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 수요일
조금 전에 빈센트 아저씨가 내 초상화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나보고 모델을 해 달라고? 나는 너무 놀라서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당연히 하고야 싶지만, 내가 진짜로 그렇게 예쁠까? 난 코가 마음에 안 드는데. 너무 길고 뾰족해서 말이다. 게다가 난 누구 앞에서 포즈를 취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이내 후회했다. 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닌데. 하지만 이미 늦었다. 엄마 아빠에게 말해야 했다.
엄마도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엄마가 말했다.
“참 별 소리를 다 듣겠네. 하지만 그리고 싶다면, 어쩌겠어?”
그 말은 곧 ‘그림을 망치고 싶다면, 그러라지 뭐.’라는 뜻이다.
아빠도 내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뭐, 포즈? 어디서? 아빠는 이따금, 특히 돈 계산을 할 때 멍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내가 차근차근 설명을 하자, 아빠는 알아들어 흔쾌히 허락했다. 심지어 아주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 좋아했다!
아, 어쩌지? 그냥 거절할걸 그랬나? 겁이 난다.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안 될 텐데. 어쩌면 숨도 쉬면 안 될 거다. 과연 내가 포즈를 잘 취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옷은 어떻게 입지? 붉은색 드레스? 아니면 파란색? 아무래도 파란색이 낫겠다. 훨씬 예쁘니까. 파란색 드레스는 단추만 꿰매면 된다. 오늘 저녁에 끝내야지.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매만졌다. 틀어 올리는 게 좋겠다. 포즈를 취하다가 다리에 쥐가 나면 어쩌지? 오래 걸리지 않아야 할 텐데. ---pp.51~52
7월 1일 화요일
아저씨는 네덜란드에서 몇 년 동안은 아주 어두운 그림만 그렸는데, 파리에 와서, 그리고 나중에 남부에서 4년을 살면서, 아저씨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색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저씨가 빛과 남부에서 발견한 기막힌 노란색을 얘기할 때는 흥분했고, 아예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그토록 불안해 보이던 얼굴도 한결 풀어지고,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서 왜 파리 근교로 돌아온 건지 의문이 들었다! 아저씨가 아를과 그 근교를 떠올리며 얘기할 때는 목소리에 햇살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혼자 있다고 생각하며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듣기만 했다. 아저씨는 사랑하는 동생과 멀리 떨어져 살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특히 조카가 태어난 뒤로는. ---p.71
7월 30일 수요일
파리에서 온 미술 거래상 탕기 영감은 빈센트 아저씨가 일본 판화를 배경으로 자기의 초상화를 그려 준 얘기를 했다. 빈센트 아저씨를 화가로서 높이 평가했다. 빈센트 아저씨는 천재였고, 살아생전 인정받지 못한 건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갔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탕기 영감은 술잔을 흔들면서 말했다.
“언젠가 반 고흐의 얘기를 듣는 날이 올 겁니다. 미술에 새 길을 열었으니까요.”
이어 이렇게 반복해서 외쳤다.
“그는 선각자였어요! 선각자!”
탕기 영감이 말한 새 길이란 말에서 나는 빈센트 아저씨가 죽기 전에 그린 그림 중 하나인 까마귀가 나는 그림에서 노란 밀밭 사이로 난 붉은색 흙길이 떠올랐다.
테오 아저씨 혼자 말이 없었다.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빈센트 아저씨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꺼내질 못했다.
---pp.114~115