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울러 세월호 참사를 직접적으로 다룬 정찬의 「새들의 길」이 보여준 문학적 시도 또한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새들의 길」은 애도를 멈추지 말고 계속하라, 고통스럽더라도 기억하라, 상상력과 글쓰기로 애도하라는 원칙을 한꺼번에 아우르는 작품이다. 상세하고 생생한 현장 묘사를 통해 마치 한 편의 르포 기사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하지만, 「새들의 길」이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기본적인 방식은 ‘북극의 겨울 하늘에 나타나는 환월’이나 넓은 북극해를 거침없이 헤엄쳐 다니는 귀신고래에 관한 자유로운 상상에 기대어있다. 슬픔이 침몰되어 있는 어둠의 바다에서 고래의 반짝이는 은빛 지느러미를 상상하여 어둠을 몰아내고, 고래의 지느러미를 새의 날개로 변하게 하여 실종된 아들을 수면 위로 부상시키고, 이제 죽은 아들은 하늘의 별에 이르는 먼 여행을 시작하였노라 상상한다. 현장의 생생함을 충실히 스케치하면서도 환상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희생자를 애도하는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에 부치는 가장 슬프고도 희망적인 위로를 선사하는 소설적 진혼곡으로 기록될 것이다.
장강명의 단편 「알바생 자르기」(『세계의 문학』, 2015 여름)는 알바생 한 명을 해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불안정한 고용·노동 환경의 안팎을 예리하게 파고든 작품이다. ‘알바생 자르기’라는 직설적인 제목이 드러내듯 시작부터 끝까지 소설의 모든 내용이 임시직 직원의 해고를 검토, 결정,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에 집중된다. 군더더기 없이 펼쳐지는 서술로 인해 마치 한 편의 잘 정리된 사건 보고서 같은 느낌을 준다. 게다가 독일계 회사의 한국 지사라는 특수한 조직 내부의 서열과 인간관계에 대한 상세한 언급, 임시직 직원의 권리나 처우에 관한 상당한 수준의 배경지식이 덧붙여지면서 노동·고용 환경에 관한 보고서 같은 느낌은 더욱 강화된다. 작가가 매우 성실히 공부하고 쓴 소설, 그래서 생생한 현장감을 확보한 작품이다.
당분간 최은영 소설의 여성주의적 분위기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대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모순적인 상황에 대한 감정을 예민하게 포착하는 특유의 방식이 유지되고 발전된다면, 그래서 인간을 둘러싼 모순과의 대결 구도에 초점을 맞춘다면 여성주의에 반감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여성주의를 구현할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덧붙여 작가의 창작 활동이 소설집 두 권 분량으로 이어지는 동안 엄마와 딸이 자매와 여고 동창을 거쳐 동성애 커플까지 다루면서 외연을 넓혀가는 모습도 주목해야 한다. 물론 「아치디에서」 같은 작품에서 남성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시도되고 있으므로 앞으로의 방향이 동성애 문제로 집중한다고 보기보다는 엄마와 딸에서 출발한 감정의 포착이라는 특징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보편적 관계를 향한 지향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하다.
여자는 온몸의 기운을 모아 목소리를 짜낸다. 그때, 굳게 닫혔던 여자의 목이 조금씩 열리면서 토막토막 끊어진 소리가 나온다.
“준…호야… 이…사… 간다…”(「이사 간다」)
연수는 천천히 역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좀처럼 눈은 그치지 않고, 눈길을 더 걸어야 할 모양이었다.(「눈길을 걷는다」)
20분 후 열차는 정상 운행을 재개하고, 열차 운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사과방송을 하고 사과문을 붙였지만 이번에도 사람은 뒷전이었다.
누구나 다 그런 현실을 알고 있었다.(「누구나 다 안다」)
김성달 작가의 소설은 현실을 담담히 담아내는 데 집중한다. 섣불리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의 사연을 기록하고, 그 상처의 깊이를 보여주기에 전력을 다할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담담함이 오히려 독자들의 마음을 서서히 끓어오르게 하고, 오랫동안 벗어나기 어려운 묵직한 울림을 전해준다. 비록 여전히 질퍽하고 미끄러운 눈길이 당분간 펼쳐져 있더라도 그들은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독자들은 인간적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현실에 여전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음을 소설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될 때, 그러한 어둠을 잠시 잊고 있거나 혹은 외면하고 있던 독자들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무엇보다 아직 애도가 끝나지 않았음을, 아직 끝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게 된다. 결코 쉽지 않은 소설이다.
이처럼 『오래된 정원』은 치밀한 디테일을 이야기의 기저에 깔아놓고 시작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교도소 출감 전후 주인공 현우의 행동과 내면에 관한 서술은 방북과 망명 후 수감 생활을 경험했던 작가 황석영의 자전적 체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빛이 차단된 독방의 구조, 두 팔을 다 펴지 못할 정도의 협소한 공간, 감방 내부에 설치되어 악취가 풍기는 변기 등 교도소 내부의 시설이나 물품에 대한 묘사는 물론 배식시간, 운동시간 등 하루 일과에 대한 상세한 언급, 심지어 고양이나 비둘기 따위를 길들이는 수감자들의 모습까지 자세하게 다룬 15장은 풍성한 디테일의 외양을 자랑한다. 서른 번쯤 했었다는 단식투쟁 과정을 그리고 있는 18장은 또 어떤가. 단식 중 옆에서 들리는 배식 소리와 풍겨오는 음식 냄새에 비굴하면서도 본능적인 허기를 느끼고, 호스로 멀건 죽을 위장까지 집어넣는 강제급식 때 ‘강간을 당하는 것 같은 굴욕감과 수치감’을 느끼며, 며칠간 지속된 단식 탓에 환영을 보게 되는 등 다채로운 오감의 자극과 의식·무의식을 넘나드는 종횡의 서술에서 디테일의 깊이를 맛본다.
『아몬드』는 청소년을 주요 독자층으로 하여 큰 인기를 끈 소설답게 학교 폭력 문제, 왕따 문제 등 학교 내의 상황을 잘 다루고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라는 오래된 주제에 관해서 참신한 소재로 풀어내고 있어 청소년들의 마음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특히 개성적인 여러 명의 작중 인물을 등장시켜 그들의 꿈과 방황을 그린 성장의 플롯을 쉬우면서도 인상적인 스케치로 풀어냈기에 청소년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이 청소년 독자에 못지않게 성인 독자들에게도 관심을 받은 것은 청소년 인물의 이야기를 넘어서 공감, 인간관계, 소통 등 우리 사회의 주요 관심사에 관해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는 비대면 상황의 확대로 인해 타인과의 소통에서 적지 않은 피로감을 느끼는 동시에 감정의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고 있다. 원치 않게 고독과 고립의 상황에 놓이게 되는 요즈음 시절에 공감과 소통의 가치는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공감 능력이 없는 소년이 진정한 공감을 통해 인간관계를 회복해 가는 내용을 다룬 이 작품은 코로나로 인한 심리적 피로에 시달린 사람들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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