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는 오크들과 합류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과연 어떻게 오크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인간인 위드였기에 오크들과 친해지는 방법을 찾기란 매우 힘들어 보였다. 오크들의 무리에 적응은 하겠지만, 친밀도를 높이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오크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그들을 기피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했다. 오크들을 인간처럼, 혹은 동료처럼 여겨야만 했다. 이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위드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오크들을 겪어 본바, 무척이나 익숙했다.
‘아, 이건… 너무나도 익숙하다.’
위드는 순식간에 그들에게 동화되어 갔다. 오크들! 그들은 검치와 별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무식! 과격! 수틀리면 무기부터 꺼내 들고 보는 화끈함! 강자에게도 무조건 개돌격하는 무모함까지! 말보다는 주먹이 서너 배쯤 빨랐다.
--- pp.7~8
“조각상?”
다인은 추억 속의 공간에 조각품들이 놓여 있는 데에 기분이 나빴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막 돌아서려는 순간이었다. 문득 그 조각상들의 모습이 익숙했다. 새치름한 표정과 살짝 치켜뜬 눈, 화가 나면 소매부터 걷어 올리는 다혈질! 여자는 다인을 꼭 그대로 닮아 있었던 것이다.
“설마…….”
다인은 남자를 살폈다. 그러자 자신이 수술을 받기 전에 만났던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에 로열 로드를 하면서 가슴 깊이 새겨 두었던 사람. 당시에 다인은 한 사람과 환상적인 파티 플레이를 했다. 샤먼의 다양한 특기들이 위드의 강력한 공격력과 합쳐져서 그들은 언데드가 나오는 던전들을 휩쓸고 다녔다.
“위드구나.”
다인의 눈가에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나온다.
“훌쩍, 다신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 pp.113~114
위드는 조각 변신술을 해제하고 다시금 조각품을 만들었다. 타조처럼 두 발로 달리는 동물! 그런 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에 만드는 대상은 무난한 오크의 형태였다. 다만 기존에 만들었던 오크 카리취의 몸이 일반 오크들보다 훨씬 비대하고 근육질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번에는 깡마른 오크를 조각했다. 피죽도 못 먹고 자란 것처럼 비쩍 마른 몰골에, 꼭 필요한 근육만이 붙어 있다. 몸무게를 최대한 줄이고 키도 적당히 작게 만들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조각을 했다. 물론 인상만은 오크 카리취 그대로였다. 얼굴만 봐도 하루 종일 기분이 상하고,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세상을 다 때려 부수고 싶다. 위드에게는 지상에서 가장 못생긴 오크를 만드는 재능이 있었다.
--- pp.264~265
그렇게 열심히 고기를 뜯어 먹던 위드는 무심코 서윤을 보았다. 보리빵을 금방 먹고 혹시라도 이동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살펴본 것이다. 협곡에는 위험한 예티들이 있는 만큼, 그리 마음이 맞지 않는 상대라도 여행 동무가 있는 편이 나으니까. 그런데 서윤은 물끄러미 위드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 그녀의 시선이 머무른 것은 고기였다. 향긋한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위드의 입으로 들어가고 있는 예티의 고기!
“취익!”
위드는 곧바로 예티의 고기를 서윤에게 넘겨주었다. 법은 멀고 칼은 가깝다. 어차피 고기야 예티를 사냥하면 계속 얻을 수 있고, 나무를 때서 굽는 것이니 돈이 들지도 않았다. 그때부터 서윤은 식사 때마다 물끄러미 그를 보았고, 위드는 조용히 고기를 구웠다. 여행을 하는 동안 서윤의 전속 요리사가 된 것이다. 실로 간악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처럼 마른 오크까지 등쳐 먹으려고 하다니… 역시 살인자는 어디가 달라도 다르군.’
--- pp.325~326
“예. 그 덕분에 시청률이 꽤나 오르기도 했지요. 참, 로열 로드를 한 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1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
이번의 침묵은 조금 더 길었다. 로열 로드가 열린 지도 2년 반 정도가 지나고 있었다. 현재 고수 층에 있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초창기에 시작한 이들이다.
‘1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난이도 A급 퀘스트를 깰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단 말인가?’
‘1년 만에 레벨 300을 넘길 수 있는 게 어디 사람이야?’
강 부장이나 기획실 직원들이나, 이젠 이현에 대해서 나름대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대단한 허풍쟁이로군.’
‘허세가 심한 녀석인 것 같아.’
‘나이가 어리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하루에 꼬박 18시간에서 20시간씩 플레이를 했던 과거를 모르니 빚어지는 오해였다. 이현의 성장법은 정작 알고도 그대로 행하기가 쉽지 않다. 다소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레벨 대에서는 최고의 능력을 보이도록 성장시키는 방법. 조각사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거니와, 웬만한 인내력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수준이다. 1달 내내 재봉만 하고, 1달 내내 대장일을 하고, 3달 동안 낚시를 한다. 번갈아 가면서 지루함을 참아 낼 수 있는 능력! 몬스터를 사냥할 때에도 쉬는 시간이 없다. 아니, 쉬는 시간에도 조각품을 깎는 작업을 한다. 이런 노가다 정신이 없고서야 불가능한 업적이었다.
--- pp.538~540
위드는 망연자실하게 앉아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따갑게 내리쬐는 태양을 바라볼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예티의 흰 털옷을 입고 이 더운 날씨에 그대로! 그가 있는 광장 한복판은 유독 사람이 몰리는 곳이었다.
“…….”
위드는 하늘을 보며 우울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절망과 탄식, 아픔, 좌절, 회한! 이런 감정들을 보여 주면서 그저 앉아 있었다.
쨍그랑!
“힘내세요.”
“조금만 더 지나면 좋은 날도 있겠지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삶이 그렇게 척박한 것만은 아닙니다.”
“이 돈으로 옷이라도 좀… 그 털옷은 너무 더워 보이네요.”
위드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지나가던 여행객들은 그저 스스로 상상을 할 뿐이었다.
‘굉장히 불행한 일을 겪은 사람인가 봐.’
‘어쩌면 저렇게 애절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을까.’
‘마음이 다 아프네.’
그리고 알아서 돈을 던져 주고 지나갔다. 마음으로 돈을 끌어들이는 경지!
--- pp.624~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