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신학의 역사에서 우리는 성령론이 소외된 현상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칼뱅, 슐라이어마허(F. Schleiermacher) 등 과거의 신학자들은 물론 판넨베르크(W. Pannenberg)를 위시한 수많은 현대신학자들의 교의학(조직신학)에서, 성령론은 독립적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삼위일체론, 은혜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에 연계된 한 부분으로만 취급되어왔다. (제8부 1장 “서방교회 신학의 성령론 소외 현상과 동방정교회 성령론”)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동등한 신적 인격이기 때문에 이들의 모든 사역은 삼위일체의 공동사역이 된다. 성부의 창조(creatio), 성자의 구원(redemptio), 성령의 성화와 새 창조(sanctificatio, nova creatio) 내지 구원의 완성은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의 존재에 참여하여 함께 이루는 공동사역이다. 예수의 십자가의 고난도 예수 자신만의 고난이 아니라 예수 안에 계신 성령을 통한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의 고난이다. 따라서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의 사건이 된다. (제8부 5장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적 인격으로서의 성령”)
피조물의 고난에 대한 연민은 단지 인간적 사랑과 동정심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영이신 성령의 감화감동으로 일어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어진 성령, 곧 사랑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은 피조물의 고난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구원받은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추구한다. (제8부 7장 “그리스도인들 안에 있는 성령의 명시적 특별사역”)
교회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지 않는 교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지 않고 자기팽창과 교세확장에 부심하는 교회 안에 참 하나님의 영은 계시지 않는다. 인간의 악한 영이 그 안에 작용하고 있다.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그의 고난에 참여하는 영성이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고 교회가 받은 성령의 참됨을 증명한다. (제8부 9장 “그리스도인의 영성과 영분별의 지표”)
근대 정통주의 신학이 만든 “구원의 질서”는 각 시대의 구체적 상황들과 문제들에 대한 연관성을 갖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의 죄의 문제와 영적 구원의 문제에 집중하기 때문에 시대의 구체적 상황들과 문제들에 대해 추상적으로 바라본다. 근대에 일어난 식민주의, 제국주의, 흑인 노예매매, 제3세계의 원주민들의 억압과 착취, 인종차별주의, 대량학살 등의 현실적 문제들이 다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제9부 3장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개신교회의 칭의론은 매우 타당하고 성경적인 교리임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문제 또한 내포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의 구원을 하나님의 보증수표와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에 있다. 칭의론에 의하면,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그것은 조금도 흔들릴 수 없는 “굳건한 바위”와 같은 객관적 사건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생각은 자칫하면 그리스도인들의 성화의 결핍과 무윤리성을 초래할 수 있는 문제성이 있다. 성화되지 않고 비윤리적으로 살아도 하나님의 구원은 확실하게 보장된 보증수표와 같은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제9부 7장 “성화의 과정 속에서 완성되는 하나님의 구원”)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제 그들의 삶을 다스리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법”, 곧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렇다면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해 무의미한 것인가? 그러므로 폐기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구약의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대해 여전히 타당성을 가지는가? (제9부 9장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구약의 율법”)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은 완전하지 못하다. 우리는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기 때문이다. 또 우리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행위와 의를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우심을 신뢰한다. 우리의 구원은 결국 하나님에게서 온다.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시 62:1).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은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다. (제9부 10장 “구원론의 실제적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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