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상의 고통에 어떻게 반응하셨는지는 예수라는 역사적 실체를 통해 알 수 있다. 주님의 사랑을 회의하는 이들은 인간의 고통에 반응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친밀하고 인격적인 반응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그리스도를 다시 보아야 한다. 사실, 예수님을 제대로 알기만 하면 하나님과 고통에 대한 회의는 상당 부분 걸러지게 마련이다. --- p.30쪽
현대 사회는 고통을 원수 대하듯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 아픈지 묻지도 않고 없애버리려 합니다. 진통제는 아픔을 잠재울 수 있지만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도리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심리학도 매한가지라고 믿습니다. 죄책감을 악으로 규정하고 어떻게든 억압하거나 잘라내려 합니다. 무조건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들 하죠. 원하는 대로 살라는 겁니다. 하지만 크리스천들에게 죄책감은 무척 소중합니다. 죄책감의 원인이 되는 잘못을 바로잡도록 밀어붙일 뿐만 아니라, 용서라는 통로를 열어서 근원을 완전히 제거하도록 돕습니다. --- p.62쪽
기본적으로 등 따습고 배부른 사람은 춥고 주린 이들의 형편을 헤아리기 어렵다. 압제에 맞서 지칠 줄 모르고 투쟁했던 솔제니친마저도, 흐루쇼프 치하에서 두루 명성을 얻고 국내에서 간행되는 잡지에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실리기에 이르자, 비슷한 심리에 빠져 들어가더라고 했다. 작가는 관료주의의 화려한 본산들이 줄지어 늘어선 붉은 광장에 초청받아, 자신이 직접 보고 느꼈던 불의와 부정을 증언했다. 줄기차게 벌여온 저항에 합리적인 답변을 줄 힘을 가진 정부각료들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푹신한 팔걸이의자에서부터 청산유수처럼 매끄러운 말솜씨에 이르기까지 한 점 부족함이 없는 밝고 상쾌한 방에서 굽어본 수용소는 끔찍하기는커녕 도리어 참으로 타당해 보였다. … 자, 이 흉악한 자들을 세상에 풀어놓으라는 말인가?” --- p.105
희한하게도, 우리 시대의 운동가들은 윤리논쟁을 벌일 논리적 기반을 내팽개치면서도 그 논쟁 자체는 포기하지 않는다. 도덕적인 주장(노예를 소유하고, 여성을 성폭행하고, 아이들을 학대하고, 환경을 파괴하고,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건 잘못이라는)을 계속하지만, 더 높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탓에 윤리적 판단을 호소할 대상이 없다. --- p.140-141
몇몇 진화심리학자들을 만나봤지만, 다들 세련되고 품위가 있었다. 어느 모로 보든, 아이들을 때리거나, 세금을 포탈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촌들을 살해할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윤리를 지탱하는 초월적 기반들을 죄다 흔들어가며 이들이 널리 퍼트리는 학설은 행동의 선악을 가리는 능력을 파괴하고 있다. 나는 진화론을 믿는 자들의 도덕성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마지막 한계선까지 그 주장을 좇는 이들의 도덕성을 염려할 따름이다. --- p.162
실존주의에 잠시 기울었던 젊은 시절에는 전도서라는 신비로운 책이 보여주는 모호한 표현과 삶의 리듬을 짚어가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감각을 사랑했다. 실존적 절망을 잘 딛고 일어선 뒤에도 줄곧 리얼리즘의 진수를 가공하지 않은 상태로 거룩한 책 가운데 넣어주기로 결정해주신 하나님께 중얼중얼 감사의 기도를 드리곤 했다. 유대인들은 장막절 기간 동안 이 책을 큰 소리로 읽었다.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관습이다. --- p.275
스페인이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대표적 문사인 프라이 루이스 폰세 데 레온Fray Luis Ponce de Leon은 가혹한 종교재판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아가서를 스페인어로 번역하고 라틴어로 쓰인 불가타 성서를 비판해서 권력자들의 눈밖에 났던 프라이 루이스는 살라망카에 있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도중에 끌려 나갔다. 그리고 무려 4년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받았다. 시대의 광기가 사라지고 난 뒤, 허리가 굽어서 거의 부러지다시피 한 교수에게 강단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발을 질질 끌며 강의실로 들어선 프라이 루이스는 스페인에서 전설이 된 한 마디로 강의를 시작했다. “어제 얘기한 것처럼!”그러곤 지난날 무참히 중단되었던 자리부터 수업을 이어나갔다. --- p.285
예수님은 50만 종에 이르는 딱정벌레에서부터 세렝게티에 사는 이국적인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피조물들을 디자인하는 일에 빠짐없이 참여하셨지만, 지상에 머무는 내내 뭇 사람들이 찬양할 만한 불후의 명작을 단 한 편도 남기지 않으셨다. 주님은 금판이나 파피루스 두루마리 대신, 팔레스타인의 흙을 팔레트로 선택하셨다. 이윽고 불어온 비바람과 함께, 주님이 친히 쓰신 유일한 작품은 흔적도 없이 스러지고 말았다.
--- p.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