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에서
저는 우리 교실에서 하는 토론이 ‘따뜻한 토론’이길 바랍니다.
‘따뜻한 토론’이란 첫째로, 상대를 존중하는 토론입니다. 생각이 다름을 받아들이고 상대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성세대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까닭은 토론 경험이 적어서 그럴 겁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에게 토론 경험을 많이 주어야 합니다. 내 주장을 힘주어 펼치지만 상대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상대 주장을 열린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교실에서 이런 토론이 잘 일어날 수 있으려면 서로 보듬는 학급문화가 바탕이기는 합니다.
두 번째로, ‘따뜻한 토론’이란 삶과 하나 되는 토론입니다. ‘말만 잘한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말을 흔히 하는데, 우리 교실 토론에서는 버려야 할 모습입니다. 토론하다 보면 말 잘하는 학생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말 잘하는 학생들이 모두 자기가 한 말처럼 행동하는 건 아닙니다. 말과 행동이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죠. 이게 그 학생만의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어른들이 토론에서 논리, 승리만을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토론은 대회가 아닌 삶 속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또 토론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세 번째로 ‘따뜻한 토론’이란 함께 성장하는 토론입니다. 교실에서 하는 토론이라면 더 그랬으면 합니다. 교실은 공동체입니다. 모자라면 함께 채우고, 조금 더디면 손잡고 함께 걸으며 함께 커 가는 교실 공동체이면 좋겠습니다. 교실에는 토론을 좋아하는 학생들과 학습 능력이나 자신감이 부족하여 토론을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함께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 성장하며 토론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자료를 함께 준비하고, 서로 격려하며, 서로에게 손뼉 치며 힘을 주길 바랍니다. 그래야지 토론이 교실에서 제대로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1강 ‘토론과 토의’에서
토론은 학급 운영에서 갈등을 풀고 생각을 깊게 하는 구실을 한다. 많은 교사들이 “선생님, 청소나 급식 같은 학급운영으로 토론하려니 걱정이 돼요. 토론에서 반대가 이기면 하지 말아야 하잖아요.” 하고 걱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토론으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다는 오해에서 나온다. 토론은 단지 논리의 싸움으로, 토론에서 찬성이 이겼다고 찬성을 따를 것이 아니다. 토론을 잘하는 학생은 찬성이건 반대건 다 이길 수 있다. 만일 이런 주제에 대해 우리 반이 어떻게 할 것인지 정할 것이라면 토론과 별개로 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토론 . 토의’ 예
4월부터 교실에 학생들이 모자를 쓰고 오기 시작하였다. “여러분은 모자를 쓰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나요?” 하고 묻으니 의견이 나뉘었다. 그래서 논제를 ‘교실에서 모자를 쓰도 된다.’로 잡아 토론하자고 제안하였다. 토론 과정에서 교실에서 모자를 썼을 때 불편한 점이나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자기들 말로 나왔다. 더 나아가 해결 방법까지 스스로 말하였다. 이렇게 두세 번의 토론하고서 ‘우리 반은 모자 쓰는 걸 어떻게 할까요?’로 토의하니, 토론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기들이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스스로 만들었다.
1강 ‘토론의 원칙’에서
“희문아, 너 왜 학교에서 하라는 복습장을 하지 않니?”
“복습장 할 시간이 없어요.”
“왜?”
“수업 마치고 학원 가야 하고, 학원에서는 숙제를 많이 내 주거든요.”
“그래? 그래도 복습하는 버릇은 들이는 게 좋아.”
“네. 노력해 볼게요.”
선생님이 학생이 자기 의견을 내세울 기회와 시간을 주며 이야기를 나누는 위의 경우도 토론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토론은 논제에 찬성과 반대로 나눈 두 편이 서로 상대를 이기기 위해 논리로 펼치는 시합이다. 축구나 야구 같은 시합과 마찬가지로 토론에서는 서로에게 기회와 시간을 균등하게 갖는 것이 기본이다. 시합에서는 규칙이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그 규칙은 참가하는 팀에 똑같이 지켜져야 한다.
선생님 : 자, 그럼 ‘초등학생에게 시험이 필요하다’로 토론할 테니 자료를 찾아보세요.
수민 : 그럼 전 시험이 필요하다는 찬성을 준비할게요.
희문 : 저는 시험이 없어야 한다는 편이요.
선생님 : 둘에게 미안하지만 찬성과 반대 모두 준비하도록 하세요.
선생님은 수민과 희문에게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도 찬성과 반대를 모두 찾게 했다. 찬성과 반대를 모두 알아보면 논제에 대한 자기 생각을 더 부드럽고 다양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론에서 찬성과 반대는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고 어느 쪽이든 틀린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찬성과 반대를 모두 준비하고 토론할 필요가 있다. 토론은 이렇게 서로의 주장이 다르더라도 그 주장과 근거를 모두 살펴볼 가치가 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2강 ‘논제의 특징’에서
선생님 : 애들아, 다음 시간에는 너희들이 관심 있는 걸로 토론해 보자. 어떤 것으로 토론하는 게 좋을까? 논제를 만들어 볼래?
희문 : 선생님, 저는 스마트폰으로 토론하고 싶어요. 논제는 ‘스마트폰을 쓰면 어떤 점이 좋을까?’가 좋을 것 같아요. 스마트폰으로 게임만 하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수민 : 그건 찬성과 반대로 나올 것 같지 않은데.
선생님 : 그래. 수민이 말처럼 희문이가 말한 주제로는 여러 방법이 나와서 찬성과 반대로 딱 나눠지지 않겠구나.
희문이가 말한 ‘스마트폰을 쓰면 어떤 점이 좋을까?’는 토론에서 필요한 찬성과 반대의 주장이 나오지 않는다. 그보다는 현명한 스마트폰 사용 방법에 여러 방안이 나올 것이다. 이렇게 여러 해결 방안이 나오는 것은 토론이 아닌 토의 상황이다. 토론은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야 하므로 이렇게 묻는 형식이 아니라 ‘이다’, ‘아니다’ / ‘좋다’, ‘나쁘다’ /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와 같이 단정하는 말, 서술형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에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나온다. 예들 들어, ‘초등학생에게 스마트폰은 필요하다’는 찬성과 반대로 나눠 토론할 수 있다. 이렇게 논제는 찬성과 반대로 나눠지는 문장, 즉 서술형으로 나타낸다.
논제는 서술형으로 하는 것이 맞지만 의문형으로도 할 수도 있다. 의문형으로 할 때는 수렴형 질문으로 논제를 펼친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같은 확산형 질문이 아니라, “예” 또는 “아니오”로 대답이 나오도록 질문하면 된다. “초등학생에게 스마트폰은 필요한가?”로 묻는다면, “예, 필요합니다”는 찬성이고 “아니요. 필요하지 않습니다”는 반대가 된다.
5강 ‘교실토론이 잘 이루어지려면’에서
우리 반만의 형식을 만든다
4강에서 여러 대회 토론의 형식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 장에서는 대회 토론이 아닌 교실토론의 형식을 소개하는데, 토론의 형식은 다양하다. 어떤 토론의 형식이든 교사가 제대로 알고 있을 때 토론이 교실에 조금 더 빨리 자리매김할 수 있다.
토론을 교실에서 실천할 때 대회 토론 형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므로, 우리 반에 맞는 형식을 만들기를 바란다. 물론 토론의 형식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할 일도 아니다. 만일 처음부터 우리 반만의 토론 형식을 만들기 힘들다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형식을 그대로 실천하며 다듬기를 권한다. 그것도 힘들다면 기존 대회 토론 형식을 우리 반의 형식으로 그대로 해도 된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개인 의지가 중요하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학급 경영, 교과 지도 모두 교사가 어떤 판단으로 가르치느냐에 달렸다. 토론도 마찬가지다. 토론으로 학생들의 성장을 시켜보겠다는 선생님의 개인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이런 의지만 있다면 어떤 것이든 그 선생님만의 빛깔, 그 반만의 빛깔로 충분히 살려낼 수 있다.
한 가지 형식을 되풀이한다
우리 반만의 토론 형식을 정했다면, 처음에는 그 형식으로만 되풀이한다. 토론을 처음 만나는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이다. 학생들이 토론에 낯설더라도 하나의 형식을 반복하면 쉽게 받아들여 그 형식에 익숙해진다. 토론할 때마다 형식을 바꾸면 그 형식에 맞추느라 학생들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나의 형식을 계속 반복하는 또 다른 까닭은 하나의 형식으로 토론의 요소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이다. 참사랑땀반의 경우 맨 처음 학급 전체 토론을 되풀이하였다. 그러자 이 토론의 요소인 입론과 교차조사를 잘 알게 되었다. 이 형식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 정도 토론하고 난 다음, 입론과 교차조사를 활용한 1 : 1 토론을 하니 학생들이 쉽게 받아들였다.
8강 ‘독서 토론 차례’에서
우선 책을 잘 골라야 한다. 교사가 골라 학생들에게 읽어주는 책은 아이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1학년 아이들을 살 때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에 가서 함께 책을 보곤 했다. 아이들에게 자기가 고른 책을 읽도록 했는데, 많은 아이들이 책을 고르고 나서 나에게 그 책을 보여주었다. “영근샘, 이거 영근샘이 읽어준 거다요.” 하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많은 아이들이 내가 읽어준 책을 찾아서 읽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읽어준 책은 도서관에 있는 그 많은 책에서 가장 눈에 띄고, 찾아서 읽고 싶은 책이라는 것을 알았다. 학생들에게 읽어줄 책을 고를 때 더 신중해야 되겠구나 하고 느끼는 계기였다.
독서 토론을 하기 위해 책을 고른다면 책의 내용에서 찬성과 반대로 나눠지는 논제를 생각해 봐야 한다. 책에서 드러나는 가치에서 논제를 삼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까마귀 소년은 왕따 문제, 지각대장 존은 학급 규칙으로 지각에 벌칙을 주는 문제 또는 학생의 거짓말 문제, 강아지 똥은 희생 또는 존재 가치의 문제 들을 논제로 정할 수 있다.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을 논제로 삼아 토론할 수도 있다.
독서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책 내용을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주거나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교실에는 서른 안팎의 학생들이 있으니 독서토론을 위해 책 읽어주기를 권한다. 줄책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려서 날마다 10~20분씩 읽어도 한 달은 잡아야 한다. 그래서 독서 토론을 하기에는 그림책이 좋다. 그림책은 한 번에 읽을 수 있어 토론으로 넘어가기가 수월할 뿐더러 줄책 못지않게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는 책들도 많다.
막상 책을 읽다 보면 논제를 잡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잦다. 그럴 때는 너무 토론에 억매이지 말고 좋은 책을 자주 읽는다는 마음이 중요하다. 좋은 책이라면 토론하지 않고 읽어만 주어도 좋기 때문이다.
--- 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