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은 자꾸 질문을 하게 한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것을 새롭게 검토하도록 만든다. 내 생각이 잘못될 수도 있겠다는 반성과 함께, 타인도 옳을 수 있겠다는 마음 자세로 나아가게 한다. 이것은 자신의 ‘새로운 존재 가능성’을 찾는 일이기 때문에, ‘절대’ 진리를 전해야 하는 그리스도인과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이 그림책을 봐야 하는 이유는 뭘까? 예술은 다양한 사상과 종교, 가치관, 그리고 삶의 생생한 모습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 실제 인생보다 더 ‘심오한 유사성’을 지닌다. 그래서 예술은 그리스도인이 사랑해야 할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 다. 그림책도 그렇다.
--- p.5, 「들어가는 말」 중에서
그리스도인은 ‘사랑하는 자’이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 역시 잊으면 안 된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하라.’(레위기 19:18) 하셨으니까 말이다. 착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그냥 참는 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나 역시 사랑과 존중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그리스도인들을 대놓고 미워하면서 조롱하고 모욕하고 빼앗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해야 하니까 무작정 참아야 할까? 참된 인내는 선한 이유를 위해 견디는 것이다. 악은 대항하는 것이지, 인내하는 것이 아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 게 사랑이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그들을 끝까지 사랑해야 한다.
--- p.17, 「Ⅰ. 나를 돌아봅니다.」 중에서
강은 완벽하지 않지만 온전하다. 누군가 강물이 더럽다고 욕해도 유유히 흐를 것이다. 누군가 강물이 똑바로 흐르지 않는다고 가르치려 들어도 부끄러움을 휘돌아 흐를 것이다. 온전함은 인간의 힘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의 수많은 빈틈을 하나님께서 더 큰 사랑으로 메꿔주셔야 가능하다. 자기모순이 있기에 크리스천은 예수님을 갈망한다. 언젠가 도달할, 모든 걸 다 넉넉히 받아주시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싶은 것이다.
--- p.69, 「Ⅱ. 오늘도 살아냅니다」 중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듯이 사랑에 대해서도 그렇다.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으며, 사랑을 전수하는 것은 하나님께 기댈 수밖에 없다. 자녀들이 나보다 훨씬 깊고 넓게 사랑했으면 한다. 세상이 감당 못 할 사랑, 연약한 존재와 함께하는 사랑, 변함없이 꾸준한 사랑, 예쁘고 발랄하고 상냥한 사랑, 모든 벽을 뛰어넘는 사랑, 목숨도 아끼지 않는 사랑. 그저 사랑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믿어주고 응원해주고 싶다.
--- p.147, 「Ⅲ. 사랑을 배웁니다」 중에서
삶은 끊임없이 크고 작은 죽음을 요청한다. 내 생존을 위해서 최소한만 먹고자 하는 것은 자연과의 공생을 위함이다. 공동체에서 함께 먹는 것은 숭고한 죽음 앞에 같이 고개 숙이는 일이다. 함께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여 영생으로 나아감이다. 그렇기에 또한 축제의 장이 된다. 사랑하는 존재와 하나가 되는 것은 기쁨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 되는 일은 예수님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시는, 예수님의 죽음을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 p.173, 「Ⅳ. 우리를 돌아봅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