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교회는 성경의 문자적 차원을 소중히 여기면서 동시에 이차적 또는 영적 의미를 통해 성경을 현실과 연결하려 한다. 이런 점에서 개혁교회의 좋은 해석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일상과 연결하는 것을 소중히 여겨 공적 모임의 설교와 함께 개인적인 묵상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좋은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차적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의 관심이나 상황에 따라 영해를 자주 사용한다는 점이 큰 우려를 일으킨다. 특히 이단이 성경의 내용과 동떨어진 자신의 교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불합리한 영해를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교인들이 이단에 빠질 만한 성서 해석의 환경을 교회 스스로 만들고 있는 셈이라고도 할 수 있다.
---「22쪽, 1장. 뒤를 보며 앞으로 가기」중에서
성경을 포함한 모든 글의 해석은 지금까지 설명한 세 차원에 대한 적절한 시야를 확보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경을 해석할 때 주로 단어에 초점을 맞춘다. 앞에서 말했듯이, 모든 글은 단어로 이루어졌으니 단어의 의미만 정확히 알면 아무리 길고 복잡한 글이라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글은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단어 뜻을 정확히 안다고 문장이나 담론의 의미가 제대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68쪽, 4장. 말과 현실」중에서
사람들은 영어 같은 외국어를 공부할 때 사전에 든 단어를 모두 외우고 문법책을 독파하기만 하면 다 되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어느 정도 익힌 다음에야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문법책에 나오는 표현과 실제 생활에서 들리는 표현 사이의 차이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때가 되면 각 상황 또는 맥락에 맞는 문장을 송두리째 암기하라는 말이 귀에 들어온다. 말하자면, 길을 물을 때, 물건을 살 때, 음식을 주문할 때 등 ‘상황’에 따라 실제로 어떤 문장을 사용하는지를 알아야 영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에 눈을 뜨기 시작하는 것이다.
---「80쪽, 5장. 말과 의미」중에서
은유는 한편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게 하지만, 또 한편으로 이 땅의 현실과 초자연적인 차원의 현실 사이의 관계를 보게도 한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제시하는 성경에서도 은유가 자주 등장한다. 성경의 은유는 일상에서 흔히 보이는 것에 근거한다. 보이는 것이나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가리키는 은유도 주로 사람들의 관계나 사람과 그 주변 것과의 관계를 근거로 한다. 앞서 예로 들었듯이, 하나님과 그 백성을 각각 아버지와 자녀, 목자와 양, 토기장이와 그릇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155쪽, 8장 은유」중에서
성경을 삶의 자리와 연결하는 데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다. 이미 설명했듯이, 삶의 자리에서는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섭리가 합류한다. 어느 한 요인만 작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경을 일상의 삶과 연결해 삶 속에 하나님이 어떻게 활동하시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섭리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일단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이는 그대로 세심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236쪽, 11장. 해석의 장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