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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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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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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44g | 120*210*20mm
ISBN13 9788932923567
ISBN10 8932923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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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감각은 우리 안에 있지 않다. 그 감각은 밖에서부터, 자라나는 아이들, 떠나가는 이웃들, 늙어 가고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로부터 온다. 운전 연수 학원 혹은 텔레비전 수리점이 새로이 들어선 자리에 있던 문 닫은 빵집들로부터. 이제는 프랑 프리라는 상호 대신 리데르 프라이스라고 불리는 슈퍼마켓의 구석 자리로 옮겨 간 치즈 매장으로부터.
--- p.18~19

함께 서 있는 어머니와 청소년 아들들. 차분하고 동작이 신중하며 웃음을 참고 있음. 그들끼리 나누는 대화를 듣기란 불가능함. 장 본 물건들은 무빙 벨트 위에 정연하게 놓여 있다. 예쁜 공책들, 슈비뇽 마크가 찍힌 학용품들, 기본적인 물품들로, 아마도 전문 매장에서 구매하는 모양인지 채소나 고기는 안 보임. 〈시선을 끌〉 필요가 없고 남의 눈에 띄지 않음 그 자체에서 자신의 힘을 끌어내는 부르주아 가족.
--- p.20~21

오늘 몇 분 동안, 하나같이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마주치는 모든 이를 보려고 애써 봤다. 그 인물들을 꼼꼼히 관찰함으로써, 마치 내가 그들을 만지기라도 한 듯, 갑작스레 그들의 삶이 내게 무척 가까워진 것 같았다. 만약 내가 그런 실험을 쭉 밀고 나간다면, 세계와 나 자신을 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길 텐데. 어쩌면 더는 자아라는 게 남지 않을 텐데.
--- p.23

어릿광대의 말소리만 들리는데, 그의 목소리는 반쯤 빈 일요일의 역에 울려 퍼진다. 그건 바닥에서 몸을 뒤트는 거대한 벌레. 그가 갑자기 몸을 펴더니 가짜 총을 꺼내며 사람들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한다.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슬픈지 혹은 재미있는지, 얘기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 p.31~32

해야 할 유일한 일은 프랑스인과 유럽인 전부가 광장에 모여서 각자의 정부에 갈등 해결을 촉구하는 것이리라. 만약 그렇게 못 한다면 그것은, 이 전쟁과 사라예보의 시장에서 죽은 아이들이 우리에게는 복권, 텔레비전에서 밤에 틀어 주는 영화보다 덜 중요하고, 그들이 우리에게는 고작 비극적 배경음악일 뿐이어서다. 몇몇 지식인들의 주장, 〈수치가 우리 모두를 조여 온다〉. 그들이 틀린 것이, 먼 곳의 현실은 수치심을 불러오지 않는다.
--- p.35~36

바스티유역 통로 바닥에 분필로 써놓은 거대한 글자들, 먹을 게 없어요. 조금 더 나아가면 같은 방식으로 써놓은, 고맙습니다. 또 조금 더 나아가면, 그 글을 썼던 남자가 통로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고 있고, 그의 내민 손끝에 놓인 동냥 컵. 사람들의 물결이 그 남자 앞에서 양 갈래로 갈라진다. 나는 왼쪽 갈래였다.
--- p.40~41

하루 날 잡아, 여러 개의 전철역 벽마다 표어와 함께 나붙은 포스터들을 전부 다 기록하기. 현재의 두려움과 욕망, 상상의 실재를 정확하게 붙잡아 두기 위해서. 기억이 담아 두지 않는 ─ 혹은 담아 둘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 현재 역사의 기호들.
--- p.42

청중의 질문은 이랬다. 월급이 줄어든다, 연금이 내려간다, 내게는 이제 일자리가 없다, 르노가 최근에 일자리를 삭감했다. 마들랭은 질문자 각각에게 한결같은 답을 내놨다. 「창-업해야 합니다!」 그는 〈창-업〉이라고 발음한다. 창-업해야 합니다! 창-업! 우둔한 사람들을 상대로 말할 때 쓸 법한 말투로. 기세가 등등해서 상대방을 나무라기. (……) 한 번 더, 대중 매체는 권위 있는 목소리로 내뱉어진 말도 안 되는 제안들에 정당성을 부여해 줬다. 나는 증오심이 들끓었다(그래서 지금 이런 글을 쓴다).
--- p.77~78

요람에서 무덤까지, 삶은 갈수록 쇼핑몰과 텔레비전 사이에서 굴러간다. 논밭과 저녁의 사교 모임 혹은 선술집 사이에서 보내던 이전의 삶보다 더 이상하지도 더 어리석지도 않다.
--- p.82

R.가 글쓰기 행위에서 사랑하는 것, 그것은 작가의 삶이다. 자유, 별개의 우월한 집단에 소속된 느낌. 하루에 가까스로 한 장을 뽑아내는 끈질긴 노력조차,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할 그런 고통도 이 삶의 우월함을 보여 주는 특징이다. 작품 자체, 사람들에게 미치는 작품의 영향력은 그 중요성이 훨씬 덜하다.
--- p.102

밖의 삶은 온갖 것을 요구하나, 대부분의 예술 작품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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