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할머니가 갑자기 내 곁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할머니는 언제까지나 내 곁에서 할머니의 모습으로 살고, 나는 언제까지는 할머니 곁에서 지금의 내 모습으로 살 줄 알았다. 그 외의 다른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은 날들은 언젠가는 끝나게 된다. 그것은 실제 상황이다.
--- p.9
내 무릎 위에는 따스한 유골함이 보자기에 싸인 채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나는 그때 확실히 알았다. 할머니는 옷을 벗듯, 몸을 빠져나가서 떠났다는 것을. 그러니까 할머니는 굴러가지도, 건너가지도, 돌아가지도, 없어지지도, 스며들지도 않고, 떠났다. 다시 오지 못할 아주 먼 곳으로.
--- pp.28~29
할머니는 울 때 거의 소리를 내지 않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아서 나는 할머니가 우는 줄 모르는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안다. 할머니가 웃어도 할머니 가슴에는 밖으로 나오지 못한 눈물이 한가득이었다는 것을.
--- p.36
머릿속에 아무 근심 걱정 없을 때만 나오는 그런 콧노래를 내가 다시 부를 수 있을까? 할머니가 없는 이 세상에서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럴 수는. (...) 할머니가 떠나고 할머니의 목소리가 떠나고, 내 콧노래도 떠났다. 영영 떠나 버렸다.
--- p.51
할머니 몸에서 산국화 냄새가 났다. 산국화 냄새 나는 팔을 휘젓던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편, 오, 달, 막, 내 할머니.
--- p.65
“할머니, 사랑해. 잘 가, 할머니. 안녕. 나중에 우리 꼬옥 다시 만나.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할머니가 살아 있을 때는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사랑해,라는 말이 끝없이 나왔다. 그리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위로 흐르는 눈물은 결코 차갑지 않았다.
--- p.1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