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 들어간 배를
살짝 가리고
오직 남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
숨 가쁘게 살아온 세월

정갈한 밥상 위엔
한 번도 오르지 못하는
달창 숟가락

말라붙은 마음 떼어주고
다듬어주는
영원한 조연이라도 좋다
---「달창숟가락」중에서

코로나가 삼켜버린 계절
손녀의 생애 첫 입학식도
찔레꽃 향기 그윽한 봄도
흔적 없이 사라진 담장엔
할미밀망이 눈송이처럼 앉아있다

밀망 속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를 밀치며
자리를 만드는 건
어미이기에
훗날
할미밀망 사위질빵 만발하여 어우러진
눈송이 같은 꽃을 피우려고
---「할미밀망」중에서

잡초에 우거져
모양조차 없던 돌짝 밭
돌멩이를 걷어내고 주워내니
밭 한 뙈기 반듯하다

보리밥에 상추쌈
풋고추 넣은 된장찌개를 그리며
땀방울 훔칠 때마다 지은 미소가
한 폭의 그림처럼 정겹다
---「한 폭의 그림」중에서

매화꽃 향기 가득한 봄날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누르고
계단을 오르던 그 다방

알록달록한 조각보처럼
모아진 지난날이
찻잔 속에서 추억을 젓는다
향기는 여전히 짙어 오르고

엄마 얼굴이 보름달처럼 차오른다
---「다방에서」중에서

외출 시간 다 되어가는데
냉동실에서 쪼르르 흐르는 물이
나서려던 발길을 잡는다
냉동실 칸 칸마다
눈물범벅이 되어
맥없이 주저앉은 보물들

끌어안기만 하며
털어내지 못해 얻은 친구
우울증
함께 가자며 덥석 잡은 손
밤낮 깊은 잠 속으로 이끌 때

비워내고 얻은 작은 텃밭
겨자씨보다 작은 씨앗이
싹을 틔우고 열매 맺어
가슴속 빛줄기 된다
---「너도 나처럼」중에서

새벽시장 육거리를 가려고
신호등을 기다린다

산에서 내려온 새 식구가
입이 짧아 양상추를 사러 간다는
어떤 이의 말이 자꾸 귓가를 맴돈다

산골 밭 한 뙈기에 발을 붙이며
그런가 했던 그해 봄
고추 고구마 심는 대로 맛을 본다
남편과 밭두렁 오가며
촘촘하게 꼼꼼하게 친 망

장맛비에 속살 드러난 그날
단골손님은 여전히 다녀가
콩 순 먹고
발자국 콕콕 찍어놓고

<b>시인의 말</b><br/><br/> 그리운 날<br/> 콩제비꽃 앞에 앉아<br/> 속엣말 풀어내고 <br/>마음이 허기져 가슴 시려오면 <br/>접어두었던 심상을 모아 <br/>시를 썼습니다 <br/><br/>2023년 여름 <br/>해얀 김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