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디칸을 떠난 다음의 일까지 벌써 계획을 세워 놓았군? 이런 말을 해서 유감이지만 당신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아무데도 가지 못하오.'
'아이를 낳는 것 말인가요?'
테스는 창가로 가서 새장과 모이 주머니를 챙겼다.
'그거라면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우선 난 젊고 건강해요.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오늘밤 좋은 시작을 했으니까 주님의 은총만 있다면 올해 가을쯤 만삭의 몸이 되어 있겠죠.'
어깨 너머로 갈렌을 보며 임신과 출산보다 지금 그녀에게 더 중요한 문제를 상의했다.
'이 탑을 이용할 수 없다면 알렉산더의 훈련장소를 또 찾아야 해요. 그럴듯한 장소가 있을까요?'
'찾으면 있겠지.'
그는 무뚝뚝하게 내뱉고 문으로 향했다.
'내가 생각해 보겠소.'
왜 갑자기 화를 낼까? 그녀는 놀라고 당황스러워 고개를 갸웃거렸다. 창문에서 문까지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갈렌의 팽팽한 긴장과 짜증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다.-중략-
'내말을 명심해서 들으시오.'
음절마다 강세가 들어가 똑똑 부러지는 말이었다.
'이 순간부터 난 당신의 뒤나 옆, 아니면 몸 안에 있을거요. 궁궐에 도착하는 즉시 당신은 나와함께 내방, 내 침대로 직행해야 하오. 앞으로 혼자는 물론이거니와 다름 남자의 수행을 받으며 외출하는 것도 금물이오.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삼 년뿐이니, 그 일분 일초도 허비하지 않고 모조리 누리겠소.'
그리고는 휑하니 밖으로 나가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테스는 어리둥절하여 텅 빈 문가를 멀거니 응시했다. 알렉산더가 관심을 환기하듯 나직하게 울자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비둘기를 노려보았다.
'조용히 해, 지금 가잖아.'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린 후 나선형의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남편이 돌변한 이유는 불가사의했지만 이미 그에게 받았던 환희와 과거의 기억등 많은 선물을 고려하여 너그러이 넘어가기로 했다. 오늘밤을 기점으로, 무엇이 현재의 갈렌을 만들었고 그의 내면에서 어떤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렴풋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래, 이 탑에 오길 정말 잘 했다.
--- p.235-237
'고통을 참으며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예요'
'어떤 자세에 처해지면 여자는 무력해질 수 밖에 없소. 그 자세가 무엇인지 하나씩 모두 알려주리다.'
그는 손을 내리고 빙 돌아섰다.
'초초해지는군. 옷이 찢어지기 싫으면 직접 벗으시오. 알몸으로 궁에 돌아갈 순 없잖소.'
테스는 망설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오해를 풀어야한다고 본능이 속삭였지만 오해한 장본인이 아주 설명도 듣고 싶지 않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그녀가 원해 왔던 순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가 감질나게 소개해 온 이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감이 폭발직전까지 고조되었고, 그녀는 그게 어떤 맛인지 알고 싶었다. 이런 마당에 그가 짜쯩스런 말을 몇 마디 했다고 해서 이 결정적인 순간을 망쳐야 할까?
--- p.218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교도처럼 굴 생각은 없지만 공주의 감사 대상에는 나도 포함이 되는 거요? 앞으로 몇 주일 동안 불편을 감수할 사람은 바로 나잖소."
"감사하고 말고요."
어린 공주는 온 마음을 다하여 성심성의껏 힘주어 또박또박 말했다.
"그리고 왕자님에게 보답할게요, 약속해요."
"보답? 어떻게?"
"뭐든지 말씀만 하세요. 아무 거나 좋아요."
진심 어린 약속이었다. 어린아이 특유의 순수한 열렬함이 그의 손에 잡힐 듯 강하게 휘몰아쳤다.
"무조건적으로?"
갈렌의 뇌리에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흥분을 팽팽하게 억누른 표정으로 의상실을 가로질러가 테스를 의자에서 일으켰다.
"먼 훗날 공주에게 보답을 요구할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지금은 아니오. 그 비밀 통로가 어디에 있지?"
"저 벽걸이 촛대를 왼쪽으로 돌리면 나와요."
갈렌이 지시에 따르자 나무벽이 스르르 열렸다.
"이제 공주는 침실로 돌아가시오. 난 옷을 입은 다음 사냥개 사육장 우두머리에게 가서 아폴로와 다프네를 데리고 궐 밖의 숲에서 기다리라고 하겠소."
"왕자님 지시가 통할까요?"
"황금은 설득력이 뛰어난 만국 공통어요."
"뇌물을 주겠다구요?"
"이로써 공주의 빛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셈이지."
그는 테스에게 청동 촛대를 건네고 어두컴컴한 비밀 통로 쪽을 가리켰다.
"적당한 때가 되면 공주의 빚이 얼마나 큰지 상기하길 바라오."
"결코 잊지 않겠어요."
테스는 통로로 들어서다 말고 어깨 너머를 돌아보았다.
"아폴로와 다프네는 안전한 거죠? 약속하죠?"
"약속하오."
다음 순간 그녀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묘한 미소를 지은 채 비밀 통로의 문을 닫았다.
마침내 운명이 그의 편으로 기우는 듯한데 이 기회를 놓친다면 천하의 얼간이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끈질긴 인내심과 확고한 결의, 일정한 계획이 필요하겠지만 세디칸의 통일이 가장 중요하다.
갈렌은 침실로 돌아갔다. 옷을 입고 사이드에게 당장 귀국길에 오르자고 명령하리라.
아, 즉각적인 출발은 불가능하겠군.
우선 사차에게 가야 하니까. 그의 취기부터 깨워 놓고 길고 긴 대화를 나누리라.
--- p.36-38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교도처럼 굴 생각은 없지만 공주의 감사 대상에는 나도 포함이 되는 거요? 앞으로 몇 주일 동안 불편을 감수할 사람은 바로 나잖소."
"감사하고 말고요."
어린 공주는 온 마음을 다하여 성심성의껏 힘주어 또박또박 말했다.
"그리고 왕자님에게 보답할게요, 약속해요."
"보답? 어떻게?"
"뭐든지 말씀만 하세요. 아무 거나 좋아요."
진심 어린 약속이었다. 어린아이 특유의 순수한 열렬함이 그의 손에 잡힐 듯 강하게 휘몰아쳤다.
"무조건적으로?"
갈렌의 뇌리에 어떤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흥분을 팽팽하게 억누른 표정으로 의상실을 가로질러가 테스를 의자에서 일으켰다.
"먼 훗날 공주에게 보답을 요구할지도 모르겠소. 하지만 지금은 아니오. 그 비밀 통로가 어디에 있지?"
"저 벽걸이 촛대를 왼쪽으로 돌리면 나와요."
갈렌이 지시에 따르자 나무벽이 스르르 열렸다.
"이제 공주는 침실로 돌아가시오. 난 옷을 입은 다음 사냥개 사육장 우두머리에게 가서 아폴로와 다프네를 데리고 궐 밖의 숲에서 기다리라고 하겠소."
"왕자님 지시가 통할까요?"
"황금은 설득력이 뛰어난 만국 공통어요."
"뇌물을 주겠다구요?"
"이로써 공주의 빛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셈이지."
그는 테스에게 청동 촛대를 건네고 어두컴컴한 비밀 통로 쪽을 가리켰다.
"적당한 때가 되면 공주의 빚이 얼마나 큰지 상기하길 바라오."
"결코 잊지 않겠어요."
테스는 통로로 들어서다 말고 어깨 너머를 돌아보았다.
"아폴로와 다프네는 안전한 거죠? 약속하죠?"
"약속하오."
다음 순간 그녀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묘한 미소를 지은 채 비밀 통로의 문을 닫았다.
마침내 운명이 그의 편으로 기우는 듯한데 이 기회를 놓친다면 천하의 얼간이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끈질긴 인내심과 확고한 결의, 일정한 계획이 필요하겠지만 세디칸의 통일이 가장 중요하다.
갈렌은 침실로 돌아갔다. 옷을 입고 사이드에게 당장 귀국길에 오르자고 명령하리라.
아, 즉각적인 출발은 불가능하겠군.
우선 사차에게 가야 하니까. 그의 취기부터 깨워 놓고 길고 긴 대화를 나누리라.
--- p.3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