 유효한 것을 보면 걷기는 선명한 기록이자 마음을 훨씬 풍요롭게 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 p.156, 「day9 기록으로서의 걷기」 중에서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눈물 흘릴 수 있는 나 자신을 잃지 말 것. 1년 후, 10년 후 이 길이 그때의 내가 그리워질 때 언제고 꺼내 볼 수 있도록 지금의 감정을 온전히 바라볼 것. 마지막으로 배낭이 주는 압도적인 무게감을 기꺼이 감내하며 걸을 것.’
--- p.207, 「day13 배낭을 멘 자, 기꺼이 무게를 견뎌라」 중에서
온천의 도시답게 곳곳에 물이 넘쳐흐르는 분수는 마치 도시의 풍요를 상징하는 듯했고, 건축물은 웅장했다. 대리석 건물 곳곳이 부서져 있고 깨끗하게 광이 나지는 않았지만, 길거리에 널린 것이 예술 작품이라는 말이 맞아떨어지는 마을 같았다. 마을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곳곳에 보이는 로마 문자와 바티칸 문장들이 로마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 p.227, 「day15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중에서
프레임 안에서 우리의 모습은 완벽했고, 마냥 행복해 보였을 것이다. 타인을 의식한 행복이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힘주어 웃다가도 나는 자주 울었다. 왕, 하고 터뜨리지도 못할 울음을 꺽꺽, 서럽게 삼켰다. 소리 내 우는 연습을 해본 적이 있었지만, 내 슬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어 속절없이 콧물만 흘렀다. 가슴 속 응어리를 토해내듯이 소리 내 울고, 배꼽이 빠져라 큰 소리로 웃고 싶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진짜 현실 세상에서.
--- p.240, 「day16 잠깐의 고난에 함부로 초라해지지 말 것」 중에서
길 위에 서면 누구나 지금까지 살아온 길과 앞으로 살아갈 길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네 인생과 닮았기 때문에 그리운 것일까. 나는 걷고 있는 순간에도 벌써 ‘까미노 블루’와 같은 ‘비아 프란치제나 블루’ 를 앓고 있었다.
--- p.243, 「day17 중세에서 고대로 역행」 중에서
‘책임감’일까 ‘의무감’일까 어쩌면 둘 다일 것이다. 이 무렵 비아 프란치제나를 걸은 사람에서 그치지 않고 이 길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상을 벗어나 온전히 걷는 행위에 집중하며 그 과정을 ‘쓰는’ 날들은 단순하면서도 무한히 깊고 넓은 심연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 같았다. 몸은 힘들어 쪼그라들어도 사색과 깨달음을 통해 마음이 펴지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 p.257, 「day18 글을 쓰고픈 이유」 중에서
말로 하는 어떤 위로도 내가 사랑하는 존재의 부재를 완전히 치유해주지는 못한다. 가끔 더 깊이 파고들어 생채기를 내기 일쑤다. 이 길을 걸어본 나는 이제 안다. 시간이 흘러도 쉬이 상처가 아물지 않을 때는 길이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내가 받은 위로가 아버지에게도 가닿기를 간절히 바랐다.
--- p.277, 「day20 로마를 만나다」 중에서
로마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나는 다시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사람처럼 부유했다. 마치 떠나야만 하는 삶 같았다. 늘 불안했지만 멈춰있다고 해서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떠도는 삶 속에서 우리는 매일 성장했고 자신을 객관화해 볼 수 있었다. 내일도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걷기로 했다. 부유하는 삶이 이끄는 곳으로 떠밀려 가볼 생각이다.
--- p.294,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