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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504g | 146*206*21mm
ISBN13 9791156624233
ISBN10 115662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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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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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석 봐라. 밤새 왔겠네?”
사람의 말이 부드럽고 반갑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나는 아저씨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서 있었다. 아저씨가 나와 저수지 너머 언덕을 번갈아 보더니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
“뭐, 먹을 걸 좀 줄까?”
나는 고개를 끄덕했다.
“그래, 근데 우선 어디 좀 보자.”
아저씨가 수건으로 얼굴과 목, 손을 닦아주고 담요로 어깨를 감싸주었다. 아저씨가 버너 위에 물을 올려놓고 난로를 가져오겠다며 집으로 들어간 사이 나는 저수지 너머 산등성이를 한참 바라다보았다. 거기, 어머니 무덤이 있었다. 무덤은 여기 있는데 어머니의 혼은 왜 집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히며 집에서부터 이곳까지 몰고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한참 동안 더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사이 동이 텄다. 아직 세상은 온통 흑백이었다.
--- 본문 중에서

찌가 올라오다가 순간적으로 멈추는데 이 순간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말하자면 그 순간이 먹이가 입천장에 닿기 직전 혹은 막 닿았을 때이고 그때 걸어야 한다. 그걸 정확하게 읽고 행동해야 월척을 낚을 수 있다. 꾼은 그러니까 그 상황을 동영상으로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녀석들도 지구상에서 오래전부터 온갖 수난을 극복하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쩌면 그걸 빨아들였다가는 누군가에게 낚인다는 것을 녀석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삼키는 게 어리석다고만 할 수는 없다. 인간은 걸려들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뇌물을 삼키지 않는가.
--- 본문 중에서

한여름인데도 봄이나 가을같이 선선했다. 어둠이 짙었다. 산 그림자가 진 곳은 특히 그랬다. 사방이 산으로 막혀 있어 모든 게 그 안에 고여 있는 듯했다. 어둠이 짙은 곳과 조금 덜한 곳 사이에 그림자 경계가 띠를 이루었다. 그 경계, 검푸른 물 위에 두 개의 야광찌가 개똥벌레처럼 앉아 있었다. 소리도 수면 중이었다. 세상은 하늘과 산, 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세상이 잠시 출렁, 홀연히 빛나던 연두색 케미가 물과 수초를 연초록으로 물들였다. 찌가 중력과 부력 사이에서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가라앉아 제자리를 잡았다. 나는 낚싯대에서 손을 뗐다. 긴장을 풀고 있으려니, 무연히 앉아 있기에 오히려 좋았다. 새벽이 더디게 와 주시길.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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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준의 소설에서 낮의 세계와 밤의 세계는 잘 구분되지 않는다. 좀 더 요령 있게 말하면, 낮/밤의 세계는 서로 꼬리를 물고 한데 뒤엉켜 있다. 그러니 악무한(惡無限))의 늪이다. 헛것은 어디에나 출몰한다. 환청과 악몽이 일상을 짓누른다. 피할 수 없다. 작가는 마침내 헛것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낚시터에서. 그는 수면 위로 살짝 올라온 야광찌의 미세한 움직임에 주목한다.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알리바이가 고스란히 입증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작가는 보이지 않는 것과의 더 많은 대화 혹은 힘겨운 사투를 통해 비루한 생의 의미를 되짚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서두르지 않는다는 점이니, 이것, 늦어도 한참 늦게 등단한 작가의 놀라운 내공이 아닐 수 없다. 소걸음으로 부디 천리를!
- 김남일 (소설가)
그는 경이로운 사람이었다. 이용준 선생을 만난 7년을 돌이켜보면 그는 한 인간으로서도 그렇고 작가로서도 마치 불꽃처럼 타올랐다. 독어와 영어를 가르치던 오랜 직장을 떠나 외롭고 고된 그만의 책상에 앉았다. 그는 청년기에 감흥한 독일 고전들을 번역하고, 자기 생을 밀어 넣은 소설을 썼다. 그는 지칠 대로 지친 중년이었으며, 자기 생에 맞서는 강인한 지식인의 초상을 갖고 있었다. 그가 옮긴 방대한 『독일 낭만주의의 이념』과 『독일의 질풍노도』는 물론이고 역작 『피시스케이프』은 수상한 시절을 딛고 자기 생을 밝혀낸 실존들의 경험적이고 지성적인 탐색으로서 짝패들이다. 생이여, 잔잔하여라. 자신과 더불어 처연한 생을 치러낸 두 친구의 행로를 밝혀놓고 막 책상에서 일어서는 한 작가의 아침을 나는 지금 뻐근한 마음으로 기록하고 있다.
- 전성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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