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메가 프로젝트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른 목표를 향해 개발을 추진했지만, 문제의 원인은 이상하리만큼 유사하다는 특징을 지녔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해야 할 것은 부동산 디벨로퍼가 없는 개발 사업이라는 점이다. 이런 프로젝트에는 사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하며 책임지고 진행하는 디벨로퍼가 존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메가 프로젝트 사업에는 여러 기업이 서로 발을 담근 ‘프로젝트 금융 투자 회사(Project Finance Vehicle, PFV)’라는, 책임감 없는 공룡만이 핵심에 존재한다. 만일 이 공룡의 머리가 한 개뿐이었다면 사업을 비교적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PFV라는 공룡은 몸통 하나에 머리만 여러 개인데 심한 경우에는 10개도 넘는다. 각각의 머리에서 보내오는 서로 다른 신호로 인해 공룡은 신호를 해석하고 실제 행동에 옮기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이로 인해 프로젝트가 장기화되는 것이다. 또한 공룡의 머리가 각기 다른 이해 관계를 가진 경우에는 전체 개발 사업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결국 PFV의 조직 체계 부조리와 무책임성은 프로젝트 개발 기간 장기화와 개발 비용의 증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과연 31조짜리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용산역세권개발이라는 개발 회사의 CEO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CEO의 이름조차 모를 것이다. 이는 디벨로퍼(AMC)의 CEO라는 자리 자체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고, 아니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수십조 규모의 개발 사업을 진행하는 회사의 CEO가 만약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던 사람을 전관예우 차원에서 앉힌 사람이고, 2~3년의 임기 후에는 다시 원래 있던 회사로 돌아간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그는 개발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얼마나 열정을 갖고 노력할 것인가. 부동산 개발은 굉장히 위험한 사업이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크게 성공하면 좋지만, 크게 실패할 위험도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만약 프로젝트가 조금이라도 잘못된다면 3년 후 자신의 본래 회사로 돌아가는 데 방해가 된다고 여기지 않을까.
(중략) 예를 들어 AMC가 A, B, C사 3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A사는 금융업, B사는 건설업, C사는 보험업이고, 그중 B사의 임원이 AMC의 대표로 왔다고 가정하자. 건설 업체를 선정해야 하는데, B사의 경쟁 회사인 D사가 건설 비용을 반으로 낮추는 새로운 신공법을 개발했을 경우, 과연 B사의 전 임원이자 현 AMC 사장이 B사 대신 D사를 건설 업체로 선정할 수 있을까? AMC의 프로젝트 비용이 절감되는 것은 알지만, 자신의 임기 만료 시점인 3년 후에 다시 돌아갈 B사의 이익에 거슬리는 행위를 할 수 있을까? (중략) 결론적으로 31조 규모의 용산국제업무지구를 비롯한 초대형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서 디벨로퍼 조직은 사실 상이한 업종들이 뭉쳐서 만든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결국 디벨로퍼로서 프로젝트의 주체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프로젝트 개발 비용을 감리, 감독, 통제하는 컨트롤 타워의 역할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에는 명문화된 보상 기준이 없다. 보상 기준과 관련하여 사업을 진행하는 서울시와 코레일, 드림허브의 행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서부이촌동을 편입시킨 서울시의 입장은 한결같은데, 서울시는 인허가자의 입장일 뿐 토지 보상은 사업 시행사가 결정할 문제여서 주민 동의는 드림허브가 알아서 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드림허브측은 사업 진행을 위해 주민 동의가 필요했고, 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 주민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정해지지 않은 보상 금액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해당 지역 주민들과의 인터뷰 결과에 의하면, 드림허브(혹은 드림허브에서 고용한 조직)는 내용상 30억 원을 보상하겠다는 허위 광고로 주민 동의율을 높이기 위해 주민들을 현혹시켰다. 대림아파트 108.9제곱미터(33평)형의 현재 가치가 8억 9,000만 원인 데 비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에 동의해 통합 개발에 참여한다면 보상금과 민간 개발 혜택 그리고 입주권 프리미엄을 다 합쳐 무려 30억 6,000만 원의 이익을 본다고 광고한 것이다. 드림허브의 의도된 속임수인지 무리수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광고 문구가 드림허브 관계자를 통해서 아파트 주민들에게 전달된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보상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을까? 30조 원 규모의 대형 부동산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데 보상 기준이 없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일인가?
제2차 뉴타운 지구의 경우 기존 13만 5,840호에서 계획 가구 수 13만 3,552호로 2,280호가 감소한 것을 보더라도, 뉴타운 사업은 중대형 아파트 중심으로 공급된 것을 알 ? 있다. 기존 거주민의 소득 수준과 신규 공급된 아파트가 중대형 위주인 점을 볼 때, 기존 거주민이 재정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서울시 2007년 자료에 의하면 뉴타운 재정착률은 17.1퍼센트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저소득층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그 자리가 새로운 중산층 타운으로 바뀌는 것이 재개발 사업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지역 격차 해소’라는 정책 목표는 기존 주민들의 소득 향상을 통해서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 주민들을 중산층으로 바꿔치기함으로써 격차 해소를 줄이는 것이다. 먼 미래에 뉴타운을 통해 지역 격차가 해소되었다고 한다면, 소득이라는 숫자상으로는 격차가 해소되었을지 몰라도, 저소득층이 대규모로 쫓겨났다는 진실을 마주하는 한 지역 격차 해소가 허구였음을 실감할 것이다.
지역 격차 해소가 허구라면 당연히 삶의 질 향상도 불가능하다. 주변 환경 정비를 통한 삶의 질 개선은 기존 거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킴으로써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기존 거주민의 터전을 중산층 커뮤니티로 탈바꿈시키는 삶의 질 개선은 중산층 유입을 위한 방편으로써 ‘삶의 질 개선’이라는 정책을 쓴 것일 뿐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